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취임 이후 일본은 한일 갈등 현안에 대한 강경 태도를 한 층 강화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 취임 이후 한·일 현안을 두고 일본의 태도가 점차 거세지고 있다. 강제징용 피해 등 과거사 문제와 관련 일방적으로 ‘한국의 선제적인 해법 제시’를 요구하는 입장을 재확인한 데다, 독도 영유권 문제를 분쟁화하려는 의도까지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기시다 내각이 한·일 관계 개선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오히려 악화한 양국 관계를 국내 정치적으로 활용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일본은 김창룡 경찰청장의 독도 방문(지난 16일) 이후
한국 측이 불씨를 제공하길 기다렸다는 듯 반감을 드러내며 오히려 갈등을 증폭시켰다. 공동기자회견은 '파투', 독도는 '보복팀' 신설
웬디 셔먼 미 국무부 부장관은 지난 17일(현지시간) 한미일 공동 기자회견이 취소된 사유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꽤 오린 기간 일본과 한국 사이에 이견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을 언급했다. 외교적으로 둘러내는 우회 화법이 아닌 한일 양국의 갈등 상황을 직설적으로 드러냈다. [공동취재]
지난 17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일 외교차관협의회 이후 일방적으로 공동 기자회견에 불참 의사를 통보한 것은 사실상 독도 갈등의 모든 책임을 한국에 돌리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특히 일본은 이같은 ‘파투’를 통해 국제적으로 독도를 분쟁 지역화하는 효과를 거뒀다. 웬디 셔먼 미 국무부 부장관이 단독으로 기자회견에 나서게 된 사유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꽤 오랜 기간 일본과 한국 사이에 이견이 계속되고 있다”고 언급한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독도가 분쟁 지역이라는 의미로 전달될 수 있어서다.
나아가 일본 자민당은 김 청장의 독도 방문에 항의하기 위한 별도의 전담팀을 만들기로 결정하며 독도 영유권 주장을 본격화하려는 준비에 나섰다. 25일 일본 요미우리신문 등에 따르면 자민당 내 정책 입안조직인 외교부회와 외교조사회는 합동 회의를 통해 전담팀 신설에 합의했고, 이같은 제언을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외무상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현재 독도는 한국이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한국 영토에 해당한다.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며 분쟁지역화하는 것 자체가 한국 입장에선 부담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사진은 지난 10월 한국 시민단체가 계획한 독도 단독비행 행사. [연합뉴스]
이같은 구도는 독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한국 입장에선 최악의 상황일 수 있다. 한국은 그간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일일이 대응하는 것 자체가 분쟁의 여지를 주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판단에 무대응으로 일관해 왔다. 외교부 당국자가 26일 일본 자민당의 전담팀 신설 및 독도 방문 추진 계획 등과 관련 “일본 측의 터무니없는 주장에 대해 더는 논평할 가치를 느끼지 않는다”고 선을 그은 것 역시 이같은 이유에서다.
정상 만남도, 외교장관 통화도 꽉 막힌 한·일
문제는 독도 문제를 놓고 일본의 강경 대응과 한국의 무대응 원칙이 이어질 경우 양국 관계 개선을 위한 여건은 좀체 마련되기 어렵단 점이다.
특히 한·일 양국은 상호 갈등을 조율하고 관계 개선의 마중물이 돼야 할 고위급 소통마저 사실상 단절된 상태다. 지난 2일 영국 글래스고에서 개최한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는 의례적인 조우나 인사를 나누는 시간조차 갖지 않았다.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은 지난 10일 취임 이후 아직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통화하지 않은 상태다.[교도=연합뉴스]
지난 10일 취임한 하야시 외무상 역시 아직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취임 인사 목적의 전화통화조차 갖지 않은 상태다. 하야시 외무상이
지난 13일 미국, 18일 중국, 23일 인도 측 카운터파트와 통화했단 점을 감안하면 정 장관과의 통화를 의도적으로 미루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선 다음 달 10~12일 영국 리버풀에서 열리는 G7 외교·개발장관 회의에서 한·일 외교장관 간 만남이 이뤄질 것이란 관측도 나오지만, 이 역시 성사 여부는 미지수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