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애너 빙의한 양성애자 배우 스튜어트, 오스카 따놓은 당상?

다이애너를 연기한 영화 '스펜서' 시사회장의 크리스틴 스튜어트. 지난 10월 사진이다. AP=연합뉴스

다이애너를 연기한 영화 '스펜서' 시사회장의 크리스틴 스튜어트. 지난 10월 사진이다. AP=연합뉴스

 
비운의 왕세자비, 고(故) 다이애너를 연기하는 건 배우들에겐 성취이자 도전이다. 이미 훌륭한 작품이 많이 나와있기에 비교 대상이 되는 건 불가피한 일. 다이애너를 주인공으로 한 최신작인 영화 ‘스펜서’는 그래서 크리스틴 스튜어트에겐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제목부터 ‘다이애너’였던 영화의 나오미 왓츠, 넷플릭스 화제작 ‘더 크라운’에서 ‘다이애너의 환생’이라고까지 불린 엠마 코린까지, 쟁쟁한 전작들이 있다. 하지만 스튜어트는 다이애너를 연기하지 않았다. 다이애너 그 자신이 됐다. 

녹아드는 방식이 그가 연기하는 방식이다. 지난 9월 이탈리아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인 뒤 가을에 미국 등에서 개봉한 영화 ‘스펜서’에서 그의 연기를 두고 호평이 연이어 나오는 배경이다. ‘스펜서’는 국내에선 내년 초 개봉 예정이다. 다이애너의 혼전 성(姓)이 ‘스펜서’였다.  

뉴욕타임스(NYT)는 8일(현지시간) ‘올해 최고의 배우들’을 꼽는 기사에서 스튜어트를 언급하며 “다이애너처럼 잘 알려진 인물을 연기하는 것은 자칫 너무 평범하면서도 너무 어려울 수 있기에 스튜어트 같은 배우들만이 연기를 해낼 수 있다”며 “스튜어트는 이번 영화에서 엄청난 재능을 두려움 없이 발휘하며 연기를 해냈다”고 극찬했다. NYT는 앞서 영화 개봉을 앞두고 게재한 리뷰 기사에선 스튜어트의 연기에 대해 “스튜어트가 다이애너가 되는 과정을 그저 지켜 보기만 해도 놀랍다”고 호평했다. 콧대 높기로 유명한 주간지 뉴요커(the New Yorker)는 한술 더떴다. 지난달 말 발간한 스튜어트와의 인터뷰 기사는 본문만 총 3만9501자, 오디오 버전 기사는 43분에 달할 정도. 미국 매체들은 벌써 내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스튜어트의 여우주연상 수상을 점치고 있다.  

영화 '스펜서' 포스터. [영화 공식 포스터]

영화 '스펜서' 포스터. [영화 공식 포스터]

 
무엇 때문에 이렇게까지 조명을 받는 걸까. 정작 스튜어트 자신은 덤덤한 편이라고 했다. 뉴요커의 에밀리 위트 기자는 “인터뷰 요청을 하자 스튜어트는 ‘골프를 치러 가려는 참인데 골프장에서 이야기를 나눠도 되겠느냐’고 묻더라”며 “골프 클럽을 고르며 ‘그래서, 어떤 얘기를 하고 싶으신 거죠?’라고 자연스럽게 얘기를 이어가더라”고 전했다. 조명을 설치하고 정식으로 인터뷰를 진행하기보다, 자연스러운 환경을 선호했다는 것. 

사실 이런 자연스러움은 스튜어트가 연기에서도 중시하는 부분이다. 스튜어트는 이번 ‘스펜서’에서도 미리 대본을 외워오거나, 연기를 연습해오지 않았다고 한다. 대신 촬영 시작 직전에 대본을 보고 자연스럽게 대사가 전달되는 데 신경을 썼다고 한다. 뉴요커는 “하지만 이런 방식이야말로 극도로 정교한 메소드 연기일 수 있다”고 평했다. 촬영장에서만이 아니라, 자신의 일상에서 그 역할에 녹아들어, 자신이 다이애너 그 자체가 되는 게 스튜어트의 목표였다는 해석이다.  


영화 '스펜서'의 공식 스틸컷. 스튜어트는 영국식 억양까지 완벽 소화해냈다고 한다. [영화 공식 스틸컷]

영화 '스펜서'의 공식 스틸컷. 스튜어트는 영국식 억양까지 완벽 소화해냈다고 한다. [영화 공식 스틸컷]

 
스튜어트가 처음부터 연기파 배우였던 건 아니다. 사실 그 반대다. 그가 본격 이름을 알린 건 틴 로맨스 물인 ‘트와일라잇’ 시리즈를 통해서였다. 뱀파이어 남자주인공과 사랑에 빠지는 벨라 역을 맡은 그는 당시 무표정한 연기로 일관해 외려 연기력이 없다는 혹평을 받기도 했다. 그는 뉴요커에 당시를 회상하며 “내가 ‘트와일라잇’을 평생 할 건 아니었지 않느냐”며 “나는 더 많은 걸 할 수 있었고, 그 시리즈는 내게 다음 단계로 올라갈 중간 단계였을 뿐”이라고 말했다.  

영화 '트와일라잇' 시사회의 스튜어트(왼쪽에서 두 번째). 맨 오른쪽에 있는 로버트 패틴슨과 연애 후 결별했다. AP=연합뉴스

영화 '트와일라잇' 시사회의 스튜어트(왼쪽에서 두 번째). 맨 오른쪽에 있는 로버트 패틴슨과 연애 후 결별했다. AP=연합뉴스

 
‘트와일라잇’은 그에게 스타덤도 안겼지만 남자 주연배우인 로버트 패틴슨과의 열애 계기도 마련해줬다. 스튜어트는 그러나 이내 다음 영화를 촬영하던 중 유부남이었던 감독과 외도를 했고, 둘의 관계는 세상 시끄러운 이별을 겪었다. 이후 스튜어트는 동성 애인들과도 만나며 양성애자로서 정체성을 당당히 밝혀왔다. 동시에 ‘클라우드 실스 마리아’부터 ‘퍼스널 쇼퍼’ 등 다양한 영화에서 연기의 스펙트럼을 넓히며 ‘걸 크러시’ 적 면모도 선보였다.  

샤넬의 앰버서더이기도 한 스튜어트. 샤넬을 이끌었던 수석 디자이너 고(故) 칼 라거펠트는 스튜어트를 두고 "코코 샤넬과 닮았다"고 극찬했다고 한다. AP=연합뉴스

샤넬의 앰버서더이기도 한 스튜어트. 샤넬을 이끌었던 수석 디자이너 고(故) 칼 라거펠트는 스튜어트를 두고 "코코 샤넬과 닮았다"고 극찬했다고 한다. AP=연합뉴스

 
올해는 스튜어트에게 ‘스펜서’ 뿐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의미가 큰 해다. 동성인 애인 딜런 마이어스와 약혼을 공식 발표한 것. 여기에 영화 대본도 직접 쓰고 있다고 했다. 내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에 스튜어트 자신도 기대를 하고 있진 않을까. 뉴요커는 “아카데미 상은 실존인물을 연기한 배우들에게 특히 여우주연상을 많이 안겨왔다”며 “스튜어트 역시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적었다. 그러나 스튜어트 자신은 쿨했다.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재수 없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그리고 그렇게 오해받고 싶지는 않지만, 그 모든 게 다 왜인지 모르게 민망하고 피곤해요. (시상식에선) 사람들에게 항상 얘기를 해야 하고, 정치적인 걸 살펴야 하잖아요. 내가 무슨 외교관도 아니고.”
 
뉴요커는 기사 제목을 이렇게 붙였다. ‘진짜가 되자(Get real).’ 
‘정신 차려’라는 말로도 해석되지만 이 기사의 맥락에선 스튜어트처럼 연기가 아닌 그저 그 역할을 살아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로 읽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