"증거 다 증발한다"…감리일지도 확보 못한 경찰, 檢 뭐하나 [영상]

17명 죽거나 다쳤는데…경찰, 7명 불구속 입건 

대낮 도심 한복판에서 애꿎은 시민 17명이 죽거나 다친 광주 재건축 건물 붕괴 사고를 놓고 인재(人災)라는 말이 쏟아지고 있다. 사고 원인과 책임 소재 등을 두고 갖가지 의혹이 터지는데도 정작 경찰 수사는 더디다는 지적도 나온다.
 
13일 광주경찰청 수사본부에 따르면 현재까지 경찰이 붕괴 사고와 관련해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불구속 입건한 사람은 7명이다. 굴착기 기사를 포함한 철거업체 2곳 관계자 3명, 감리업체 소장 1명, 재개발사업 시공사인 현대산업개발 현장 관계자 3명 등이다. 아직 경찰이 구속한 사람은 없다.  
 
사고는 지난 9일 오후 4시22분쯤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 주택재개발 사업 공사 현장에서 발생했다. 철거 중이던 5층짜리 건물이 도로 쪽으로 와르르 무너지면서 건물 잔해가 정류장에 멈춘 54번 시내버스를 덮쳤다. 이 사고로 버스에 타고 있던 17명 중 9명이 사망했고, 버스 기사 등 8명이 중상을 입었다.
 
지난 9일 철거 중인 건물 붕괴로 시내버스가 매몰된 광주광역시 사고 현장에서 소방대원들이 구조 작업을 하고 있다. 이 사고로 9명이 사망하고, 8명이 부상했다. 프리랜서 장정필

지난 9일 철거 중인 건물 붕괴로 시내버스가 매몰된 광주광역시 사고 현장에서 소방대원들이 구조 작업을 하고 있다. 이 사고로 9명이 사망하고, 8명이 부상했다. 프리랜서 장정필

감리업체 소장, 압수수색 전 자료 빼돌린 정황 

경찰은 수사 초기부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철거 공사 현장에서 안전규정 관리·감독을 맡았던 감리업체 소장 A씨는 경찰의 압수수색이 있기 전인 지난 10일 오전 3시쯤 회사 사무실에서 일부 자료를 빼돌린 정황이 확인됐다. 
 
하지만 경찰은 A소장과 연락이 닿지 않아 지난 11일 피의자로 입건할 때까지 소환 조사를 하지 못했다. "A소장은 철거 공사 과정에서 자기 역할과 임무에 대해 묵비권을 행사 중"이라고 경찰은 전했다. 

 
경찰은 철거업체 등이 안전관리 규정을 지키면서 철거 작업을 했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감리일지 문건도 확보하지 못한 상태다. 경찰 안팎에서는 "이미 상당수 증거가 증발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경찰 관계자는 "늦지 않은 시점에 구속영장을 신청할 계획"이라며 "수사 상황에 따라 입건 대상자 수는 늘 수 있다"고 했다.    
 
13일 광주 동구 한 장례식장에서 부검을 마친 광주 붕괴 사고 희생자의 발인이 진행되고 있다. 뉴스1

13일 광주 동구 한 장례식장에서 부검을 마친 광주 붕괴 사고 희생자의 발인이 진행되고 있다. 뉴스1

경찰이 컨트롤타워…검찰은 "경찰과 협조" 

이번 붕괴 사고 수사는 경찰이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았다. 검찰은 옆에서 돕는 수준이다.
 
이를 놓고 일각에서는 "올해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검찰의 직접 수사 대상이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로 제한되고 경찰에 대한 수사 지휘권이 없어지면서 수사 공백이 현실화하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검찰 대처'에 대한 문의가 잇따르자 광주지검은 사고 다음 날 보도자료를 내고 "광주지방검찰청은 '광주 재개발 철거 현장 건물 붕괴 사건'과 관련해 사건 발생 직후 형사3부장을 반장으로 수사협력반을 편성해 현장 검증에 참여하는 등 사고 원인 및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경찰과 긴밀히 협조하는 한편 피해자 및 유족 지원에도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밝혔다. 광주지검 형사3부는 살인·방화 등 강력사건을 수사하고 피해자를 지원하는 부서다.  
 

제도로 손발 묶인 검찰…"역량·경험 활용해야" 

하지만 법조계 안팎에서는 "직접 수사권을 줄이는 검찰 개혁 방향 때문에 큰 사건이 터져도 검찰이 제도적으로 손발이 묶인 상태"라는 분석이 나온다. 전직 검찰 고위 간부는 "대형 사고가 나면 현장에선 정신이 없다. 검찰이 사실관계를 모르면 협조할 수가 없다"며 "그런데 지금은 검찰이 모든 사건에서 손을 떼라는 분위기여서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나중에 기소 여부만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5년만 지나면 이런 분위기가 검찰의 관행으로 굳어져 수사나 대응 능력이 확 떨어질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광주 붕괴 사고는 아무 죄 없는 일반 시민이 9명이나 죽은 시민 재해"라며 "대형 참사에 대한 검찰의 수사 역량과 풍부한 경험을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검찰이 실시간으로 수사 기록을 보고 법리 구성(검토)을 해주고, 경찰이 신속히 압수수색하거나 신병을 확보할 수 있게 만들어 줘야 한다"며 "건물이 도로 바깥 쪽으로 넘어질 위험이 있는데도 제대로 안전 조치를 안 한 과실이 누구한테까지 있는지 쫓아가야 한다"고 했다.  
 
광주 동구청에 마련된 붕괴 사고 희생자 합동분향소에서 군인들이 조문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광주 동구청에 마련된 붕괴 사고 희생자 합동분향소에서 군인들이 조문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광주지검 "수사 공백·지연 없도록 노력" 

이에 대해 검찰은 "제도가 바뀌어 실체 관계를 놓치거나 수사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경찰과 함께 노력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이진호 광주지검 인권감독관 겸 전문공보관(부장검사)은 "지금 상태로서는 검찰이 직접 수사에 들어갈 사항은 아니다"며 "일단 경찰에서 초동 수사를 해도 큰 문제는 없겠다고 생각하고, 저희도 (경찰 수사와) 병행해서 지원하고 실질적으로 협조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공보관은 "과거엔 저희가 지휘권이 있다 보니 (경찰이) 검사 지휘 하에 현장의 중요한 상황과 수사 기록 사본을 수시로 보고하고, 저희도 챙겼다"며 "지금은 지휘 관계가 아니어서 다소 불편한 점이 있고 과거보다 (공조에) 소극적일 수 있지만, 부검과 현장 검증 등을 할 때는 검사가 참여하는 식으로 현장 상황을 공유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제도가 바뀐 것 때문에 수사가 지연되거나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최대한 협조하고 있다"며 "행정과 별도로 이 사건과 관련해 생계가 곤란한 유족을 파악해 긴급 생계비를 지원했고, 현장에 상담소를 설치해 유족들이 도움을 요청하면 신속하게 조치하고 있다"고 했다.
 
광주광역시=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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