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 잘하면 대박 잘못하면 쓰레기…미술투자 '이것'부터

[더,오래] 백만기의 은퇴생활백서(100)

 
은퇴 후 지역사회를 위해 할 일을 찾다가 성남아트센터에서 자원봉사자를 모집하는 공고를 보았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이고 사회생활을 통해 익혔던 경험을 살려 봉사하고 싶은 마음에 서류를 갖춰 지원했다. 지원자들은 센터에서 마련한 2개월간의 보수교육을 받으며 미술, 음악, 연극, 사진 등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쌓았다. 과정을 수료할 무렵 비교적 나이가 많아선지 자원봉사자 대표로 추대받았다. 은퇴 후에는 어떤 직위도 맡지 않으려고 했는데 이것도 자원봉사의 하나려니 해서 수락했다.

 
회원들의 면면을 보니 회사의 임원으로 재직한 사람도 있고 해외주재원으로 근무했던 사람도 있고 동시통역사로 외화를 번역한 사람도 있고 방송작가로 30년 이상 글을 썼던 사람도 있고 전업주부로 육아에 전념하다가 지원한 사람도 있고 그야말로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모였다. 회원들과 성남아트센터를 위해 봉사하다가 미술을 좋아하는 회원이 몇 사람 있는 것을 알았다. 얼마 후 그들과 서양미술사 연구모임을 하나 결성했다. 그리고 센터에서 마련해준 공간에서 매월 정기적으로 작가 연구모임을 가졌다.

 

미술품 투자를 하려면 우선 미술에 대한 지식을 쌓아야 한다. 구경하는 데 돈도 들지 않고 미술품을 볼 때마다 화가의 열정이 느껴지니 미술 감상은 은퇴자에게 좋은 취미다. [사진 pxhere]

미술품 투자를 하려면 우선 미술에 대한 지식을 쌓아야 한다. 구경하는 데 돈도 들지 않고 미술품을 볼 때마다 화가의 열정이 느껴지니 미술 감상은 은퇴자에게 좋은 취미다. [사진 pxhere]

 
어느 날 성남아트센터에서 영국 현대회화전을 기획할 때다. 성남아트센터 담당 직원으로부터 전시회 도슨트 봉사를 맡아 달라는 요청이 왔다. 미술사 연구회원들과 상의하니 모두 좋다고 해서 전시를 앞두고 영국 현대회화에 대한 자료조사에 나섰다. 영국 미술사를 찾아보니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부를 정도로 강국이었는데 미술 분야에선 그리 뛰어난 인물이 드물었다. 르네상스 시대는 물론 근대까지도 변변한 화가가 없었다.

 
19세기 초가 되어서야 '윌리엄 터너'나 '존 컨스터블' 같은 풍경 화가가 세인의 주목을 받았을 뿐 이후에도 유명 화가가 나타나지 않았다. 세계대전 이후 미술의 중심이 파리에서 뉴욕으로 이전하면서도 영국은 그저 미술계의 변방에 있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선지 리버풀 출신의 '존 무어'라는 실업가가 현대미술만큼은 영국이 주도권을 잡아야겠다는 꿈을 갖고 1957년 자신의 이름을 붙인 상을 만들어 화가들을 지원하기 시작한다. 그 후 1984년 터너 상이 제정되고 국가에서도 기금을 만들어 화가들을 물질적으로 지원했다.


 
그러나 영국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당시 수상이었던 마가렛 대처 여사는 나라 경제에 꼭 필요한 부문을 제외하고 국가 예산을 대폭 줄였다. 예술가를 지원하던 예산도 삭감된 것은 물론이다. 화가들은 실의에 빠져 스스로 전시를 기획할 수밖에 없었다. 1988년 런던 골드스미스 대학 2학년이던 '데미안 허스트'는 몇몇 동창들과 런던 외곽의 공간을 빌려 'Freeze 전'이라고 명명한 전시회를 열었다. 어느 날 이 전시회에 미국의 화상 '찰스 사치'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들의 그림을 대거 매입했다.

 
사치는 이 그림들을 갖고 미국 뉴욕 브루클린 미술관에 가서 자신의 개인 소장품전을 열고 싶다고 제안한다. 처음에는 미술관에서 난색을 표명했다. 시립미술관에서 개인의 소장품전을 열기가 껄끄러웠던 탓이다. 사치는 재정적인 후원을 약속하고 미술관을 설득했다. 그리고 마침내 1999년 브루클린 미술관에서 그의 소장품전시회를 개최한다. 전시회 주제를 '센세이션전'으로 정했는데 그야말로 센세이션이 일어났다.

 
전후 사정은 이렇다. 먼저 기자 한 사람이 부정적인 시각으로 전시회를 비판하는 기사를 썼다. 브루클린 미술관에서 전시하는 작품 중 마리아상 가슴에 똥을 바른 작품이 있다는 내용이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줄리아니 시장이 그 소식을 듣고 노발대발하며 당장 전시를 중단하라고 지시했다. 이번에는 시장이 문화예술계를 탄압한다는 기사가 나왔다. 여론이 들끓자 뉴욕 시민들은 과연 무슨 그림을 전시해서 그런가 궁금해하며 미술관을 찾았다.

 
사람들이 붐비는 현상을 보고 미국의 수집가들이 영국청년화가들(Young British Atists)의 그림을 사기 시작했다. 얼마 후 미술 경매시장에서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 경매금액이 피카소를 누르는 이변이 일어난다. 동시에 허스트뿐만 아니라 YBA 그룹의 젊은 작가들 그림 가격 또한 올랐다. 그 후 영국미술이 관심을 끌며 미술계에 우뚝 서게 된다. 요즘은 런던이 뉴욕과 함께 현대미술의 양축을 이루고 있다. 리버풀의 사업가 '존 무어'가 그의 꿈을 실현한 셈이다.

 
영국회화가 뜨는데 불씨를 일으킨 찰스 사치는 이들의 그림을 몇 년 후 수십 배의 이익을 남기고 팔았다. 당시 YBA 그룹 화가들의 그림이 좋았다기보단 사치의 마케팅이 성공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니나 다를까 천장 모르게 치솟던 허스트의 작품이 최근 하락하고 있다고 한다. 요즘 뜨고 있는 화가 중에도 과연 미술사에 남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는 비판적인 시각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미술품 투자 붐이 일고 있다. 가격이 오르자 조각 투자라고 그림의 소유권 일부를 조각처럼 나누어 팔기도 한다. 미술품 투자는 부동산, 주식에 이어 자본주의 시대의 마지막 투자수단이라고 일컫는다. 잘만하면 수십 배의 이익을 얻을 수도 있다. 그러나 미술품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이 남의 말이나 기사를 보고 함부로 투자했다가는 원금은커녕 환금하기조차 어려울 수 있다. 그나마 자신이 산 그림이 마음에 든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자칫 쓰레기가 될 수도 있다.

 
주식투자도 마찬가지이지만 미술품 투자를 하려면 우선 미술에 대한 지식을 쌓아야 한다. 글을 잘 쓰기 위해선 많은 책을 보아야 하듯 미술품 이해를 높이려면 먼저 그림을 많이 보는 것도 필요하다. 미술 감상은 특히 은퇴자에게 좋은 취미다. 구경하는 데 돈도 들지 않고 미술품을 볼 때마다 화가의 열정이 느껴진다. 그러다가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을 발견하면 그리고 자금 여유가 있다면 화가의 유명세와 상관없이 매입하는 것도 권하고 싶다. 화가에게는 보람을, 수집가에게는 그림 소유에 따른 기쁨을 줄 것이다. 혹시 아는가. 그 작품이 나중에 수십 배가 오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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