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묘지가 길가에…재해와 공존하는 일본인의 운명적 삶

[더,오래] 양은심의 도쿄에서 맨땅에 헤딩(61) 

 
10월 8일 이른 아침, 여행지 야마가타(山形)에서 눈을 떴다. 텔레비전을 켜니 도쿄에 지진이 있었다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10시면 잠자리에 드는 나는 저녁 뉴스를 보지 않는다. 7일 밤 10시 40분쯤 수도권 지역에 지진이 있었다고 했다. 나는 우선 가족에게 연락했다. 괜찮단다. 다음은 친구들 단톡방에 연락했다. 다들 아무 일 없단다. 그제야 안심하고 앉아 뉴스를 봤다.

 
지바현(千葉県)에서 진도 6을 넘는 강진이 있었고, 그 영향으로 사이타마 현(埼玉県)과 도쿄 일부 지역도 진도 5를 넘었다. 도쿄에서 진도 5 이상의 강진이 발생한 것은 2011년 3월 11일에 있었던 동일본 대지진 이후 10년 만이다. 일주일 동안은 여진에 주의해야 한단다.

 

일본에서 나고 자란 남편과 아이들은 지진에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가며 그저 담담하게 대처한다. [사진 pxhere]

일본에서 나고 자란 남편과 아이들은 지진에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가며 그저 담담하게 대처한다. [사진 pxhere]

 
7일 10시 40분쯤 지진이 있었고, 그 이후의 전철 운행에 차질이 생겼다. 귀가 곤란자가 속출했다. 마지막 전철 시간은 다가오는데, 역으로 들어갈 수 없다. 인원 제한을 두기 때문이다. 택시 타는 곳에도 긴 줄이 생겼다. 좀처럼 택시는 오지 않는다. 이용자가 많기 때문이다. 2011년 지진 때를 떠올리게 한다.

 
8일 아침 뉴스에서 보도되는 사이타마 현 가와구치(川口) 역 앞은, 전철 운행에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에 맞춰 출근하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자연재해가 끊이지 않는 나라, 일본. 지진과 태풍 피해와 공존해야 하는 운명의 사람들. 2011년 대지진 후 일본을 떠나거나 다른 나라에 거처를 마련하는 부자가 많다고 한다. 돈이 있는 사람은 자유롭게 살 곳을 선택할 수 있으니 그나마 낫다. 그러나 죽으나 사나 이 땅에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취향에 맞춰 이사하듯이 다른 나라로 떠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10월 9일.토요일. 요미우리 TV. 웨이크 업(wake up) 방송 일부 캡쳐.

10월 9일.토요일. 요미우리 TV. 웨이크 업(wake up) 방송 일부 캡쳐.

 
일본 사람은 민간신앙에서 신도(神道), 불교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것에 손을 모은다. 자연재해가 잦음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신앙의 상징이었던 신사는 현대에 들어와 주요 관광지가 되었다. 절과 신사가 같이 있기도 해 역사를 모르면, 이게 절 인지 신사인지 헷갈린다. 헤이안 시대에서 에도시대까지 1000년여 동안 이어진 신불습합(神仏習合)이란 정책의 흔적이다. 신사 안에 절이 있는 것이다.

 
곳곳에서 작은 지장보살이 모셔진 것을 볼 수 있다. 길을 가다가도 빨간색 턱받이를 했거나 모자까지 쓴 지장보살이 눈에 들어온다. 앞에는 꽃이 꽂혀 있다. 처음 일본에 왔을 때는 그 모습이 불길하게 느껴졌다. 마치 산속에 있어야 할 묘지가 길가에 있는 듯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일본의 수도관은 대부분 40년의 수명을 넘긴 것이 많다. 수도관 파열 문제가 지진을 계기로 부각되고 있다. [사진 pxhere]

일본의 수도관은 대부분 40년의 수명을 넘긴 것이 많다. 수도관 파열 문제가 지진을 계기로 부각되고 있다. [사진 pxhere]

 
일본에는 주택가에서도 쉽게 묘지를 볼 수 있다. 대부분 절 안에 있는 묘지이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 보니 절 안이 아니어도 길가에 있는 묘지를 종종 볼 수 있었다. 그 모습이 생경했다. 차가 다니는 길가에 있는 묘지라니. 묘지가 먼저 생기고 그 후에 길이 생겼을 것이란 짐작을 해본다.

 
일본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보다 죽음을 완만하게 받아들인다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 수없이 되풀이되는 자연재해 속에서 언제 무슨 일로 목숨을 잃을지 모른다는 각오가 유전자 속에 흐르고 있다고나 할까.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나는 2011년 대지진 이후 노후는 한국으로 돌아가겠다는 생각이 강했다. 일종의 트라우마다. 만약 이번에도 여행지가 아닌 도쿄에서 7일에 있었던 강진을 경험했다면, 그 트라우마가 다시 시작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남편과 아이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간다. 그저 담담하게 대처할 뿐이다. 그들은 유치원 때부터 지진 대피 훈련을 받아왔다. 어렸을 적 지진 경험이 없는 나만 불안해한다. 일본 생활이 30년이 되어 가는데도 말이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는 노후화한 다리가 큰 문제로 떠올랐다. 그 후 10년이 흘렀다. 이제 다리 문제를 뉴스에서 보는 일은 사라졌다. 그리고 2021년 10월 7일. 진도 5도를 넘는 지진이 있었다. 이번에 떠오른 문제는 수도관이었다. 지진 후 뉴스에서는 맨홀 뚜껑이 열리고 수돗물이 뿜어져 나오는 영상이 많았다. 일본의 수도관은 대부분 고도 경제성장 시기(1955~1972)에 설치된 것으로 40년의 수명을 넘긴 것이 많다고 한다. 벌써 수도관 파열 문제가 생기고 있었다. 그것이 이번 지진을 계기로 부각된 것이다. 수도관 1㎞ 교체 비용이 1억 엔이란다. 수도관의 효율적인 관리를 위해 민간위탁을 검토하는 지방자치단체도 있다. 시민 생활에 제일 중요한 기본 조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물에 관한 관리를 민간에 맡겨서 될지에 대한 우려의 소리도 들린다. 개인적으로는 그런 것까지 민간에 맡기면 정부는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의문이다. 민간이 할 수 있는 효율성을 정부 기관에서 높이지 못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해마다 길 위에 펼쳐지는 공사 현장을 보며 “또 공사하네”라며 비난하곤 했었다. 땅 밑을 통과하는 갖가지 관. 수도관, 하수관, 가스관, 송전선 등. 땅이 흔들리는 지진이 많은 일본에서 지하의 관을 관리한다는 것은 얼마나 무거운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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