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과 돌길, 힘든 여행을 추억으로 만든 상그리아와 문어샐러드

 
 
“세계여행 준비는 어떻게 하셨어요?” “아무래도 가이드북을 많이 보셨겠네요?” 363일간의 세계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우리 부부에게 많은 사람이 여행 준비 방법에 관해 묻는다. 가이드북은 여행 기간을 통틀어 가장 여러 번 읽은 책이다. 대충도, 꼼꼼히도 읽었다. 물론 도움을 많이 받았다. 여행 초기에는 가이드북을 분석하다시피 공부했다. 꼼꼼히 계획을 짜고 방문할 도시의 순서를 정하고 각 도시의 관광 포인트(must see)와 숙소, 교통편과 식당을 확인했다. 하지만 여행을 떠난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아 그런 열의는 완전히 시들어버렸다. 피곤하고 귀찮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여행 일정이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빔 벤더스 감독의 파리, 텍사스 포스터. 배경이자 촬영지이자 영화 제목이 이곳을 꼭 가보고 싶었다.

빔 벤더스 감독의 파리, 텍사스 포스터. 배경이자 촬영지이자 영화 제목이 이곳을 꼭 가보고 싶었다.

 
그럴 때면 우리는 가이드북을 덮고 소설책과 영화, 음악이 안내하는 길을 따라 여행했다. 막연한 호기심도 우리의 나침반이었다. 예를 들어, 나는 오래전부터 미국 텍사스주에 있는 ‘파리’라는 작은 시골 도시에 가보고 싶었다. 빔 벤더스 감독의 80년대 영화 ‘파리, 텍사스’의 배경이자 촬영지이자 영화 제목인 곳이기 때문이다. 우연히 지도를 보다 ‘조슈아트리 국립공원’이라는 이름을 보고 전율을 느낀 짝의 의견대로 방향을 바꾼 적도 있다. 그가 좋아하는 밴드 U2의 전설적인 앨범 제목이 ‘조슈아트리’여서다.  
 
요네하라 마리가 쓴 미식 견문록을 읽고 저자가 찾아 헤맨 터키 과자 ‘할바’를 맛보러 터키로 떠나기도 했다. 이 여행방식은 썩 괜찮았다. 가이드북이 정해놓은 ‘꼭 봐야 할 것’을 모두 섭렵하는 만족감도 좋지만, 내 호기심이 연주하는 리듬에 맞춰 작가와 그들의 작품을 따라 가보는 것도 좋았다. 기대하지 않았던 것들을 우연히 마주쳤고 우연은 놀라움으로, 놀라움은 감동이 되기도 했다. 그것은 온전히 우리만 아는 감동이었다.  
 
밤 기차를 타고 포르투갈 리스본에 도착할 때도 그랬다. 가이드북이나 지도 같은 여행 필수품은 하나도 갖고 있지 않았다. 기차역에 있는 카페에서 아침으로 커피와 에그 타르트를 시켜놓고 내가 포르투갈에 대해 뭘 알고 있는지 머릿속을 뒤적여 봤다.  
 
일단, 제일 좋아하는 클래식 피아니스트 마리아 조앙 피레스가 먼저 떠올랐다. 당대 최고의 모차르트 스페셜리스트로 불리는 그녀가 이곳 포르투갈 출신이다(브라질에 살고 있지만). 포르투갈 전통 음악 ‘파두’를 들으며 달콤한 디저트 와인 ‘뽀르뚜’를 마시는 상상도 해봤다. 그러고 보니 모든 세계 일주 여행자들의 선배인 마젤란도 이곳 사람이군. 포르투갈은 음식·음악·건축 등 여러 곳에서 자신만의 것을 조용하지만 강렬하게 간직하고 있는 나라다. 물가는 싸고 사람들은 소박해서 ‘살아보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대학도시 포르투칼 꼬잉브라. 파두에 홀딱 반해 여기까지 찾아왔다. [사진 꼬잉브라관광청]

대학도시 포르투칼 꼬잉브라. 파두에 홀딱 반해 여기까지 찾아왔다. [사진 꼬잉브라관광청]

 
리스본에서 파두에 홀딱 반한 우리는 또 다른 파두를 듣기 위해 대학도시 꼬잉브라로 여정을 옮겼다. 월드뮤직에 대한 책 한 권을 읽고는 내 앞에서 마치 전문가 행세를 하던 짝의 정보에 의하면 꼬잉브라에는 리스본의 파두와 또 다른 갈래의 파두가 전해지고 있는데, 지금도 가수들이 검은 대학생 망토를 두르고 노래하는 것이 전통이다. 꼬잉브라 대학은 까마득하게 보이는 언덕 꼭대기에 있었고 숙소는 대학과 바로 붙어 있었다. 1년 치 여행 짐을 끌고, 이고, 지며 우리는 땡볕 아래서 고행하듯 돌길과 계단을 오르고 또 올랐다. 
 
현기증과 약간의 구역질이 나올 무렵, 자그마한 광장이 오아시스처럼 나타났다. 우리는 동시에 “휴식!”을 외치고는 눈앞의 식당 야외 테이블에 주저앉았다. 시원한 맥주 한 잔을 상상하며 메뉴판을 보는데 ‘문어 샐러드(salada de polvo)’가 눈에 들어왔다. 또 문어군. 리스본에서 먹었던 문어 국밥, 문어구이가 떠오르면서 갑자기 군침이 돌았다. 문어 샐러드 옆에 오늘의 추천 음료로 상그리아가 적혀 있었고 심지어 둘을 함께 주문하면 할인이 되는 세트메뉴 표시까지 있었다. 망설일 필요가 전혀 없다는 뜻이다.
 
포르투칼에서 만난 문어샐러드와 상그리아 [일러스트 명유미]

포르투칼에서 만난 문어샐러드와 상그리아 [일러스트 명유미]

 
손바닥만 한 볼에 샐러드가 소복이, 작은 유리 주전자에 얼음을 띄운 상그리아가 찰랑찰랑 담겨 나왔다. 문어는 고소한 맛에 상큼한 향이 났다. 고수·양파·오레가노·파슬리가 문어와 어울리고 있었다. 달콤하면서도 강렬한 향의 허브 딜을 넣어도 좋을 것 같았다. 육류에는 레드 와인, 해산물에는 화이트 와인이 정석이지만 문어샐러드는 레드 와인으로 만든 상그리아와 제법 잘 어울렸다. 아마도 레드 와인의 무거운 맛이 각종 과일과 탄산수에 희석돼서인 듯싶었다.  
 
강렬한 태양 탓인지, 달콤한 상그리아 탓인지, 아니면 와인을 부르는 맛의 문어 샐러드 탓인지, 우리는 조금씩 알딸딸해졌고 구역질이 날 만큼 힘들었던 언덕은 추억이 됐다. 그리고 여행 발견 목록에 ‘문어 샐러드와 상그리아’가 추가됐다. 문득 ‘이렇게 문어가 맛있으면 국가의 상징을 닭이 아니라 문어로 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그 요리! 문어 샐러드와 상그리아
그때를 떠올리며 집에서 만들어 본 문어 샐러드와 상그리아 [사진 명유미]

그때를 떠올리며 집에서 만들어 본 문어 샐러드와 상그리아 [사진 명유미]

 
문어 샐러드 
재료: 문어 다리 두세 개(취향껏 넣어도 좋다), 양파 1/3 (셜롯이라는 자주색 양파면 더 좋다), 토마토 2개, 마늘 2개, 고수 4줄기(없으면 말린 향신료 1/2 작은술), 이탈리안 파슬리 4줄기(없으면 말린 향신료 1/2 작은술), 오레가노 1/2 작은술, 올리브유 1큰술, 소금·후추 조금 
 

만드는 법  
①  문어는 취향에 따라 끓는 물에 삶아 익히거나 올리브유를 두른 팬에 굽는다. 삶는 경우 마늘을 편으로 썰어 팬에 올리브유를 두르고 마늘 칩처럼 구워둔다. 문어를 굽는 경우 소금·후추를 적당량 넣고 마늘을 편으로 썰어 함께 볶는다.  
② 야채를 먹기 좋은 크기로 썬다. 고수와 파슬리는 잎 부분 위주로 사용한다. 흰 양파를 사용하는 경우 찬물에 잠시 담가 매운맛을 뺀다.  
③ 문어가 어느 정도 식으면 모든 재료를 볼에 함께 넣고 소금·후추로 간을 한 다음 올리브유를 넣고 섞으면 완성. 맛있게 먹으면 된다.  
 
상그리아    
재료: 스페인 또는 포르투갈산 와인 반병, 오렌지 소다(데미소다 오렌지 맛 대처 가능) 한 캔, 브랜디(없으면 말고) 1/4cup , 오렌지·레몬(또는 라임) 각 1/2개, 딸기·사과·자몽 적당히, 얼음이나 설탕 취향에 따라.  
 
만드는 법  
① 과일을 모두 납작하게 썰어 병에 넣고 와인과 오렌지 소다, 브랜디를 함께 넣어 섞는다.  
② 오렌지 소다 때문에 단맛이 나기 때문에 1의 맛을 보고 기호에 따라 설탕을 넣어 녹인다. ③ 마지막에 얼음을 띄워 시원하게 마신다. 
 
※2014년부터 포르투갈과 스페인에서 만들어진 것만 ‘상그리아’라는 이름으로 판매할 수 있다는 유럽연합 법령이 생겼다. 스페인이나 포르투갈산 와인에 브랜디가 들어가야만 상그리아라는 이름을 걸고 팔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집에서 혼자 만들어 먹는데 누가 뭐라고 하랴
▶ 명유미 작가는
삶의 방식을 고민하며 2013년, 1년 동안 남편과 세계여행을 했다. 지금은 이 여행이 삶의 가장 중요한 양분이 되었음을 체감하며 살고 있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 그림책, 일러스트레이션, 아동 청소년책을 소개하는 ‘달걀책방'을 열고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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