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실]"금연 상담 갔다 26년 만에 알았죠"…어른 ADHD의 슬픔

"'하지 마. 조용히 해. 입 닫아.' 여아 ADHD 환자들이 일반적으로 받는 사회적 조치인 억압이었죠. 저도 '네가 남자로 태어나야 했는데'라는 말을 지금껏 들으면서 자랐어요." -정지음 작가(〈젊은 ADHD의 슬픔〉저자)
 "여자아이가 남자아이와 똑같은 ADHD 증상을 보여도 부모님이나 선생님들은 왠지 통제가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을 더 쉽게 해요." -신지수 작가(〈나는 오늘 나에게 ADHD라는 이름을 붙여줬다〉저자)
 

정지음 작가는 스물 여섯살이 되어서야 ADHD 진단을 받았다. 장유진 인턴

정지음 작가는 스물 여섯살이 되어서야 ADHD 진단을 받았다. 장유진 인턴

어른이 된 뒤에야 자신이 ADHD(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였다는 걸 안 두 명의 여성이 있습니다. 본인을 따라다닌 불완전함이 ADHD에 바탕을 뒀다는 걸 뒤늦게 깨달은 거죠. 그리고 이들은 자신의 장애를 어릴 때 발견하지 못한 이유가 '여자아이'였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왜 그런 걸까요. 그리고 어른도 ADHD로 고통을 받는 걸까요. 밀실팀은 최근 성인 ADHD 극복기를 책으로 출간해 화제를 모은 정지음·신지수 작가에게 물어봤습니다.

"스스로가 이상하다는 건 알았지만…" 

〈젊은 ADHD의 슬픔〉을 출간한 정지음 작가. 백경민

〈젊은 ADHD의 슬픔〉을 출간한 정지음 작가. 백경민

"나한테서 냄새가 나는 것 같은데, 물증은 없고 심증만 있었어요. ADHD 진단을 받고 나서야 '똥 밟았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렇지만 갈아 신을 신발이 없기 때문에, 나는 똥 밟은 신발을 계속 신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이구나."
 
장애를 알게 된 건 스물여섯 살. 정지음 씨가 남들과 다른 원인을 찾은 건 담배 때문이었죠. 오랫동안 피웠던 담배를 끊기 위해 병원을 찾았을 때 ADHD를 알게 됐습니다. 그냥 금연약만 처방받으려던 그에게 의사는 "흡연이 문제가 아닌 것 같다"고 말했죠.

생각지도 못한 진단에 하늘이 노래진 정씨는 자신이 '정상'에서 멀어진 '비정상'이란 생각에 좌절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주변 사람들이 왜 자신에게 '이상하다' '특이하다' '시끄럽다'고 했는지 알게 됐죠.


"'또XX 같다' '4차원이다' '엉뚱하다' '이해가 안 간다'는 식의 말을 많이 들었어요." 
신지수 작가는 어른이 된 뒤 ADHD 진단을 받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장유진 인턴

신지수 작가는 어른이 된 뒤 ADHD 진단을 받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장유진 인턴

임상심리학자로 일하다 스스로 병원을 찾아 ADHD 진단을 받은 신지수 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태어난 지 30년 만에 ADHD임을 알게 된 신씨는 "그저 성격 문제라고 치부해왔다. 대인관계가 왜 이렇게 어렵지, 공부도 열심히 하는데 왜 잘 안 되지 하면서 힘들게 살았다"고 회상합니다.

그는 진단 후 "이제 진짜 장애를 가졌다는 걸 인정해야 할 때가 온 것 같아서 무서웠다"고 해요. 다만 조언을 구할 수 있고, 의지할 수 있는 전문가가 생긴다고 생각하니 마음 한편으론 안도감도 생겨났습니다.

"ADHD를 어릴 때 알았더라면…"

'교실 안보다 복도가 익숙했던 아이'. 

신씨가 본인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교실에 있는 게 답답하니까 쫓겨나고 싶어서 수업 듣다가 갑자기 일어나서 소리를 지르거나 일부러 무언갈 떨어뜨리거나 했었어요."

두 사람 모두 몇 년째 꾸준히 약물을 복용하고 치료받으면서 증상이 많이 호전됐습니다. 그래도 '어릴 때 ADHD 진단을 받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여전히 남습니다.

정씨는 "ADHD는 중요한 선택을 내리는 순간마다 방해한다"면서 "내가 더 나은 삶을 살지 못하도록 만드는 질병"이라고 토로합니다. 대표적인 예로 대입 면접을 들었는데요. "면접 때 면접관들 질문이 머릿속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아서 '뭐라고요?'만 반복하다가 나왔어요. 당연히 떨어졌죠. 이런 게 많아요." 어렸을 때 병을 확인했다면 적어도 지금보다는 더 많은 가능성과 기회를 고를 수 있는 사람이 됐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입니다.

어렸을 적 ADHD인데도 잘 몰라서 어른이 되어서야 깨닫는 사람들이 많다. 장유진 인턴

어렸을 적 ADHD인데도 잘 몰라서 어른이 되어서야 깨닫는 사람들이 많다. 장유진 인턴

신씨도 "어린 시절 성격이나 가치관, 태도가 결정되는 부분이 크다. 그때 지금과 좀 더 비슷한 모습이었다면, 친구들과 비슷한 아이였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합니다. 그는 교사 등 주변 사람들에게 지적받고 욕먹는 게 일상이었다고 회상하죠. 미리 알았더라면 훨씬 더 행복한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냈을 거라고 되뇌어봅니다.

실제로 성인 ADHD는 성인이 된 뒤 발병하는 게 아닙니다. 어렸을 적 나타난 장애가 어른이 될 때까지 쭉 이어져 오다가 뒤늦게 진단을 받게 되는 거죠. 진단을 빨리 받지 못한 환자들은 다 커서도 ADHD를 의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의료계에 따르면 성인의 약 4%가 ADHD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ADHD를 가진 성인 4명 중 1명만 치료를 받습니다.

"네가 남자로 태어났으면 더 나았을 텐데"

두 사람에게 아쉬운 점은 이것뿐이 아닙니다. '성별'의 문제도 크다는데요. 여아의 ADHD 진단율은 남아보다 뚜렷하게 낮습니다. 

정씨는 "내가 바로 여자아이여서 ADHD 진단을 놓친 케이스"라며 "'너는 남자로 태어났어야 한다'는 말을 수없이 들었다"고 해요. 정씨의 부산스러움, 산만함이 활동적인 남자아이들이 갖는 특성이라고 여기는 사회적 편견 때문입니다.

 
작가이면서 동시에 임상심리학자인 신씨는 "교실에서 똑같이 떠들고 있어도 여자아이가 남자아이보다 2~3배 정도 지적을 더 받는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우리 사회는 ADHD 증상을 보이는 여아들에게 더 큰 순응을 요구한다"고 강조했죠. 부모, 교사 모두 다를 바 없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사회적 억압 속에 여자아이들은 더 자신을 억제하고 견디는 편"이라고 설명합니다.

중앙일보와 화상 인터뷰를 하고 있는 신지수 작가. 백경민

중앙일보와 화상 인터뷰를 하고 있는 신지수 작가. 백경민

ADHD는 가볍게 생각하기 쉽지만, 그리 가볍지 않은 병입니다. 어릴 때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면 성인이 된 뒤 더 큰 결과를 낳을 수 있죠. 우울증, 불안 장애 등 여러 정신질환을 동반하기 때문입니다. 신씨는 "진단 기준 자체를 바꾸기보다 여성의 입장에서 조금만 더 생각해보고 질문지만 살짝 바꿔도 많은 아이들의 증상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그래도 두 사람은 조금 늦었지만 ADHD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나가고 있습니다. 이들이 용기를 내고 고백한 덕에 자신도 ADHD임을 깨닫고, 그와 공존하는 방법을 배우려는 성인들도 늘어날 겁니다. 

 

"ADHD 환자들은 획일화를 요구하는 이 세상을 다양하게 만든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힘들지만 세상을 더 좋은 쪽으로 굴리고 있는 것 아닐까요."-정지음 작가
"낙인을 스스로 찍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좀 더 자유분방하게 할 수 있는 걸 찾다 보면 자신에게 맞는 걸 찾을 수 있을 거예요."-신지수 작가
밀실은 '중앙일보 레니얼 험실'의 줄임말로 중앙일보의 20대 기자들이 도있는 착취재를 하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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