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창업의 길] 한국 바이오벤처 1호, 글로벌 강소기업 되다

[R&D 패러독스 극복하자]  ⑪ 바이오니아 박한오 대표 

국내 바이오벤처 1호 바이오니아 박한오 대표가 9일 오후 대전 바이오니아 글로벌센터에서 자체 개발한 분자진단장비 ExiStation FA 96/384를 선보이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국내 바이오벤처 1호 바이오니아 박한오 대표가 9일 오후 대전 바이오니아 글로벌센터에서 자체 개발한 분자진단장비 ExiStation FA 96/384를 선보이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대전 대덕특구의 바이오니아는 한국 바이오벤처 1호이면서,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연구소 1호 기업이다. 1992년, 당시 30살, KAIST에서 생화학을 전공한 입사 7년차 박한오 박사가 창업했다. 유전자 연구에 사용하는 모든 기자재와 합성유전자를 국내 기술력으로 만들어보겠다는 목표로 시작했다. 당시에도 생명공학은 21세기 유망산업으로 전망됐지만, 관련 연구장비는 100% 외국산이었다. 이후 바이오니아는 국내 최초로 PCR 장비와 유전자 증폭장치 개발하는 등 성과를 올렸다. 2005년 코스닥에 상장했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진단키트 수출이 급증하면서 지난해 매출 2069억원에 영업이익 1052억원의 성과를 올렸다. 바이오니아는 현재 코로나19 진단검사에 필요한 원재료부터 진단장비ㆍ추출시약ㆍ진단키트까지 토탈 솔루션을 제공하는 국내 유일의 기업이다. 지난 4월에는 중소벤처기업부가 선정한 ‘글로벌 강소기업’에 올랐다.  
지난 9일 북대전 관평동의 바이오니아 글로벌센터에서 박한오(59) 대표를 만났다. 본사가 있는 문평동에서 2㎞여 떨어진 글로벌센터는 연면적 4만3000㎡(약 1만3000평)  규모의 4층 건물이다. 건물 외벽에는 큰 글씨로 SAMiRNA 등 회사 제품들이 장식처럼 그려져 있다. 지난해 11월 한 중견기업 공장을 인수해 리모델링한 곳으로, 분자진단을 위한 핵산 추출키트와 진단장비 등을 양산하는 곳이다.  

 생명공학연구원 입사 7년차 창업  
“유전자 기술 국산화가 창업 동기”
유전자 관련 노벨상 4개 기술화
진단키트ㆍ장비 등 토탈 솔루션 제공 

 

국내 바이오벤처1호,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출신 창업 1세대다. 그때는 연구소 창업이 생소할 때인데.
당시 미래 성장산업으로 전망되는 생명공학을 연구하면서‘우리는 왜 100% 외국 연구 장비와 재료에만 의존하고 있을까’하는 의문을 품다가 직접 회사를 차려야겠다는 생각에까지 미쳤다. 당시엔 벤처캐피털과 같은 제도화된 투자기관도, 아무런 창업지원도 없었다. 하지만 기술력에 자신이 있었다. 퇴직금을 자본금으로 삼아, 대전 유성구 학하동의 농가 농기계 창고를 빌려 회사를 시작했다. 나름대로 창업에 대해 공부를 많이 한다고 했지만, 민간기업에 근무해 본 경험 없이 연구만 하다 창업했기 때문에 시행착오가 많았다.
 

바이오니아는.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바이오니아는.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창업 이후 지금까지 생명공학ㆍ과학 분야는 큰 변화가 있었다.  
정말 그렇다. 바이오니아 창업이 1992년인데, 4년 뒤 영국에서 복제양 돌리가 나왔다. 2003년엔 인간의 설계도를 읽어내는 인간 게놈(유전체) 프로젝트가 완성됐다. 이후에도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등, 바이오 기술은 어마어마한 발전을 이뤄 신의 영역에 다가서는 시대가 됐다. 나는 4차 산업혁명이 유전자 혁명으로 시작될 거라고 전망했다. 그래서 유전자 분야에 집중해서 지속적으로 기술을 개발해왔다. 바이오니아는 유전자와 관련 노벨상 4개를 국내에서 처음 상용화시킨 회사다. DNA 합성과 DNA의 원하는 부분을 복제ㆍ증폭시키는 분자생물학적인 기술인 PCR, DNA 염기서열 분석,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가 그것이다.
(바이오니아는 올 3월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로 유명한 김진수 기초과학연구원(UBC) 유전체교정연구단장이 창업한 기업 툴젠으로부터 유전자가위 기술을 이전받았다.)


코로나 19를 계기로 매출이 급등해 지난해 매출이 2000억원이라는 성과를 올렸다. 하지만 진단키트 기업인 씨젠과 SD바이오센서가 1조원대로 성장한 걸 생각하면, 국내 바이오벤처 1호인 바이오니아는 좀 늦은 감도 있다.  
씨젠과 SD바이오센서는 진단키트만 파는 회사라면, 우리는 진단장비도 같이 생산한다는 차이점이 있다. SD바이오센서는 신속진단키트 매출에 집중하고 글로벌 기업인 로슈에 납품을 하면서 매출이 급등한 사례다. 씨젠은 미국 진단장비를 그대로 들여다가 해외에 팔면서 거기에 맞는 진단시약을 팔아 매출이 늘어난 경우다. 우리는 우리가 만든 장비를 가지고 싸운 거다. 바이오니아는 세계시장을 50% 안팎으로 차지하고 있는 로슈나 에보트를 이길 수 있는 차세대 진단장비를 개발해왔다.
(대전 관평동 글로벌센터는 90명의 검체에서 최대 20종의 병원체를 동시에 검사할 수 있고, 결과 도출까지 1시간 반 걸리는 차세대 신속ㆍ다중 분자진단 장비인 엑시스테이션 FA 96/384와 2명의 검체에서 최대 40종의 병원체를 동시에 검사할 수 있고, 30분 만에 진단결과를 알 수 있는 소형 분자진단 장비 아이론q PCR을 대량생산하는 곳이다. 지난 9일 기자가 방문했을 때 시제품 조립이 한창이었다. 바이오니아측은 “글로벌 톱 분자진단 기업인 로슈와 애보트를 뛰어넘기 위해 지난 10년간 개발해온 야심작”이라고 표현했다.)

국내 바이오벤처 1호 바이오니아 박한오 대표가 9일 오후 대전 바이오니아 글로벌센터에서 자체 개발한 분자진단장비 IRON-q PCR을 선보이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국내 바이오벤처 1호 바이오니아 박한오 대표가 9일 오후 대전 바이오니아 글로벌센터에서 자체 개발한 분자진단장비 IRON-q PCR을 선보이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코로나 19가 지나가면 최근 같은 성과는 어렵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우리가 벤치마킹한 회사가 휴렛팩커드다. 이 회사는 스탠퍼드대 연구자 출신들이 창업했다. 초기 10년 동안은 전부 연구용 제품만 만들었다. 급성장의 계기가 된 게 2차 세계대전이다. 그간 개발해온 기술로 전쟁에 필요한 무전기와 레이더를 만들어 공급하면서 덩치를 키웠고, 이후 컴퓨터를 만들고, 세계 최초로 잉크제트 프린터를 만들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우리도 유전공학이 시작하는 시기에 유전자 연구에 몰두해 많은 기술을 개발했고, 코로나 19가 터졌을 때 이 기술로 진단장비와 시약을 만들어 세계 100여 국가에 수출하면서 도약했다.
 

후배 출연연 창업가들에게 해줄 말이 많겠다.
기업의 4대 핵심 프로세스는 구매와 생산ㆍ판매ㆍAS인데, 연구소에 있던 사람들은 이 네 가지 핵심에 대한 경험이 없다.‘기술만 좋으면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창업가가 아직도 많은 데,  연구와 기술은 4대 핵심 프로세스에도 안 들어간다. 뭔가를 개발해야 되겠다는 생각은 있더라도 이게 실제로 기업으로 발전해 나가는 건 다른 얘기다.  그러다 보니 도중에 주저앉는 사례가 너무 많다. 개발한 기술을 다른 기업에 파는 수준이 아니라 제조업까지 끌고 가려면 대기업이나 글로벌 기업에서 경험을 많이 쌓은 사람을 임원급으로 영입해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야 기업이 성장해 나갈 수 있다. 
 

출연연 연구자들이 창업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보나.
창업하라고 강제로 떠밀듯이 하거나, 은퇴하고 갈 데가 없어서 창업한다는 식은 반대다. 실제로 그런 사례가 있어서 하는 얘기다. 하지만  연구에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서 이를 통해 뭔가 혁신 기업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과감하게 창업하는 게 좋다. 국가에서도 그런 연구자는 많이 지원을 해줘야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머리가 아주 좋고 창의력이 뛰어난데. 이런 친구들이 놀 수 있는 운동장을 만들어줘야 한다.
국내 바이오벤처 1호 바이오니아 박한오 대표가 9일 오후 대전 바이오니아 글로벌센터 앞에 섰다. [프리랜서 김성태]

국내 바이오벤처 1호 바이오니아 박한오 대표가 9일 오후 대전 바이오니아 글로벌센터 앞에 섰다. [프리랜서 김성태]

 

왜 굳이 출연연 창업인가.
한국은 추격자, 즉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의 시대는 어느 정도 끝났다. 중국이 우리 기업들을 맹추격하고 있는 시대이기도 하다. 지금처럼 머물러 있으면, 결국 중국에 다 잡아먹혀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 될 수 있다. 이걸 극복할 수 있는 돌파구가 혁신기술을 바탕으로 한 창업이다. 박사학위를 받고 연구소에서 5~10년 동안 한 분야를 연구하다 보면 글로벌 기업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경쟁할 수 있는 혁신적인 기술을 만들어 낼 역량을 갖추게 된다. 특히 대덕연구단지에는 연구개발 예산이 1년에 2조원씩 쏟아지고 있다. 여기에 R&D 노하우를 가진 박사 인력만 2만 명이 달한다. 연구시설도 핵융합실험장치부터 시작해 슈퍼컴퓨터 등 없는 게 없다. 이런 자산을 100% 활용할 수 있다.  
 

정부에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지난 30년을 돌아보면  제도적인 측면에서 많이 지원이 있어왔다. 내가 창업하던 때와 비교하면 투자환경도 너무 좋아졌다. 좋은 기술만 있으면 투자받는데 어려움이 없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게 있다.  성공적인 글로벌 기업이 나오기 위해서는 창업자에 대한 비즈니스 교육이 절실하다. 대덕특구의 기업들이 제대로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는 전체 박사의 3분의1이 영업을 한다. 보스턴이든 샌프란시스코든 최고의 경영대학이 있다. 우리는 대덕에 KAIST가 있지만, 경영대학원은 서울에 있다. 비즈니스 교육과 기술 사업화 등에 대한 교육 환경이 안 만들어져 있다. 규제 측면에서도 얘기할 게 있다. 한국은 바이오 분야의 가장 큰 축인 의료법인이 공공법인으로 돼 있어 비즈니스가 불가능하다. 반면 미국은 의료법인이 다 회사다. 기술력을 떠나서 미국과 경쟁을 할 수 없게 돼 있는 구조다. 유전자 검사에 대한 규제도 미국과 비교하면 너무 까다롭다.
 

회사의 미래 비전이 궁금하다.
삼성전자처럼 우리나라에도 바이오 분야에서 세계 1등 하는 기업이 나와야 할 시기다. 바이오니아를 세계 1등 기업으로 만드는 게 목표다. 바이오헬스ㆍ진단ㆍ질병예방ㆍ치료를 종합적으로 아우르는 기업이다. 우선 10년 안에 매출 20조, 글로벌 20대 기업 안에 들어가는 게 중장기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