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 "죽어버렸으면" 이 영화, 정말 '결혼 이야기' 맞나요

[더,오래] 현예슬의 만만한 리뷰(127) 영화 ‘결혼 이야기'

(영화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춤을 끝내주게 잘 추고, 즐거움을 전염시켜요. 아이처럼 놀 줄 아는 엄마예요. 늘 멋진 선물을 주죠.”
“아빠 역할을 좋아해요. 취향이 분명하고 어떤 옷차림도 잘 소화하죠. 쉽게 낙담하지 않아요.”

영화의 첫 장면은 이렇게 남자와 여자의 내레이션으로 시작됩니다. 서로의 장점에 대해 나열하고 있죠. 제목이 ‘결혼 이야기’인걸 고려했을 때 이건 분명히 달콤한 사랑 고백인 것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죠.

영화 ‘결혼 이야기'에서 부부로 열연한 배우 스칼렛 요한슨과 애덤 드라이버. [사진 넷플릭스]

영화 ‘결혼 이야기'에서 부부로 열연한 배우 스칼렛 요한슨과 애덤 드라이버. [사진 넷플릭스]

 
오늘 소개해드릴 영화는 ‘블랙 위도우’의 스칼렛 요한슨과 지난번 소개해드린 ‘아네트'에서 훌륭한 연기를 보여줬던 애덤 드라이버 주연의 ‘결혼 이야기’ 입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인 이 영화는 공개된 이후 짜임새 있는 대본과 연출, 그를 뒷받침해주는 배우들의 연기로 영화 비평 사이트 토론 토마토에서 “연민과 품위를 담아 분열된 가족을 관찰하는, 강력한 연기가 담긴 영화 ‘결혼 이야기’는 각본과 감독을 겸한 노아 바움백의 최고작 중 하나다” 라는 극찬을 받기도 했는데요. 그해 골든 글로브와 아카데미, 베니스 영화제에서 다양한 부문에 후보로 이름 올렸죠.

다시 두 사람의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사랑 고백처럼 들리던 그 말들은 사실 이혼 상담 중 그들에게 주어진 과제의 일부였죠. 작성해 온 걸 서로에게 읽어주라는 상담 선생님의 말에 남편 찰리(애덤 드라이버 분)는 흔쾌히 그러겠다 하지만 아내 니콜(스칼렛 요한슨 분)은 자신이 작성해온 것도, 남편이 써온 것도 듣기 싫다며 자리를 박차고 나섭니다.

남편 찰리는 뉴욕에서 활동하는 연극 연출가이자 극단의 대표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의 연출 작품들은 제법 큰 규모의 시상식에서 수상하기도 하죠. 아내 니콜은 LA에서 한창 주목받는 배우로 성장할 때쯤 찰리를 만나 결혼하게 되었고, 이후 뉴욕으로 이사해 찰리의 연극에서 배우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이혼사유는 니콜이 변호사와 상담하는 과정에서 드러나게 되는데요. 결혼 후 니콜의 지원에 힘입어 점점 성장해나가는 찰리와 달리 니콜은 자신이 점점 사라져가는 느낌을 받죠. 결정적인 건 찰리가 니콜을 인정해주지 않았던 게 가장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혼 소송 중에도 아들을 위해 일상의 일부분을 공유해야 하는 부부.

이혼 소송 중에도 아들을 위해 일상의 일부분을 공유해야 하는 부부.

 
처음에는 변호사 없이 최대한 간결하게 진행하려고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아내가 변호사를 구하자 찰리도 어쩔 수 없이 변호사를 구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고, 양육권이 걸려있는 상황에서 두 사람 다 물러설 수 없었죠.

자신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을 ‘적’으로 돌리게 되면 그만큼 무서운 적은 없을 겁니다. 사소한 행동, 말 하나하나까지 법정에서 오르내리고 심지어 상대방의 약점을 잡기 위해 메일을 해킹하는 등의 불법까지 행하게 되자 두 사람은 비로소 대화에 나섭니다.

영화는 대부분의 장면을 원테이크, 씬의 시작부터 끝까지 끊지 않고 한 번에 촬영하는 방법으로 연출했는데요. 특히 이 장면은 그 절정을 보여줍니다. 니콜이 찰리를 찾아오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둘이 대화가 감정싸움으로 번지고 끝내 “당신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대사를 내뱉고 흐느끼는 장면까지 약 10분간 이어지는 두 감정씬은 이 영화에서 가장 압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쯤 되면 이 영화의 제목을 ‘결혼 이야기’가 아니라 ‘이혼 이야기’로 해야 하지 않았나 싶죠.

법정에 선 이들은 서로에 대해 잘 아는 것이 독이 되어 돌아왔다.

법정에 선 이들은 서로에 대해 잘 아는 것이 독이 되어 돌아왔다.



이후 찰리는 뉴욕 양육권을, 니콜은 찰리의 상금을 포기하며 합의에 이르렀고 결국 이혼서류에 서명하게 되는데요. 그 후 1년 뒤 찰리는 연극 연출가로, 니콜은 드라마 배우이자 감독으로서 승승장구하게 됩니다. 핼러윈데이에 아들을 만나기 위해 니콜의 집에 방문한 찰리는 파티를 준비하는 동안 방에서 무언가를 읽고 있는 아들을 발견합니다. 그건 영화 초반 니콜이 썼던 찰리의 장점에 대한 글이었죠.

 
글 읽는 게 서툰 아들을 대신해 글을 읽던 찰리는 ‘2초 만에 사랑에 빠졌다’, ‘평생 사랑할 것’이라는 말을 보고는 눈물을 흘리는데요. 뒤에서 보고 있던 니콜도 눈물을 훔치죠. 이 글을 그때 서로에게 읽어줬더라면 이들의 삶은 달라졌을까요.

 
마지막 장면도 인상적입니다. 파티가 끝난 후 니콜은 아들을 찰리에게 부탁하는데요. 아들을 안고 가던 찰리의 신발 끈이 풀어지자 달려가 신발 끈을 묶어줍니다. 그리고 각자의 차를 타고 헤어지는데요. 완전히 헤어진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다시 만나는 것도 아닌 그들의 관계를 무엇이라 정의할 수 있을까요. 결혼해본 적도 이혼은 더더욱 해본 적이 없지만 이 영화 한 편으로 두 가지 경험을 모두 해본 것처럼 사실적인 묘사와 배우들의 열연이 돋보였던 영화 ‘결혼 이야기’였습니다.

 

결혼 이야기
영화 '결혼이야기' 포스터.

영화 '결혼이야기' 포스터.

 
감독&각본: 노아 바움백
출연: 스칼렛 요한슨, 아담 드라이버
음악: 랜디 뉴먼
장르: 코미디, 드라마
상영시간: 137분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개봉일: 2019년 11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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