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 소년 29세 청년 40세 중년이 원팀…MZ, 양궁에 빠지다

25일 일본 유메노시마 공원 양궁장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여자 양궁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여자 양궁 국가대표 강채영(왼쪽부터), 장민희, 안산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도쿄=연합뉴스

25일 일본 유메노시마 공원 양궁장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여자 양궁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여자 양궁 국가대표 강채영(왼쪽부터), 장민희, 안산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도쿄=연합뉴스

“나이 따윈 상관없다. 잘 쏘면 그만”

여자 양궁 대표팀이 올림픽 양궁 여자 단체전 9연패를 달성한 25일 한 대학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이다. ‘흥미로운 남자양궁사의 나이’라는 제목의 게시물은 남자 대표팀이 맏형 오진혁(40)부터 막내 김제덕(17)까지 다양한 연령대로 구성된 걸 평가하는 내용이다. “40대와 10대가 한팀. 나이 따윈 상관없다. 잘 쏘면 그만”이라는 글에 “블라인드 채용의 정석” “공정 그 자체”라는 댓글이 달렸다.
 
도쿄올림픽에서 24일부터 3일 연속 금빛 승전보를 전한 양궁 대표팀에 2030 ‘MZ세대’가 열광하고 있다. 이들이 주목한 건 ‘공정’이라는 화두다. 취업준비생 권모(28)씨는 “양궁에서는 다른 스포츠 분야와 다르게 파벌 문제나 공정성 문제가 불거진 적이 별로 없는 것 같다. 다른 배경을 보지 않고 실력이 좋은 선수를 뽑는 원칙이 이번 성적과 이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윤모(26)씨도 “다른 종목의 선발 과정을 직접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공정한 선발 방식이 양궁팀 선전의 비결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2030 직장인이 많이 이용하는 ‘블라인드’ 앱에서도 “무조건 점수제인 양궁은 공정할 수밖에 없다. 이런 게 스포츠”라거나 “20살과 17살인 선수들이 선배들을 누르고 온 것도 파격이고, 다른 거 고려하지 않고 실력 하나로 어린 선수들을 대표로 내보낸 협회도 대단하다”는 글이 이어지고 있다.
 

‘그해 가장 잘 쏘는 선수가 나간다’는 원칙

MZ세대의 주된 관심은 양궁협회의 ‘공정한 선발 과정’이다. 대한양궁협회 관계자는 “양궁 대표팀 선발 원칙은 그해 가장 잘하는 선수가 선발돼야 한다는 것이다. 점수가 명확히 나타나는 양궁은 다른 종목에 비해서 이 원칙을 지키기가 용이하다”고 말했다.
 
협회에 따르면 올림픽 대표 선발을 위해 6개월 동안 5차례 선발 과정을 거쳤다. 올림픽 대표팀으로 선발된 선수가 선발 과정에서 쏜 화살만 약 3000발이다. 이 과정에서 어떤 특혜도 들어갈 틈이 없다는 게 협회의 설명이다. 협회 관계자는 “2018년까지만 해도 기존 국가대표 선수는 바로 3차 선발전부터 시작했다. 하지만 2019년부터는 이 기준마저 없앴다”고 말했다.
양궁 국가대표 김제덕(왼쪽)과 안산 선수가 24일 일본 도쿄 유메노시마 공원 양궁장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혼성 결승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후 기뻐하고 있다. 도쿄=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V

양궁 국가대표 김제덕(왼쪽)과 안산 선수가 24일 일본 도쿄 유메노시마 공원 양궁장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혼성 결승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후 기뻐하고 있다. 도쿄=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V

지난해 코로나19로 올림픽이 1년 연기되자 협회는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을 그해 10월 원점부터 다시 시작했다. ‘그해 가장 잘하는 선수를 선발한다’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다. 혼성전에서 금메달을 거머쥔 김제덕(17) 선수도 이 과정에서 발탁됐다. 2019년 어깨 부상으로 2020년 국가대표 선발전에 참여하지 못했던 김제덕은 올림픽 연기로 새로 진행된 선수 선발 과정에서 당당히 출전권을 따냈다.
26일 일본 도쿄 유메노시마 공원 양궁장에서 양궁 남자대표 17세 김제덕(왼쪽부터), 29세 김우진, 40세 오진혁 선수가 일본과의 준결승전에서 서로 손을 맞대고 격려하고 있다. 도쿄=사진공동취재단

26일 일본 도쿄 유메노시마 공원 양궁장에서 양궁 남자대표 17세 김제덕(왼쪽부터), 29세 김우진, 40세 오진혁 선수가 일본과의 준결승전에서 서로 손을 맞대고 격려하고 있다. 도쿄=사진공동취재단

“올림픽에 ‘공정’ 가치관 투영”

MZ세대가 올림픽 양궁대표팀 선발의 공정성에 주목하는 이유는 뭘까.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절차적 공정성에 대한 열망이 강한 20, 30대들이 자신이 열망하는 바를 양궁 대표팀의 올림픽 결과에 빗대서 표출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 동계 올림픽에선 남북 단일팀을 둘러싸고 공정성에 대한 사회적 논쟁이 있었다. 올림픽이 공정성에 대한 사회적 논쟁을 촉발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고 했다. 구 교수는 또 “가장 기본적인 공정도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에 분노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조국 사태 이후 한국 사회의 공정을 문제 삼기 시작한 젊은 세대들이 양궁 대표팀에 그들이 원하는 공정을 투영하는 것 같다. 우리 사회에 실종된 공정을 올림픽에서 상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