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이 극심할 때 시조를 만났다"던 박권숙 시인 별세

2014년 중앙시조대상을 수상했던 고(故) 박권숙 시인. [중앙포토]

2014년 중앙시조대상을 수상했던 고(故) 박권숙 시인. [중앙포토]

박권숙 시조 시인이 11일 별세했다. 향년 59세.

2014년 중앙시조대상을 수상했던 고인은 당시 인터뷰에서 “죽음이 구원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고통이 심할 때 시조를 만났다”고 말했다. 25세에 신부전증을 진단받고 37세까지 두 번 신장 이식을 받았다. 각종 합병증을 겪으며 시력이 나빠져 책도 읽을 수 없었다.
 
시조를 처음 만난 건 병을 판정받고 4년 후인 91년. 같은 해 본지의 시조백일장 지면을 본 후 응모해 장원, 연말 장원을 거쳐 93년엔 중앙시조신인상을 받았다. 2014년 중앙시조대상을 받은 후엔 “시조는 구원의 빛이자 제2의 인생길을 열어 준 문”이라고 했다. 당시 생명력 강한 잡초를 주제로 한 ‘쇠뜨기’로 대상을 받았고 심사위원단은 “주변적 존재의 삶이, 지속적으로 일어서고 길을 가려는 존재론적 에너지를 품고 있음을 실감 있게 묘사했다”며 높이 평가했다.
 
이후 시조 문단의 대표적 작가로 자리잡았다. 2002년 한국시조작품상, 2013년 한국시조시인협회의 올해의 좋은 작품집상, 2020년 한국시조대상을 수상했다. 『겨울 묵시록』(1993), 『객토』(1996), 『시간의 꽃』(2001), 『홀씨들의 먼 길』(2005) 등 시조집도 꾸준히 냈다.
 
18일 진도군 임회면에 세워진 고(故) 박권숙 시인의 시조비. [사진 이지엽 시조시인]

18일 진도군 임회면에 세워진 고(故) 박권숙 시인의 시조비. [사진 이지엽 시조시인]

별세 소식은 늦게 전해졌다. 이지엽 한국시조시인협회 전 이사장은 “고인의 간곡한 부탁에 따라 유족들이 19일에 알려왔다”고 했다. 지난 18일 전남 진도에 ‘시에그린 한국시화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이 전 이사장이 모은 시화 작품 1000여 점이 박물관에 전시됐고, 바닷가에 고인과 최영효ㆍ배우식 시조시인의 시조비가 세워졌다. 
 
이 전 이사장은 “고인의 동생이 ‘(언니가) 이 행사가 끝날 때까지는 절대 별세를 알리지 말라고 했다’며 개관식 하루 뒤 별세를 전했다”고 말했다. 동생은 “늘 반듯했고, 폐 끼치는 걸 못 견뎌하던 언니의 곧은 성품을 끝까지 지켜주고 싶었다”고 했다 한다. 고인은 경남 양산시 석계공원묘원의 선친 곁에 묻혔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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