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정 한마디에 여당 쪼개졌는데…文 "한미훈련 신중 협의"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의 한 마디가 정부 부처와 여당까지 뒤흔들고 있다. 지난 1일 김 부부장이 남북관계 정상화를 시도하는 한국 측에 ‘한미연합훈련 중단’을 요구한 지 나흘 만에 국내에선 정제되지 않은 이견이 표출하며 혼란이 가중되는 모양새다.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선 60여명의 의원이 연판장을 돌리며 연합훈련 연기를 요구한 데 대해 송영길 대표가 이를 일축하는 등 내분 양상마저 보인다.
 

이대로라면 연합훈련 연기 여부를 두고 어떤 결론이 도출되더라도 내부 갈등이라는 후폭풍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연합훈련을 예정대로 실시할 경우 모처럼 만난 남북관계 진전 기회에 재를 뿌렸다는 우려가, 훈련이 연기 혹은 중단될 경우에는 북한의 위협때문이 한·미 연합 준비 태세를 점검할 기회를 스스로 포기했다는 비판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결단을 내려야 할 문 대통령은 지난 4일 서욱 국방부 장관에게 “여러 가지를 고려해 (미국 측과) 신중하게 협의하라”고 밝혔다. 연기를 신중하게 협의하란 건지, 예정대로 진행할 것을 신중하게 협의하란 건지 알 수 없는 애매한 입장이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남북 통신연락선이 복원된 지 나흘만인 지난 1일 담화를 통해 한미연합훈련 중단을 요구했다. [연합뉴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남북 통신연락선이 복원된 지 나흘만인 지난 1일 담화를 통해 한미연합훈련 중단을 요구했다. [연합뉴스]

통일부·국정원이 꺼낸 '연합훈련 연기' 

연합훈련을 둘러싼 혼란이 가중된 배경엔 주무부처인 국방부의 침묵이 길어지는 가운데 통일부·국정원 등이 연합훈련 연기론을 띄우며 앞서나간 것도 악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통일부 고위 당국자는 지난달 30일 “개인적으론 물론, 당국자로서도 연합훈련을 연기하는 게 좋겠단 생각”이라며 훈련 연기론을 공론화했다. 
지난달 27일 남북 통신 연락선이 복원된 지 사흘 만에 나온 발언에 대해 통일부가 남북관계 개선을 주도하는 부처라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이런 목표에 매몰된 나머지 지나친 저자세로 일관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은 지난 3일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 출석을 자처해 "한미연합훈련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것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남북관계 정상화를 위해 연합훈련 일정 변경을 논의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임현동 기자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은 지난 3일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 출석을 자처해 "한미연합훈련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것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남북관계 정상화를 위해 연합훈련 일정 변경을 논의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임현동 기자

지난 3일엔 정보기관 수장이 직접 나서 연합훈련 연기 필요성을 강조했다. 박지원 국정원장은 이날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대화와 모멘텀을 이어가고 북한 비핵화의 큰 그림을 위해선 한미연합훈련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것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정보위 소속 의원들이 전했다.. 
야당은 국정원장 자격으로 특정 현안에 대한 정무적 견해를 밝힌 것은 부적절하다고 비판했다. 본연의 임무인 객관적 정보 분석이 아니라 주관적 해석을 담은 의견을 내놨다는 것이다. 정보위 간사인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국정원은 정보 부서이지 정책 부서가 아니다”라며 “국정원이 김여정 부부장의 하명기관으로 전락했다”고 말했다.
 

"연기해야"vs"이미 늦었다" 쪼개진 與 

한미연합훈련 연기를 놓고 더불어민주당이 둘로 쪼개졌다. 민주당 의원 60여명이 연합훈련 연기를 주장하는 연판장에 서명한 가운데, 송영길 당 대표는 "이미 준비가 다 진행되고 있다"며 이를 일축했다. 사진은 경기도 평택시 캠프 험프리스 모습. [연합뉴스]

한미연합훈련 연기를 놓고 더불어민주당이 둘로 쪼개졌다. 민주당 의원 60여명이 연합훈련 연기를 주장하는 연판장에 서명한 가운데, 송영길 당 대표는 "이미 준비가 다 진행되고 있다"며 이를 일축했다. 사진은 경기도 평택시 캠프 험프리스 모습. [연합뉴스]

연합훈련을 둘러싼 논란이 좀처럼 진화하지 않으며 정치권에도 불똥이 튀었다. 국민의힘에서 제기한 ‘김여정 하명’ 주장에도 60여명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연합훈련 연기를 주장하는 연판장에 서명했다. 
 
문제는 당 차원의 숙의조차 거치지 않은 채 이같은 행동이 이뤄졌다는 점이다. 정작 송영길 당 대표는 5일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한·미 간에 합의된 훈련은 불가피하다”며 연합훈련을 예정대로 진행해야 한다는 원칙론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남북 간에도 협상이 재개되면 여러 고려 요소가 있겠지만 통신선이 막 회복됐을 뿐”이라며 “시간도 너무 촉박하다. 이미 준비가 다 진행되고 있는데 (연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결론이 미뤄지는 사이 한·미 군 당국은 이미 지휘관 세미나와 전술토의 등 사실상의 연합훈련 준비에 돌입한 상태다. 주무부처인 국방부는 아직 미국 측에 연합훈련 연기·중단 등의 요청을 하지 않은 상태다. 앞서 지난 3일 존 커비 미 국방부 대변인은 “한국으로부터 훈련 중단 요청을 받은 바 없다”고 밝혔다. 
이대로라면 오는 10일 본격적인 연합훈련을 위한 사전연습 성격의 위기관리참모 훈련이 시작되고, 16일엔 연합지휘소훈련(CCPT)이 진행되는 등 사전에 계획된 대로 연합훈련 일정이 추진될 가능성이 더 커보인다.
 
이와 관련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 출신(예비역 대장)의 김병주 민주당 의원은 5일 당 정책조정회의에서 “(연합훈련) 연기나 취소를 주장하기에는 너무 늦은 시점”이라며 “올림픽으로 따지면 예선 경기가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이어 “연합훈련이 정치적 협상의 도구로 쓰이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연합훈련 일정은 정부에서 추진하는 전시작전권 반환 단계와도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고 말했다. 연합훈련을 실시하지 못하면 전작권 환수 조건을 충족하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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