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전세대출 죄기 본격화…계약 갱신시 증액분만 대출

은행의 전세대출 조이기가 본격화하고 있다. 실수요자 보호를 위해 금융당국이 은행권의 대출 총량 규제에서 전세대출을 제외했지만, 가수요를 막기 위해 은행들이 더 빡빡한 기준을 적용하기로 한 것이다. 다음 달부터 국내 모든 은행에서 전세계약 갱신 시 대출 한도를 전셋값 증액 범위 이내로 제한하고, 1주택자의 경우 은행 창구에서 직접 대출을 받도록 했다. 

SC제일은행이 주택담보대출 신규 접수를 중단한다. 주담대 취급을 중단한 건 은행권에서 세 번째다. NH농협은행이 지난 8월 주택담보대출을 중단했고 하나은행은 지난 20일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을 중단했다. 뉴스1

SC제일은행이 주택담보대출 신규 접수를 중단한다. 주담대 취급을 중단한 건 은행권에서 세 번째다. NH농협은행이 지난 8월 주택담보대출을 중단했고 하나은행은 지난 20일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을 중단했다. 뉴스1

은행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 27일부터 이런 내용의 강화된 전세대출 심사 규정을 일제히 시행한다. 소비자금융을 취급하는 국내 17개 전체 은행도 이달 내 해당 조치를 시행하기로 했다. 5대 시중은행은 지난 15일 금융당국과 회의를 한 뒤 이런 내용의 전세대출 자체 규제안을 시행하기로 합의했다.  

은행들이 자체 규제를 시행하면 우선 전세대출 갱신 시 대출받을 수 있는 금액이 줄어든다. 특히 전세계약 갱신 전 대출을 받지 않았거나 대출 금액이 적었던 이들의 경우 대출 금액이 크게 줄어든다. 

예컨대 전셋값이 5억원에서 임대차보호법 상한선인 2500만원(5%)이 오른 경우를 살펴보자. 기존에는 전셋값(5억2500만원)의 80%인 4억2000만원까지 대출받을 수 있었다. 만약 기존 전세대출이 3억원이 있었다면 대출 가능 금액은 1억2000만원이다. 그런데 앞으로는 기존 대출액과 무관하게 증액 범위인 2500만원만 대출받을 수 있다.  

은행권 관계자는 “자금 여력 등이 있어 전세대출을 많이 받지 않았다가 신용대출이 막힌 뒤 금리가 낮고 한도도 많은 전세대출을 받아 다른 용도로 사용하려는 수요를 막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가계대출 증가액 절반 차지한 전세대출.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가계대출 증가액 절반 차지한 전세대출.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전세대출 신청일도 잔금 지급일 이전으로만 제한된다. 본인이나 가족의 자금으로 전셋값을 치른 뒤 전세대출을 받아 이를 부동산이나 주식 등 다른 용도에 쓰는 걸 막기 위해서다. 기존에는 입주일이나 주민등록 전입일 중 빠른 날로부터 3개월 이내면 대출을 신청할 수 있었다.

또한 1주택자의 경우 비대면 전세대출 신청을 할 수 없게 된다. 자금 용도를 더 면밀히 심사하겠다는 취지다. 대면창구가 없는 인터넷전문은행인 카카오뱅크도 이런 조치에 동참했다. 다만 케이뱅크는 1주택자에 대한 비대면 전세대출 신청을 계속 받기로 했다.  

주요국 주택담보대출 분할상환 비중.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주요국 주택담보대출 분할상환 비중.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전세대출 가수요를 걸러내기 위한 은행의 규제와 함께 금융당국은 전세대출의 질적 건전성을 높이기 위한 관리에 나선다. 내년부터는 전세대출과 신용대출도 분할상환을 적극적으로 유도한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26일 발표한 가계부채 관리 강화 방안에서 “(전세대출 등의) 분할상환 확대 등 질적 건전성을 높이겠다”고 밝혔다. 

금융위에 따르면 2019년 말 기준 한국의 주택담보대출 분할상환 비중은 52.6%다. 영국(92.1%)과 독일(89%) 등 주요국에 비해 크게 낮은 수준이다. 금융당국은 분할상환 비중이 낮은 주된 원인으로 전세대출을 꼽고 있다. 전세대출의 분할상환 비중은 3% 수준이다.

이에 따라 금융당국은 28일 주요 시중은행장과 간담회 자리 등을 통해 전세대출 분할 상환 상품 판매를 늘려달라고 요청할 방침이다. 전세대출 분할 상환 상품을 많이 파는 은행에는 정책금융상품을 더 많이 팔게 해주는 등의 우대책도 제공하기로 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전세대출도 나눠서 갚는 관행이 정착되도록 각 은행이 소비자에게 금리 혜택을 주는 등의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며 상호금융도 단기대출이 많은 업권 특성상 분할 상환이 힘들다고 했지만, 5년 만에 관련 비율이 40%대까지 늘어났다”고 말했다. 

실제 상호금융은 2017년 금융당국이 주담대 분할상환 목표치를 제시한 뒤 2016년 말 7.4%였던 분할상환 비중을 지난해 말 40%까지 끌어올렸다.   

주택담보대출 분할상환 비중 추이.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주택담보대출 분할상환 비중 추이.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다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전세대출 분할 상환을 선택할 유인이 크지 않다. 은행 관계자는 “전세대출은 계약 만기 후 전세금을 받아 이를 상환하면 되는 만큼 매달 원금을 갚아야 하는 상품의 유인이 상대적으로 덜할 수밖에 없다”며 “지난해 부분 분할 상환 상품을 출시했지만, 창구에서 찾는 사람이 드물다”고 말했다. 

전세대출은 개인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에서도 제외돼 분할상환 시 대출 한도를 늘려주는 등의 방법도 불가능하다. DSR 규제에 포함된 신용대출은 5년 이상 장기 분할상환 시 대출 한도를 늘려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