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누나'에 당한 男들…"조주빈은 42년" 김영준 10년형 분노

기자
박건 기자 사진 박건 기자
“헛웃음만 나오네요.”
김영준에게 징역 10년이 선고됐지만, A씨는 허탈하다고 했다. 김영준은 아동·청소년 등 남성 79명을 유인해 성착취물을 제작·판매하고 피해자를 강제추행한 혐의 등으로 기소돼 25일 1심 판결을 선고받았다. A씨는 지난해 그에게 속아 영상이 찍힌 피해자 중 한 명이다.

이날 선고된 형량은 검찰이 재판부에 요청한 구형량(징역 15년형)보다 가벼웠다. 피해자 A씨는 김영준의 1심 선고를 앞두고 2시간 여에 걸친 기자와의 통화에서 “죄값이 너무 가벼워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날 선고 뒤 다시 통화하면서 허탈감을 밝힌 것이다.

A씨는 “한때 극단적 선택까지 생각했었다. 자기가 찍힌 영상이 어디 돌아다니고 있을까 잠 못 이루는 피해자가 여전히 많은데 처벌이 너무 약하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남성들과 영상 통화를 하며 알몸인 모습을 녹화하고 이를 유포한 김영준이 서울 종로경찰서를 나와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뉴시스

남성들과 영상 통화를 하며 알몸인 모습을 녹화하고 이를 유포한 김영준이 서울 종로경찰서를 나와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뉴시스

징역 10년 선고에도 분노하는 피해자들

판결을 선고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9부(부장판사 김창형)는 “불특정 다수의 아동·청소년을 성적 욕구의 해소 대상으로 삼고 촬영물을 판매했다”며 “죄질이 매우 나쁘다”고 판시했다. 다만 김영준이 대부분의 범행을 인정하며 반성의 태도를 보이는 점 등을 양형에 반영했다.

그러나, 피해자들은 ‘솜방망이 처벌’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A씨는 “성착취물 제작뿐만 아니라 미성년자를 직접 만나서 추행한 혐의까지 입증됐는데 처벌 수위가 너무 낮다. ‘n번방 사건’ 주범인 조주빈과 비교하면 터무니없는 형량”이라고 말했다.


2020년 미성년자 수십명을 상대로 성착취물을 제작해 유포한 혐의로 기소된 조주빈은 지난해 대법원에서 징역 42년이 확정됐다. 당시 재판부는 조주빈이 성착취물을 공유하기 위해 만든 텔레그램 ‘박사방’이 범죄를 목적으로 모인 집단이라 보고 범죄단체조직죄를 인정했다. 조주빈이 중형을 선고받은 이유 중 하나다.

김영준도 범죄 수법을 공유하고 성착취물을 공유하는 집단이 있었고, 그들 중 일부는 아직도 온라인상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게 피해자들의 주장이다. 피해자들이 모인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는 김영준이 검거된 이후에도 “같은 수법을 쓰는 모방범에게 당한 것 같다”는 제보가 들어온다고 한다. A씨는 “김영준이 갖고 있었던 고등학생의 영상이 최근 중국 등 해외 웹사이트로 팔려나가는 등 추가 범행이 이어지고 있다”고도 했다.

김영준이 여성의 사진을 도용해서 범행에 사용한 프로필. 독자 제공

김영준이 여성의 사진을 도용해서 범행에 사용한 프로필. 독자 제공

여성 행세하며 호기심 표한 남성 유인

김영준의 치밀한 범행은 지난 2011년부터 약 10년 동안 이어졌다. 김영준은 스마트폰 데이팅 앱에 여성의 사진을 프로필에 띄운 뒤 호기심에 말을 걸어오는 남성들을 범죄 대상으로 삼았다.

영상통화를 걸어 미리 준비한 여성 인터넷 방송 진행자(BJ)의 영상을 띄우고, 음성변조 프로그램으로 여자 행세를 하며 남성들에게 각종 음란행위를 요구했다. 의심받지 않기 위해 영상 속 여성과 입 모양을 맞춰 대화를 이어가는 주도면밀함도 보였다. 상대가 미심쩍어하는 기색을 보이면 도리어 n번방 사건을 언급하며 “네가 날 몰래 찍고 있는 것 아니냐”고 화를 냈다고 한다.

10년간 이어지던 김영준의 범행은 지난해 6월 그가 경찰에 붙잡히면서 끝이 났다. 검거 당시 김영준의 외장하드에선 약 1570개의 아동·청소년 성착취물과 5740개의 성인 불법 촬영물이 나왔다.

“피해자에게 화살 돌리지 말아달라”

김영준 사건은 일단락됐지만, 피해자들은 ‘제2의 김영준’이 여전히 활개 치고 있다고 말한다. n번방 사건 이후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커졌음에도 남성 피해자들을 향한 싸늘한 시선 때문에 문제가 방치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김영준 사건이 불거졌을 때 일각에선 “남성들이 자발적으로 ‘몸캠’을 찍은 것 아니냐”며 피해자를 조롱하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이에 대해 A씨는 “불법촬영물 때문에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피해를 본 사람이 수십명에 달한다. 성별을 떠나 피해자에게 화살을 돌리진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피해자들은 수사당국의 태도가 미온적이고,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점도 지적했다. 지난해 말 김영준 모방범에게 불법촬영 피해를 당했다는 B씨는 “피해 사실을 신고하려 경찰서를 찾아갔지만, 경찰은 돈을 요구하는 몸캠 피싱으로 오해했다. ‘총책이 해외에 있는 경우가 많아 잡기 어렵다’는 말을 들으며 경찰서 3곳을 전전해야 했다”며 “보다 적극적인 수사가 이뤄져 온라인상에 유포된 성착취물들이 사라지길 바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