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설화 진짜 주인공은 환웅”

지배층보다 민중의 활약상에 무게를 두고, 장보고 장군 등의 해상활동과 환웅과 단군 이야기를 기록한 일연의 『삼국유사』야말로 한국사의 틀을 잡아주고 근본을 다지게 해준 역사서라는 최광식 고려대 한국사학과 명예교수.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지배층보다 민중의 활약상에 무게를 두고, 장보고 장군 등의 해상활동과 환웅과 단군 이야기를 기록한 일연의 『삼국유사』야말로 한국사의 틀을 잡아주고 근본을 다지게 해준 역사서라는 최광식 고려대 한국사학과 명예교수.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삼국사기』는 정사, 『삼국유사』는 야사라는 인식부터 바꿔야 합니다. 『삼국유사』야말로 한국 역사의 틀을 잡아주고 근본을 다지게 해준 역사서입니다.”

최광식 고려대 한국사학과 명예교수의 말이다. 최 명예교수는 “『삼국유사』라고 하면 대개 건국 설화나 불교 관련 민담을 모은 이야기책 정도로 여기는데, 당대의 정치·사회적 고민과 사관을 담아 편찬한 훌륭한 역사책”이라고 강조했다. 『삼국유사』는 몽골과의 항쟁기에 집필했기에 프로파간다적 메시지도 많이 담았다는 설명이다.

역사학자로선 드물게 국립중앙박물관장·문화재청장·문화부장관 등 3개 요직을 거쳐 2013년 강단으로 복귀한 그는 2018년 정년 퇴임한 뒤 『삼국유사』와 한국 고대사에 대한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최근 펴낸 『삼국유사 읽기』는 대중에게 이 역사서에 대한 이해를 도와야겠다는 평소의 갈증을 푼 대중 교양서다. 고려대 인근의 연구실에서 최 명예교수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다음은 일문일답.

일연은 『삼국유사』에 『삼국사기』에는 없는 고조선을 집어넣었다.
“『삼국사기』가 신라 건국부터 멸망까지 1000년 정도의 시간적 범위를 다뤘다면, 『삼국유사』는 고조선부터 고려 건국까지 3000년이 넘는 시간을 담았다. 『삼국유사』는 고조선과 북부여·동부여·발해까지 다뤄 공간적으로 한반도와 만주뿐 아니라 요하 지역과 연해주까지 한국 역사의 영역을 넓혔다. 중국의 동북공정을 막을 수 있는 소중한 근거다. 가야의 건국과 역사를 다룬 덕분에 일본의 임나일본부설도 반박할 수 있게 됐다. 흥미로운 건 억불 정책을 편 조선이 건국한 지 2년 만에 승려가 집필하고 불교 이야기가 많이 담긴 『삼국유사』를 편찬했다는 점이다. 『삼국유사』가 역사의 시작점으로 ‘조선’이라는 명칭을 내세웠기 때문으로 보인다.”
 

단군설화를 기록한 것도 중요한 업적으로 꼽힌다.
“사실 단군설화에서 단군을 다룬 내용은 얼마 없다. 진짜 주인공은 환웅이다. 천제의 아들로 풍백·우사·운사와 3000명의 무리를 거느리고 내려왔다는 것은 농경의 시작을 의미한다. 곰과 호랑이에게 쑥과 마늘을 준 것도, 웅녀와 결합해 단군을 낳은 것도 주체는 환웅이다. 정작 단군에 대한 내용은 매우 적다. 그런데 대몽 항쟁이나 일본강점기 등을 거치며 건국신화가 강조되면서 단군이 주목받게 됐다.”
 


『삼국유사』의 한 부분. [사진 문화재청]

『삼국유사』의 한 부분. [사진 문화재청]

『삼국유사』가 해양을 강조했다고 주장했다.
“김수로의 부인 허황옥이 인도의 아유타국에서 바다를 건너왔다는 이야기나, 석탈해가 신라에 가기 전 금관가야에서 김수로와 다투다가 패하자 선단을 이끌고 신라로 도망쳤다는 이야기, 연오랑과 세오녀가 일본에 가서 왕과 왕비가 되었다는 이야기 등이 대표적이다. 당시에 항해술과 해상로가 매우 발달했음을 보여준다. 수중릉을 만든 문무왕, 한·중·일 무역의 중심이 돼 서해를 장악한 장보고 이야기도 모두 『삼국유사』에 남겨진 소중한 기록이다.”
 

왜 바다를 강조했을까.
“고려는 벽란도를 통해 활발한 국제 무역을 했다. 아라비아 상인이 드나들며 ‘코레’라고 불리다 지금의 ‘코리아’가 됐다. 시선이 바다에 있었다. 대몽 항쟁기를 거친 일연의 개인적 경험도 중요하게 작용했다. 고려가 몽골의 침입을 받아 강화도로 천도하고 바다에 약한 적을 효과적으로 막았던 데서 기인한 것 같다.”
 

다른 역사서보다 민중의 비중이 두드러진다고 봤다.
“『삼국사기』‘열전’엔 86명이 기록됐는데 대부분 장군·재상·화랑·유학자 등 지배층이다. 『삼국유사』엔 서민이 많이 등장한다. 거타지는 병사인데도 활약상을 자세히 전하고, 미시랑은 평민이지만 화랑의 으뜸인 국선이 됐다. 여종인 욱면은 주인인 귀족보다 먼저 성불의 길에 오른다. 이는 대몽 항쟁 과정에서 지배층뿐 아니라 피지배층까지 모두 힘을 합쳐야 국난을 극복할 수 있다는 의식이 싹텄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