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로 시(詩)를 쓰는 두 작가, 이정진·민병헌의 이 전시

이정진. '심마니'. 1987년 울릉도에서 만난 심마니 노부부를 촬영했다. [스페이스22]

이정진. '심마니'. 1987년 울릉도에서 만난 심마니 노부부를 촬영했다. [스페이스22]

이정진 '심마니'. 이정진 작가가 26세에 울릉도에서 촬영했다. [사진 스페이스22]

이정진 '심마니'. 이정진 작가가 26세에 울릉도에서 촬영했다. [사진 스페이스22]

같은 흑백 사진이어도 결이 다르다. 두 작가 모두 카메라 렌즈에 자연을 수묵화처럼 담아낸다는 평가를 받는데, 그들이 각각 하얀 인화지 위에 빚어낸 풍경은 한마디로 극과 극이다. 한 작가는 홀로 미국의 장대한 사막을 헤매며 바위, 덤불, 선인장, 모래를 냉철한 감성으로 담아 왔고, 또 다른 작가는 하늘과 바다, 산과 길을 꿈인 듯 생시인듯 섬세하고 몽환적인 풍경으로 포착해왔다. 사진 분야에서 주관적인 자기 세계를 확고하게 구축한 두 작가, 이정진(60)과 민병헌(67) 얘기다. 
 
이제 '거장'이라는 타이틀이 전혀 무겁지 않은 두 사진작가가 지금 서울 강남에서 나란히 전시를 열고 있다. 이정진은 서울 강남대로 스페이스22에서 출판기념전 '심마니(SIMMANI)'를 열고 있고, 민병헌은 서울 테헤란로 포스코미술관에서 개인전 '황홀지경- 민병헌, 사진하다'를 열고 있다. '사진'이라는 같은 매체를 탐구하지만 각기 다른 궤도로 진입해 더욱 성숙해가는 작품 세계를 들여다볼 기회다.   
 

26세의 기록, 울릉도 심마니 

이정진, '심마니' 연작 중. [사진 스페이스22]

이정진, '심마니' 연작 중. [사진 스페이스22]

현재 국제무대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이정진은 오는 7월 이탈리아에서 개인전을 열고, 이어 9월 브라질 상파울루비엔날레에서 대규모 전시를 열 예정이다. 이렇게 큰 무대를 앞둔 그가 이번에 열고 있는 전시는 '심마니'. 지금으로부터 34년 전인 1987년 26세에 울릉도에서 촬영한 심마니 노부부의 다큐멘터리 사진이다. 미국 사막에서 찍어온 근작들과는 다르게 사람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다큐 사진들이 작가의 특별했던 출발점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심마니' 다큐 사진의 주인공은 작가가 1988년 미국으로 가기 전인 1987년 울릉도에 겨울 산행을 갔다가 길을 잃고 헤매다 만난 '자연인' 노부부다. 작가는 그해 1년간 여러 차례에 걸쳐 부부를 방문해 사진을 찍었고, 당시 찍은 사진들은 『먼섬 외딴집』(열화당)이라는 제목의 사진집으로 1998년에 출간됐다. 이 작업으로 그는 미국에서 뉴욕대 대학원에서 사진을 전공하고 현대 사진 거장인 로버트 프랭크의 제자이자 조수로 활동했다. 
 
"심마니였던 노인은 라디오에서 울릉도에 산삼이 있다는 말을 듣고 일흔이 되던 1979년 산삼을 캐러 울릉도에 들어갔다고 했다." 당시 젊은 여성작가 이정진이 포착한 노부부의 모습은 그 자체가 자연의 일부로 다가온다. 사방이 눈으로 뒤덮인 들판에 지게를 지고 걸어가는 노인의 모습은 차라리 한그루의 나무같아 보이고, 수풀 더미에 묻혀 굽은 허리로 카메라에 포착된 모습은 한 마리의 사슴 같아 보인다. 전기도 없는 집에서 염소와 닭을 기르며 산삼을 찾아다니던 심마니 부부는 그해 12월 9년간의 오지 생활을 마감하고 울릉도를 떠난다. 작가가 '뿌리깊은 나무' 잡지의 사진기자로 활동하던 시기에 출간된 사진집 『먼섬 외딴집』은  최근 미발표 작품을 추가해 『SIMMANI』(이안북스)란 제목으로 출간됐다.  
 
작가는 하필 왜 이때의 사진을 다시 꺼내 들었을까? 이정진은 "지난 삼십여년 간 추구해온 나의 작업은 주로 사막이나 숲, 인적이 드문 자연 속에서 느끼는 내적 체험한 관한 것들이었다"며 "이제 돌이켜보면 평생 심마니로 살아간 노인의 삶이 작가로서 지내온 나의 여성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나를 사로잡은 것은 두 노인의 고단한 삶 뒤편에 전해지는 담담한 평화로움이었다. 그 감각이 현재 내가 걷고 있는 길 위에 부는 바람처럼 소중한 느낌으로 남아있다"고 덧붙였다. 
 
이안북스의 김정은 편집장은 "당시 노부부의 삶을 담담히 기록한 작가의 사진과 글은 낯설어진 울릉도의 풍경을 신비스럽게 소환한다"고 전했다. 전시는 29일까지. 일·월요일은 휴관. 
 

민병헌, "사진은 찍는 게 아니라 하는 것" 

포스코미술관에서 열리는 민병헌 전시 '황홀지경-민병헌, 사진하다'는 일종의 회고전이다. 작가가 오랫동안 작업해온 다양한 연작을 한자리서 조망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지난해부터 시작한 신작 '남녘유람' 을 처음 공개하고 그의 대표적인 누드와 꽃 사진까지 총 90점을 소개한다. 지난해 처음으로 공개한 '새'시리즈를 완결하는 작품과 과거 작품 중 미공개작도 이번에 함께 소개한다. 
 
민병헌은 ‘수묵화 같은 사진’, ‘민병헌그레이’ 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특유의 '희미한' 표현으로 유명하다. 한 프레임 안에 하늘과 갯벌, 새 혹은 산등성이와 길은 서로 뗄 수 없이 하나로 녹아들어 있기 일쑤다. 신작 '남녘유람'은 2020년부터 시작한 최근 작업으로, 작가가 그동안 선보인 작업에 비해 따뜻하고 부드러운 빛이 드러나는 것이 특징. 
 
이정민 아트컨설턴트는 "민병헌의 카메라에 찍힌 자연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으로 동시에 다가와서 우리의 감각을 건드린다"며 "민병헌의 사진은 컬러로 보이는 실제 세계를 흑백의 추상적 차원으로 환기시키며 한 편의 시가 되어 다가온다"고 평했다. 민병헌은 "처음엔 콘트라스트(명암대비)가 명확한 사진을 찍었지만 지금은 콘트라스트를 최대한 억제하고 있다"며 "흰색과 검은색보다 오히려 다양한 높낮이의 회색이 풍경의 디테일을 살린다"고 말했다. 토·일요일 휴관, 전시는 25일까지
 
 
민병헌, '남녘유람' 연작 중. [사진 포스코미술관]

민병헌, '남녘유람' 연작 중. [사진 포스코미술관]

민병헌, '남녘유람' 연작 중. [사진 포스코미술관]

민병헌, '남녘유람' 연작 중. [사진 포스코미술관]

민병헌, '남녘유람' 연작 중. [사진 포스코미술관]

민병헌, '남녘유람' 연작 중. [사진 포스코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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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문화선임기자 jul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