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앞도 모른 文정부…"위협 아니다" 다음날, 北 더 큰 도발

북한 탄도미사일 발사, 올들어 다섯번째.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북한 탄도미사일 발사, 올들어 다섯번째.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북한이 동해상으로 미상(未詳·정체가 불분명한)의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고 합동참모본부가 15일 밝혔다. 정부가 지난 11~12일 북한의 장거리 순항 미사일 발사에 대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위반은 아니다"라며 의미를 축소하는 듯한 태도를 보인지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서다.
 
합참은 이날 "북한이 오늘 오후 중부내륙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미상 탄도미사일 두 발을 발사했으며, 추가정보에 대해서는 한·미 정보당국이 정밀 분석 중"이라고 밝혔다. 비행 거리 등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일본 교도 통신은 방위성 발표를 인용해 "북한이 탄도 미사일로 추정되는 발사체를 발사했다. 해당 발사체는 일본의 배타적경제수역(EEZ) 밖에 떨어졌다”고 보도했다. 중거리 탄도미사일일 가능성이 있다.  
 
앞서 북한은 지난 13일 사거리가 1500km에 달하는 신형 장거리 순항미사일을 발사했다고 밝혔다. 불과 닷새 내에 두 차례에 걸쳐 미사일을 발사하며 긴장을 고조시켰다.
 

정부 소극 대응, 北 연이은 발사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올 들어 다섯번째다. 하지만 이날 탄도미사일 발사는 정부가 직전 북한의 장거리 순항 미사일 시험발사에 대해 사실상 큰 전략적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듯한 입장을 밝힌 직후에 이뤄졌다는 점에서 더 주목된다.
 
북한은 순항미사일 관련 사업을 '전략 무기 개발'로 규정하며 사실상 전술핵 능력을 대놓고 과시했는데도, 한국 정부는 북한의 순항 미사일 발사는 안보리 결의나 남북합의 위반이 아니라는 입장을 밝히며 북한의 무력 도발과 핵 위협을 축소 평가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지난 14일 외교통일안보 분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 질의에 답하는 정의용 외교부 장관. [국회방송]

지난 14일 외교통일안보 분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 질의에 답하는 정의용 외교부 장관. [국회방송]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지난 14일 외교·통일·안보 분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이 ‘북한의 순항 미사일 발사가 남북 합의를 위반한 것은 아니냐’고 묻자 “판문점선언이나 평양공동선언엔 순항미사일과 관련한 내용은 포함돼 있지 않다”며 합의 위반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또 "순항 미사일 발사는 안보리 결의를 위반한 것은 아니다"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외교·통일·국방부가 전날 발표한 공식 입장에서도 "분석 중"이라고만 했을 뿐 북한의 장거리 순항 미사일 발사를 명백히 위협으로 규정하지 않았다. 우려나 유감조차 표명하지 않았다. 특히 정 장관은 대정부 질문 답변에서 “미국도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발사할 때와는 다른 low-profile(저자세) 반응을 보이고 있다”며 순항미사일 발사를 대수롭지 않은 일처럼 얘기했다.
 
그런데 북한은 정 장관의 이런 발언이 나온지 하루만에 보란듯이 또 미사일을 쏜 것이다. 이번에는 탄도미사일이라 명백한 안보리 결의 위반, 즉 제재를 부과할 수 있는 발사였다. 게다가 합참이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포착한 낮 12시 30분 무렵에는 방한 중인 왕이 중국 외교 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 정의용 장관 간에 양자 회담 뒤 오찬이 예정돼 있었다. 북한의 최대 우방국인 중국의 외교 수장이 공식 외교 일정을 수행하는 중에 탄도미사일 도발을 감행한 것이다. 거침없는 대남 도발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북 핵개발 의지엔 "대내용 메시지" 

북한은 지난 11~12일 신형 장거리 순항미사일을 발사하며 한반도 긴장을 조성했다. 특히 순항미사일을 '전략무기'로 규정하며 핵무기 개발 의지를 대내외에 피력했다. 그럼에도 한국 정부는 이같은 미사일 발사가 남북합의 위반은 아니란 점을 강조하는 위협을 축소 평가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조선중앙통신]

북한은 지난 11~12일 신형 장거리 순항미사일을 발사하며 한반도 긴장을 조성했다. 특히 순항미사일을 '전략무기'로 규정하며 핵무기 개발 의지를 대내외에 피력했다. 그럼에도 한국 정부는 이같은 미사일 발사가 남북합의 위반은 아니란 점을 강조하는 위협을 축소 평가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조선중앙통신]

하지만 정부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비핵화 의지가 굳건하다는 입장에서 변함이 없다. 
 
정의용 장관은 대정부질문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핵무기 개발 의지를 수차례 강조한 것에 대해 “(북한 주민들에게 보내는) 대내적 메시지로 보고 있다”고 평가했다. 김 위원장이 실제론 한·미 양국을 포함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한반도 비핵화’를 이행할 의지가 있는데, 다만 대내 결속을 위해 본심과 다르게 핵 개발을 계속하는 것처럼 메시지를 내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 가능한 발언이었다.
 
해당 발언은 ‘김 위원장 본인이 지난 4년간 핵무기를 중단없이 발전시켜왔다고 이야기했는데, 어떻게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있다고 무책임하게 말하느냐’는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 질의에 답변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정 장관은 또 “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를 따지는 것보다 그가 약속한 내용을 행동에 옮기도록 계속 압박하고 협상을 통해 결과를 유도하는 것이 현실적 대책”이라는 말도 남겼다.

 

남북관계 욕심에 '北 위협'은 외면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노동당 8차 대회에서 핵 잠수함 개발을 공식화했다. 사진은 지난해 10월 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공개된 발사관 6개를 탑재한(6연장) 신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신형 SLBM 동체에 '북극성-4A'로 추정되는 글씨가 찍혀 있었다. [연합뉴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노동당 8차 대회에서 핵 잠수함 개발을 공식화했다. 사진은 지난해 10월 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공개된 발사관 6개를 탑재한(6연장) 신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신형 SLBM 동체에 '북극성-4A'로 추정되는 글씨가 찍혀 있었다. [연합뉴스]

이같은 입장은 지난 7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이 북한의 영변 원자로 재가동이 사실이라고 해도 남북 합의를 위반한 행동은 아니라고 답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당시 최 차관은 “4·27 선언이나 9·19 선언의 합의에 북한이 가시적으로 취한 조치들은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정부가 남북관계 개선에만 집중한 나머지 점증하는 북한의 핵 위협은 외면하거나 애써 의미를 축소하는 듯한 태도에 북한이 무력 도발로 응수하면서, 결국 안일한 인식을 보여온 정부도 한반도 긴장 고조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북한의 무력 도발과 핵 개발에 대한 정 장관의 인식은 과거에도 수차례 문제가 됐다. 지난 4월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북한의 2019년 창린도 해안포 사격 및 2020년 5월 비무장지대 감시초소(GP) 총격에 대해 “9·19 남북군사합의의 사소한 위반”이라고 발언해 논란을 샀다. 

 
정 장관은 또 “저희가 면밀히 조사했지만 (북한이) 굉장히 절제된 방향과 방법으로 시행했다”고도 했는데, 이같은 도발 당시 정 장관은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었음에도 오히려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는 해명을 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