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내 팀이 생겼다"…50대에 시작한 프로축구 덕질

[더,오래] 박헌정의 원초적 놀기 본능(107)

 
요즘 프로축구가 나를 들었다 놨다 한다. 올해는 K리그에 약팀이 없어서 팀당 한 경기씩 남긴 막바지인데도 승부가 엄청 치열하다. 1위 전북 현대와 2위 울산 현대가 우승을 다투고, 3위는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을 얻고, 11~12위는 K2 리그 강등권인데, 12월 5일 오후에 이 모든 게 결정된다. 나는 전북 현대 팬이다. 울산도 내가 좋아하는 팀이지만, 전북이 우선이니 반드시 울산 현대를 누르고 우승해야 한다.

 

국내 리그보다는 국가대표팀 경기만 좋아하던 일반적인 팬이었지만 언제부턴가 국내 프로리그에 빠져들어 제대로 ‘찐팬’이 되었다. 경기장에서 직접 보면 선수들의 잽싼 발놀림과 폭발적인 속도에 빠져들게 된다. [사진 박헌정]

국내 리그보다는 국가대표팀 경기만 좋아하던 일반적인 팬이었지만 언제부턴가 국내 프로리그에 빠져들어 제대로 ‘찐팬’이 되었다. 경기장에서 직접 보면 선수들의 잽싼 발놀림과 폭발적인 속도에 빠져들게 된다. [사진 박헌정]

 
전북 현대 축구팀과는 30년 인연이다. 1992년에 현대자동차 홍보부에 근무했는데, 부서에서 이름도 정겹던 ‘현대 호랑이축구단’의 서울사무국 역할을 겸했다(지금처럼 구단이 독립적으로 운영되지 않던 때다). 감독은 차범근 씨였고, 최인영, 최강희, 김현석, 신홍기 등 쟁쟁한 선수를 보유한 강팀이었다. 이들은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해외에 나갈 때면 구단주인 담당 상무한테 인사하려고 들르곤 했다. 사무실에서 마주치면 우리는 그쪽이 스타들이어서, 그쪽은 낯선 사무실이라서 서로 상당히 어색해했다.

 
현대그룹의 분리와 함께 현대자동차가 전북 완주에 공장을 신설한 것을 기점으로 전부 옮겨와 1994년에 새롭게 전북 현대를 창단했고, 울산에는 현대중공업이 호랑이축구단의 모기업이 되어 팀의 역사와 정통성을 그대로 이어갔다. 그렇기에 당시에 한 부서에서 같이 근무하던 선배가 지금 전북 현대의 대표이사로 있고, 울산공장에 출장 가서 몇 번 봤던 선배는 단장이다. 물론 세월이 많이 지나 ‘그들이 나를 기억하겠나?’ 싶어 연락은 안 해봤다.

 
나는 원래 축구를 좋아했지만, 많은 이들처럼 국가대표 경기에만 열광하고 국내 프로리그는 따분하다고 느끼던 터였다. 그런데 불과 몇 년 만에 유니폼까지 사서 입고 혼자 경기장을 찾을 만큼 ‘찐팬’이 되었고, 중계를 챙겨보기 위해 티브이마저 큰 것으로 바꾸었다. 다 이유가 있다.


 

[사진 박헌정]

[사진 박헌정]

경기장에서 마음이 동해서 전북 현대 7번 한교원 선수 이름이 박힌 유니폼을 사서 입고 응원했더니 유대감과 일체감을 더 느낄 수 있었다. [사진 박헌정]

경기장에서 마음이 동해서 전북 현대 7번 한교원 선수 이름이 박힌 유니폼을 사서 입고 응원했더니 유대감과 일체감을 더 느낄 수 있었다. [사진 박헌정]

 
이곳 전주로 이사 온 지 3년, 주변에서 살기 괜찮냐고 물어보면 늘 ‘정말 좋다!’고 하지만, 낯선 곳에서의 삶은 호불호로만 대답하기 힘든 구석이 있는데, 바로 ‘소속감’ 문제 때문이다. 은퇴했으니 소속이 없는 건 당연하다. 그래도 서울에서 살 때는 친구도 많고, 무엇보다 내가 나고 자란 도시와의 일체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이곳에는 친밀감을 느낄 대상도, 공간도 없어, 정 붙일 곳 없다는 말이 실감 났다. 그래서 강좌나 세미나 같은 곳을 기웃거리기도 하고, 평생교육원에도 다녀보고, 급기야 대학원에 입학해서 학생으로 ‘신분 세탁’을 함과 동시에 기어이 ‘소속’을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나의 적응과정을 함께 해준 것이 축구였다. 심심해서 틀어놓던 프로축구 중계에 서서히 중독되어간 결과, 이제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내 지역팀을 자연스럽게 ‘내 팀’으로 받아들였는데, 예전의 인연과 추억도 있는데 마침 강팀이기까지 하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물론 애정과 비례해서 패했을 때 받는 스트레스도 커진다. 축구에 대한 전문지식은 없지만, 경기장에서 선수들 움직임을 폭넓게 보고 중계를 꼬박꼬박 챙겨 봤더니 전 구단의 선수들 얼굴과 이름, 경기 스타일은 물론이고 경기 흐름 같은 것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런데 희한한 건, 경기 보는 눈이 생기고 팀에 애착도 갖는 축구팬이 되면서부터 인정머리가 좀 없어졌다. 전에는 약자를 응원하곤 했지만, “내가 왜 늘 패하는 팀을 응원하면서 그 스트레스를 고스란히 떠안지? 저들은 돈 많이 받는 프로이고, 이기든 지든 저들 인생인데” 하는 생각이 들면서, 요즘은 오히려 경기력 약한 팀은 2부로 빨리 내려가고 2부에서 잘하는 팀이 올라오길 바라는 냉정한 팬이 되었다. 사실 프로 무대에서 실력만이 ‘선(善)’이라는 것은 나의 철학이 아니라 그들의 언행을 통해 확인되는 그들 세계의 질서다.

 

잘하는 팀을 선택해서 좋아하는 것은 왠지 각박한 것 같은 생각이 들던 차에, 나와 인연이 있고 좋아할 만한 구실이 충분한 팀이 마침 강팀이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사진 박헌정]

잘하는 팀을 선택해서 좋아하는 것은 왠지 각박한 것 같은 생각이 들던 차에, 나와 인연이 있고 좋아할 만한 구실이 충분한 팀이 마침 강팀이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사진 박헌정]

 
경기가 있는 날이면 시내 곳곳에 형광빛 전북 현대 유니폼을 입은 사람이 많이 보인다. 그러면 반가운 마음도 살짝 느껴지는데, 이처럼 사람 사이를 묶어주는 유대감이 모여 시민적 정체성이 형성되는 것 같다. 그런 정체성을 찾거나 만들기 위해 도시마다 스포츠팀, 예술단 같은 것을 운영하고 축제도 하며 구심점을 만들려고 애쓰는데, 가장 역동적인 것은 역시 스포츠다. 그래서 기업 구단을 유치하려고 경쟁하고, 시 예산으로 팀을 운영하기도 한다. 특히 축구는 꾸준히 인기가 상승하고 재정도 많이 필요한 분야라 지자체와 시민이 힘을 합쳐 시민구단을 창단하는 일이 이어지고 있다. 내년에는 김포 FC가 K리그 스물세 번째 팀이 된다.

 
돈 걱정 없이 우수 선수를 영입해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대기업 구단을 응원하는 중이지만, 사실은 시민구단에 약간 출자해서 정말로 주인의식을 갖고 동참하는 재미를 느껴보고 싶다. FC바르셀로나나 레알 마드리드도 그런 시민구단이라고 한다. 유럽에서는 수천 명 사는 작은 마을도 주민들이 출자하고 직접 뛰고 연간 입장권 사서 자기 팀을 응원하는 모습을 심심찮게 본다. 가끔 FA컵에서 5~6부리그 팀이 1부리그 팀과 붙을 때는 승패를 떠나 마을 전체가 축제 분위기에 빠지는데, 정말 보기 좋다. 물론 재정난에 허덕이는 국내 시민구단의 팬들은 우리 현실과 먼 이야기라고 할 것이다. 그러니 일단은 ‘내 팀’에 만족하고 계속 응원하며 즐기려고 한다. 한국 프로리그가 언젠가는 유럽 빅리그들만큼 발전하고 시민들 생활 속에 자리 잡기를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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