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연예인 아파트였는데" 50살 서소문 아파트의 이별

4일 서대문구 미근동에 위치한 서소문 아파트의 모습. 최연수 기자

4일 서대문구 미근동에 위치한 서소문 아파트의 모습. 최연수 기자

4일 정오쯤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의 서소문 아파트. 외벽의 페인트칠이 벗겨진 아파트 1층엔 카페와 음식점이 즐비했다. 점심 시간대에 맞춰 밥을 먹으러 나온 직장인들로 거리가 북적였다. 1층 가게 사이 사이엔 아파트 동 호수가 작게 쓰여 있다. 아파트 입구 높이는 약 160cm 정도로 건장한 성인이라면 머리를 숙여야 올라갈 수 있는 구조다. '담배꽁초는 가게 휴지통에. 허름한 아파트라서 주민들은 깨끗히 살고 있습니다', '영하 날씨에 수도 계량기 동파 안되도록 수도꼭지를 조금 열어노십시요' 등 세월이 흔적이 보이는 벽에는 곳곳에 경비원이 써놓은, 맞춤법 틀린 당부들이 적혀있다.  

 

‘죽을 사(死)’자…4층 없는 ‘50살’ 아파트의 재개발

4일 서대문구 미근동에 위치한 서소문 아파트의 모습. 최연수 기자

4일 서대문구 미근동에 위치한 서소문 아파트의 모습. 최연수 기자

‘50살’ 먹은 서소문 아파트에 정부가 재개발 추진을 나섰다. 지난 3일 국토교통부가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 6차에 후보지로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의 경찰청 뒤편을 후보지로 선정하면서다. 이곳은 1972년 완공된 곳으로 하천을 덮고 지어진 아파트이기 때문에 재개발이 어렵다는 평가가 많았다. 서소문아파트는 부채꼴 모양의 이색적인 구조와 세월이 묻은 건물의 특색으로 드라마와 영화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서소문 아파트에는 주택 108세대, 상가 21세대 등 총 129세대가 생활하고 있다. 특이한 점은 이 아파트엔 4층이 없다는 것이다. ‘죽을 사(死)’자는 “재수가 없다”는 주민들의 의견에 따라 4층을 없앴다고 한다. 4층의 자리에는 5층이 대신한다. 경비원 최순찬(72)씨는 “4층을 주민들이 싫어해서 3층 다음에 5층이 있는 식으로 만들어졌다. 요즘 아파트는 그런 곳이 없지만, 서소문 아파트가 옛날에 지어진 아파트라 그렇다”고 설명했다. 오랜 기간 지켜온 서소문 아파트의 흔적은 현관에도 나타났다. 세대마다 문을 고쳐 사용해 현관문의 모양과 색이 달랐다.  

4일 서대문구 미근동에 위치한 서소문 아파트의 제각기 다른 현관문 모습. 김아라 인턴 기자

4일 서대문구 미근동에 위치한 서소문 아파트의 제각기 다른 현관문 모습. 김아라 인턴 기자

 

"이웃집 수저 몇 개인지 알 정도로 도심답지 않았던 곳"

4일 서대문구 미근동에 위치한 서소문 아파트의 모습. 최연수 기자

4일 서대문구 미근동에 위치한 서소문 아파트의 모습. 최연수 기자

갑작스러운 재개발 소식에 주민들은 반기면서도, 아쉬움의 목소리를 냈다. 서소문 아파트에서 37년간 산 주민 노모(63)씨는 “여기 주민들은 도심답지 않은 인간미가 있다”며 “누구네 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 알 정도다. 이웃의 아기가 태어나는 것도 보고 몇 세대가 변하는 걸 한 곳에서 지켜봤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세탁기 놓을 공간도 없을 정도로 비좁은 곳이지만, 편하고 익숙한 곳”이라며 “이 아파트가 2억 정도 하는데 2억이면 다른 곳에서 전세로도 못 산다”고 덧붙였다.

 
 재개발을 노리고 입주한 주민들은 환영했다. 주민 장모(78)씨는 “2006년에 이사를 왔는데 시끄럽고 좁은 서소문 아파트가 드디어 재개발된다니 만세다 만세”라며 “하루빨리 재개발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소문 아파트는 39~40㎡의 크기다. 장 씨의 집은 현관에서 바라봤을 때 한눈에 집의 구조가 파악될 정도로 작았다. 오른편엔 긴 거실과 연결된 좁은 부엌과 방이, 왼편엔 옥색 타일이 깔린 좁은 화장실이 보였다. 집이 좁아 세탁기가 거실에 설치돼 있었다.

 

“연예인 아파트라 불렸던 곳”…상인들은 정든 이웃에 아쉬워해

사진은 역세권 고밀 개발 사업이 추진될 서대문구 미근동에 위치한 국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주상복합아파트인 '서소문아파트' 모습.뉴스1

사진은 역세권 고밀 개발 사업이 추진될 서대문구 미근동에 위치한 국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주상복합아파트인 '서소문아파트' 모습.뉴스1

서소문 아파트 1층에는 주민과 함께 오랜 기간 터를 잡고 있던 상인들이 많다. 1979년부터 서소문 아파트 1층에서 유리집을 하는 조기행(60)씨는 “이 건물이 7층짜리였는데 79년도엔 이 건물이 제일 높았다”며 “여기에 연예인도 살았다고 해서 사람들은 ‘연예인 아파트’라고도 불렀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그러면서 “투기 목적으로 서소문 아파트를 산 사람들은 ‘얼싸 좋다’고 하겠지만 나는 힘 떨어질 때까지 이곳에서 일을 하고 싶었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21년간 장사를 해온 자매분식 김수재(69) 사장은 재개발 소식에 가장 먼저 정든 상인과 손님들을 떠올렸다. 김씨는 “서소문 아파트 인근에 빌딩이 들어오면서 경찰청이나 농협 직원 등이 많이 찾아왔다”며 “그들이 다른 지역에 발령 났다가 몇 년 뒤에 다시 찾아오면서 ‘아직도 가게가 있냐’, ‘아이들이 많이 컸냐’며 물어보기도 할 정도로 가족 같은 관계였다”고 했다. 김 씨는 “인근 가게 상인분들과도 다들 가족같이 오래된 사이라 정들어서 벌써 아쉬운 마음”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국토부는 서소문 아파트를 포함한 미근동 일대를 고밀 개발해 500가구를 공급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국토부 관계자는 “구체적인 사업계획은 나오지 않았지만, 서소문 아파트는 철거해 진입도로나 공원으로 사용할 계획”이라며 “소유주들은 토지 등기 여부와 상관없이 아파트 입주권을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