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서 굴려주세요"…'랩'에 몰리는 뭉칫돈, 올해만 11조원

증권사 VVIP(초우량 고객)인 A(59)씨는 지난 3월 랩 어카운트(Wrap Account) 상품에 4억원을 넣었다. 연초 주가가 급등한 후 박스권에서 등락하는 상황이 길어지자 랩을 택했다. 지난해 일찌감치 랩에 투자한 지인의 권유가 계기였다. A씨는 "어디에 어떤 비중으로 돈을 넣어야 할지 몰라 골치가 아팠는데, 전문가가 시장 상황에 따라 알아서 관리하며 굴려준다는 말에 투자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증권사 랩 어카운트 상품에 돈이 몰리고 있다. 사진은 서울 시내 한 건물 외벽에 증권사들 간판이 걸린 모습. 연합뉴스

증권사 랩 어카운트 상품에 돈이 몰리고 있다. 사진은 서울 시내 한 건물 외벽에 증권사들 간판이 걸린 모습. 연합뉴스

랩 어카운트 잔액 144조 육박

랩 어카운트는 증권사가 고객 돈을 대신 굴려주고 수익을 돌려주는 상품이다. 주식·채권·펀드·파생상품 등 여러 금융상품을 랩(wrap)으로 싸듯 담아 고객의 투자성향에 맞춰 운용하는 게 특징이다. 여러 투자자에게서 돈을 모아 공통 계좌를 만들어 운용하는 펀드와 달리, 고객마다 계좌를 따로 만든다.  
 
28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5월 말 기준 랩 어카운트 잔액은 143조9874억원을 기록했다. 올해 들어서만 11조4594억원의 뭉칫돈이 들어왔다. 투자자 수도 지난해 말 175만9801명에서 지난 5월 말 183만4198명으로 8만명 가까이 늘었다. 
 
미래에셋증권의 경우 지난해 말 5조2000억원이던 지점형 랩 잔고가 지금은 6조7000억원 수준으로 늘었다. 한국투자증권의 랩에도 올해 7000억원 넘는 자금이 유입됐다. 김정범 미래에셋증권 고객자산운용본부장은 "고액 자산가는 물론 일반 투자자 사이에서도 랩에 관심을 갖는 경우가 늘었다"고 말했다.  
급증하는 랩 어카운트 잔액.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급증하는 랩 어카운트 잔액.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투자는 하고 싶지만, 펀드는 못 믿겠고…"

랩 어카운트는 2010년 전후로 인기를 끈 상품이다. 당시엔 증권사가 투자자문사의 조언을 받아 운용하는 자문형 랩이 대세였다. 그러나 일부 종목에 대한 '쏠림 투자' 탓에 2011년 하락장에서 투자자들이 큰 손실을 본 뒤 점차 시장에서 잊혀갔다. 랩 시장이 부활한 건 지난해 하반기부터다. 자문형 랩의 빈자리를 증권사가 직접 운용하는 일임형 랩이 채웠다. 
 
업계에선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커지면서 투자환경이 복잡해진 게 랩의 부활을 이끌었다고 분석한다. 사모펀드가 각종 사고로 논란의 중심에 서면서 반사효과도 나타났다. 
 
여기다 진입 장벽이 낮아진 것도 한몫했다. 과거 랩은 '부자들의 전유물'이란 인식이 강했다. 최소 가입금액이 5000만~1억원이라 일반 투자자가 접근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최근 증권사들은 가입 문턱을 1000만~3000만 원대로 낮췄다. 미래에셋증권의 '글로벌X ETF(상장지수펀드) 랩'과 한국투자증권 'KIS-MP' 랩, KB증권 'KB 에이블 어카운트' 랩의 최소 가입금액이 모두 1000만원이다.  
주요 증권사의 랩 어카운트 상품.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주요 증권사의 랩 어카운트 상품.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종류 다양…투자성향에 맞는지 확인해야"

업계에선 랩의 인기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금리 인상,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 등으로 증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재테크 스트레스'에 지친 투자자들의 발길이 늘어날 것이란 기대에서다. 남정득 KB증권 마곡지점장은 "투자에 대한 관심은 많지만, 정보가 부족하거나 시간적 여유가 없어 전문가의 도움을 받길 원하는 고객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증시가 횡보할 경우 전반적인 투자 욕구가 줄면서 '반짝인기'에 그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알아서' 관리해준다지만 처음 가입할 때는 따져봐야 할 점이 적지 않다. 우선 투자 상품인 만큼 원금 손실이 날 수 있다. 또 같은 랩이라고 해도 가입 시점 등에 따라 수익률이 천차만별이다. 유동완 NH투자증권 랩운용부장은 "랩은 종류가 다양한 만큼 운용 주체, 투자 전략, 포트폴리오 등을 잘 따져보고 투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