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망했던 구멍난 양말, 빛바랜 태극기…‘그들만의 각하’가 떠나던 날

“전두환 각하님! 영면하십시오!”

지난 27일 오전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검은색 리무진이 출발하자 눈물의 절규가 터져나왔다. 고(故) 전두환 전 대통령의 시신을 실은 운구차량 뒤로 고인을 ‘영웅’이자 ‘각하’로 부르는 이들이 뒤따랐다.

집을 뜻하는 ‘각(閣)’ 아래(下)에서 우러러본다는 의미를 담은 ‘각하’는 20대 후반의 나이인 기자에겐 낯선 단어였다. 그 단어를 5일간 장례식 현장을 취재하며 수십번 넘게 들었다. 단 한번도 써보지 않고 일상에서 들어보지 못한 단어가 공기처럼 돌아다녔다. 각하‘님’은 또 뭐란 말인가.

27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11·12대 대통령을 지낸 전두환 전 대통령의 발인이 진행되고 있다. 뉴스1

27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11·12대 대통령을 지낸 전두환 전 대통령의 발인이 진행되고 있다. 뉴스1

24일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 신촌장례식장에 마련된 전직 대통령 故 전두환 전 대통령 빈소에서 한 조문객이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뉴시스

24일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 신촌장례식장에 마련된 전직 대통령 故 전두환 전 대통령 빈소에서 한 조문객이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뉴시스

낯선 풍경의 끝판은 한 조문객이 보여줬다. 군용 위장무늬 모자를 쓴 남성은 양쪽 발뒤꿈치에 구멍 난 양말을 신고 영정 앞에서 거수경례를 했다. 20~30대가 주로 이용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틀딱” “탑골할배” “밥 얻어먹으러 갔나” “전두환에게 충성해서 얻는 건 가난” 등의 조롱이 쏟아진 사진이다. 천원이면 양말을 몇 켤레 살 수 있는 시대에 너무도 비현실적인 뒷모습이었다. 

주로 20대였던 취재기자들에게 장례식장 주변에선 민망하고, 낯설고, 불쾌한 상황이 계속됐다. 주로 50~70대였던 조문객들은 빛바랜 태극기 옷을 입거나 보청기를 낀 모습이 많았다. 그들은 기자들에게 다짜고자 화를 내기도 했다. “전두환 ‘씨’가 뭐야 전직 대통령한테 할 소리냐” “사망이 뭐야 똑바로 써” “5·18때 태어나지도 않았으면서 역사를 안다고 하지 마”….


20대 기자들이 아는 역사는 그들이 생각하는 것과 전혀 달랐으니, 역사에 화가 난 것이라면 그들의 분풀이는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도 아니었다. 필자를 포함한 현장 기자들은 무대응으로 일관해야 했다. 

기자들 사이에선 “광신도 같다. 무섭다” “저렇게 소리지르면 오히려 전 전 대통령이 싫어하지 않을까?” 등의 반응이 나왔다. 일부 극우 성향 유튜버들은 취재기자석에 난입해 30cm 앞까지 다가와 고함을 질렀다. “공산당” “빨갱이”라는 외침이 30cm가 아니라 30만km 밖에서 웅웅거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1980년 5월 광주민주화 항쟁 당시 시위를 벌이다 경찰과 충돌하는 광주 시민들. 연합뉴스

1980년 5월 광주민주화 항쟁 당시 시위를 벌이다 경찰과 충돌하는 광주 시민들. 연합뉴스

그들이 그토록 분노하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여야의 대통령 후보들도 의미를 명확히 규정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역사다. 미진했던 진상 규명이 진행 중이며 역사를 왜곡했을 때 처벌하는 법이 지난 1월 시행됐다. “젊은이들은 역사를 다시 공부해야 한다”거나 “5·18은 북한 특수군을 소탕한 것”이라는 그들의 주장은 자칫 범죄가 될 수 있는 게 현실이다.

그나마 말이 통했던 60대 조문객들은 전 전 대통령 시절의 경제 상황을 그리워하는 듯했다. 최모(60)씨는 “산업화에 힘쓰고 과도기를 잘 보낸 대통령”이라 했고, 정모(66)씨는 “전두환 전 대통령 정부 때 경제가 좋아 태평성대였다. 해외에도 나갈 수 있게 해줬다”고 말했다. “과오 뿐 아니라 공도 같이 평가해야 한다”는 노신사가 반갑게 느껴졌다.

독재자이자 각하였던 이의 장례식은 그렇게 끝났다. 누군가에겐 영웅의 마지막 길이었을지 몰라도, 취재기자에겐 구멍난 양말과 빛바랜 태극기로 기억될 것 같다. 1980년부터 41년째 이어지는 인식의 차이가 쉽사리 좁혀지지 않을 것이란 생각도 하게 됐다. 그나마 극우 유튜버들을 말리며 “우리 젊은 친구들은 잘못이 없어요. 잘 몰라서 그래. 어르신들이 이러는 이유가 있으니 이해해줘요. 미안해요”라던 중년 여성의 말을 위로 삼아야 하는 것인지, 가슴이 답답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