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노골드 한국 유도, '체력' 없인 파리올림픽도 없다

도쿄올림픽에선 한국 유도의 강점을 찾아볼 수 없었다. 결과도 나빴다. [연합뉴스]

도쿄올림픽에선 한국 유도의 강점을 찾아볼 수 없었다. 결과도 나빴다. [연합뉴스]

 외국 유도 선수들 사이에는 "3분이 지나면 한국의 시간"이라는 말이 있다. 총 4분 유도 경기에서 후반부에 접어드는 순간부터 한국 선수가 유리해진다는 뜻이다. 상대보다 체력이 월등한 한국 선수들에 대한 존경과 두려움이 담긴 표현이다. 
 
'체력 유도'는 한국이 유도 강국과 호각을 다투는 비결이었다. 과거 세계 유도는 큰 체격을 바탕으로 '압도적인 힘'을 앞세운 프랑스, 러시아 등 유럽세와 한치 오차 없는 '완벽 기술'을 자랑하는 종주국 일본이 양분했다. 한국은 유럽처럼 타고난 신체 조건도, 일본처럼 최고의 선수를 양성할 훈련 체계도 없었다. 한국 선수들은 아시아에선 체격이 좋은 편이지만, 유럽 선수에겐 크게 못 미쳤다. 기술로는 수만 대 일의 경쟁률을 뚫은 일본 대표를 꺾기 어렵다. 한국 국가대표 선발전 참가 인원은 많아야 50명 정도다.  
 
대신 한국엔 꾸준함이 있었다. 상대보다 더 빨리 더 많이 메치는 강철 체력을 무기로 삼았다. 아무리 덩치가 크고 화려한 기술이 있어도 체력이 다하면 위력이 절반 이하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반대로 한국 선수들은 힘과 기술 정확도가 부족해도 경기 내내 한결같은 스피드와 강도로 몰아쳤다. 상대 선수가 느끼는 체감 공격력은 무시무시했다. 한국은 '체력 유도'로 2012 런던올림픽에서 금메달 2개(동메달 1개)를 따냈다. 송대남이 골든스코어(연장전)에서, 김재범은 쉬지 않고 연속 공격을 퍼부은 끝에 우승했다. 유럽 최강 러시아(금3·은1·동1), 일본(금1·은3·동3)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결승에서 연장 혈투 끝에 패한 조구함. [연합뉴스]

결승에서 연장 혈투 끝에 패한 조구함. [연합뉴스]

그랬던 한국 유도가 '체력'을 포기하면서 침체기에 빠졌다. 2016년 리우 대회(은2·동1) 이어 도쿄올림픽에서도 '노골드(은1·동2)' 굴욕을 맛봤다. 상대가 지치면 한국 선수도 지쳤다. 메달리스트인 안바울(66㎏급), 안창림(73㎏급 이상 동), 조구함(100㎏급 은) 모두 연장전에서 졌다. 예선에서 탈락한 다른 선수들에게서도 끈질긴 모습이 없었다. 상대보다 먼저 지쳤다. 특유의 빠른 스텝과 연속 공격도 못했다. 한국 대표팀은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주축 선수들을 대상으로 일부 자율 훈련 방식을 도입했다. 선수가 스스로 판단해 입맛에 맞는 훈련을 하도록 허용했다. 1, 2진, 파트너 등이 동일 프로그램에 따라 훈련한 기존 관례를 깬 파격이었다. MZ세대(1980~2000년대 출생 밀레니얼+Z세대) 선수들의 개성을 존중하는 동시에 성과를 극대화하는 취지였다.  
 
결과는 정반대였다. 일부 선수들은 휴식과 훈련 효율성을 이유로 새벽 훈련을 걸렀다. 치료를 핑계로 진천선수촌에서 퇴촌해 수개월 간 복귀하지 않은 사례도 나왔다. 사실상 개인 촌외 훈련을 한 것이다. 고된 훈련을 피하지 못한 2진과 파트너 선수들은 괴리감을 느꼈다. 1진 위주 프로그램이라서 라이벌 선수 등장은 원천 차단됐다. 오랜 기간 독주로 일부 선수는 자만심에 빠졌다. 
 
런던올림픽에서 연장에서 금메달을 딴 송대남.  [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

런던올림픽에서 연장에서 금메달을 딴 송대남. [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

한 올림픽 메달리스트는 "도쿄에서 훈련을 선수 자율에 맡긴 결과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기량과 몸상태를 선수가 주관적으로 판단하면서 심리적 안정감은 있었지만, 실제 기량 상승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올림픽 금메달은 수 차례 한계를 넘어서며 성장을 거듭해야 이룰 수 있는 목표"라고 분석했다. 또 다른 메달리스트는 "선수도 사람이라서 '이 정도 훈련했으면 됐다'며 자신과 타협한다. 특히 체력 훈련에서 그렇다. 대표팀 내에선 모든 수치가 최고 수준이어서 인지 못했겠지만, 세계적인 선수들과 비교했을 때 부족했다. 나태해질 타이밍에 동기부여가 되는 요소와 사람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대한유도회 관계자는 "도쿄에서 한국 선수들의 경기력이 역대 올림픽에 나선 선수들에 비해 부족했다. 사실상 무색무취였다. 변화를 모색하지 않으면 한국 유도의 위기가 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시 체력을 주무기로 삼되, 훈련 방식의 변화는 필요하다는 게 유도계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과거처럼 무작정은 산을 달리고, 쉼 없이 유도를 하면서 체력을 끌어올릴 순 없다. 이젠 유도도 과학적인 훈련 체계를 도입할 때다. 유도대표팀은 그동안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스포츠과학원)에 전력 분석과 식단, 심리 관련 도움만 받았다. 당장 대회에 출전에 성적을 내는 데 필요한 부분이다. 말그대로 1년에 한두 번 선수촌으로 '출장' 와서 도움을 주는 경우가 많았다. 스포츠과학원이 효율을 극대화하는 훈련 프로그램을 제공해도 일부만 적용됐다. 유도회 관계자는 "3년 앞으로 다가온 다음 올림픽에선 보다 체계적인 철저한 접근이 필요하다. 보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접근해서 유도 강국 면모를 되찾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