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방역 아이러니…세계 "엔데믹" 외칠때 "韓 시기상조" 왜

 지난 4일 미국 뉴욕시에서 코로나19 진단검사를 받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모습. AFP=연합뉴스

지난 4일 미국 뉴욕시에서 코로나19 진단검사를 받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모습. AFP=연합뉴스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가 전세계로 확산한 가운데 이미 한차례 폭풍이 지나간 국가들을 중심으로 엔데믹(endemic·주기적으로 유행하는 풍토병) 전환 가능성이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다. 팬데믹(pandemic·세계적인 감염병 대유행) 상황이 종식되고 계절 독감처럼 철마다 유행하는 엔데믹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는 전망이다. 이렇게 되면 유행 규모와 범위가 제한적이라 상대적으로 인적ㆍ사회경제적인 피해가 줄어들 수 있다.  

국내 방역당국도 이러한 낙관론에 동의하는 입장을 내놨다. 이번 오미크론 유행을 잘 넘기면 안정된 상황을 다시 맞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측이다. 다만 일부 전문가들은 마냥 낙관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방역 상황과 백신 접종률을 고려할 때 외국과 유행 양상이 다르게 나타날 가능성이 높아 시기상조라는 주장이다.  

美·유럽선 대규모 확산으로 자연면역↑

미국 코로나19 일일 확진자 수.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미국 코로나19 일일 확진자 수.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해외 전문가들이 엔데믹 가능성을 내비친 건 오미크론의 전파력 때문이다. 전파력이 델타의 3배에 달하는 만큼 빠르게 대규모 감염이 일어나면서 자연면역을 획득한 이가 증가하고 있다. 한스 클루게 세계보건기구(WHO) 유럽 사무국장은 23일(현지시간) “오는 3월까지 오미크론 변이가 유럽인의 60%를 감염시킬 것”이라며 “이는 이 지역의 코로나19 대유행이 최종 단계를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유럽을 잠식하고 있는 오미크론 변이 확산세가 진정되면 백신이나 기존 감염으로 생긴 면역력은 몇 달간 지속될 것”이라며 “올해 말 코로나19가 다시 유행하기 전까지 팬데믹에 대한 우려는 잠잠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체 인구의 20% 이상이 코로나19에 감염된 것으로 나타난 미국에서도 유사한 전망이 나왔다. 미국 감염병 권위자인 앤서니 파우치 미 국립알레르기ㆍ전염병연구소(NIAID) 소장은 18일(현지시간) 세계경제포럼(WEF) 특별 세션 ‘다보스 어젠다’에서 “면역을 회피하는 또 다른 변이만 나오지 않는다면 팬데믹은 엔데믹으로 전환될 수 있다”고 말했다. 23일에는 향후 코로나19 감염 확산 수준이 통제 영역이라고 부를 수 있는 수준 이하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여기서 ‘통제’라는 것은 바이러스를 아예 없앨 수는 없지만 일반적인 호흡기 감염병과 함께 묶일 정도로 수준이 낮아지는 것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한국 엔데믹 가능성 두고 전문가 의견 엇갈려 

25일 오후 경기도 안성시보건소에 마련된 선별검사소에서 관계자들이 자가검사키트를 점검하고 있다. 뉴시스

25일 오후 경기도 안성시보건소에 마련된 선별검사소에서 관계자들이 자가검사키트를 점검하고 있다. 뉴시스

이제 막 오미크론이 우세종이 된 한국도 엔데믹을 기대할 수 있을까. 방역당국은 낙관적인 입장을 내놨다. 손영래 중앙사고수습본부 사회전략반장은 25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브리핑에서 “외국에 비해 감염자는 적지만 예방 접종률은 우리가 상당히 높다”라며 “오미크론 유행을 잘 넘기고 나면 우리나라도 안정된 상황들을 다시 맞이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오명돈 신종감염병 중앙임상위원회 위원장(서울대 감염내과 교수)은 지난 12일 기자회견에서 오미크론 유행이 설 직전 본격 시작돼 환자가 2~3일에 두 배씩 증가하고 한 두 달 뒤 상황이 종료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오 위원장은 “오미크론이 이번 팬데믹에서 넘어야 할 마지막 고비”라며 “이 고비를 넘는 데는 2개월도 채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비를 잘 넘기기 위해 기존의 엄격한 방역 수준을 상황에 따른 유연한 방역으로 바꾸고, 코로나 환자 진료도 기존 의료 체계 안에 넣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정기 고려대 약학대 교수도 “외국은 감염자가 많아 자연면역이 높지만 한국은 감염자가 적은 대신 백신 접종률이 높다”며 “같은 효과이기 때문에 오미크론만 잘 넘기면 계절성 유행으로 바뀔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하지만 낙관하긴 이르다는 입장도 나왔다.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백신 접종률이 높다고 해도 한국의 경우 아직 면역을 얻지 못한 사람이 너무 많아 엔데믹을 논하기는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엄 교수는 “엔데믹 상황으로 가려면 백신을 접종하거나 감염이 돼 면역을 얻은 사람이 많아져야 하는데 국내에는 감염자가 적은 데다 아직 백신 미접종자가 1000만명 가량 남아있다”고 말했다. 전체 인구 약 5200만명 중 2차 접종을 완료한 이는 4485만여명(85.4%)이다. 아직 800만명이 미접종ㆍ미완료자다. 이 중 60세 이상은 87만명이다. 또 3차 접종 완료자는 2554만명(49.8%)이다. 전체 절반은 추가 접종이 필요한 상태다. 엄 교수는 “영국의 경우 전체 인구의 3분의 1이 감염으로 자연면역을 획득했고, 3분의 2 정도가 백신을 맞았다”며 “물론 겹치는 인구가 있겠지만, 우리보다는 취약지대에 있는 이들이 적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도 “K 방역의 아이러니”라며 “감염자가 적어 영국이나 미국의 상황을 국내에 적용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또 “오미크론으로 집단면역이 생겼다고 해도 또 다른 변이가 나타나면 헛수고”라며 “아직 상황을 신중하게 살펴볼 때”라고 지적했다.   

명절마다 준동하는 코로나19.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명절마다 준동하는 코로나19.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김 교수는 그러면서 유행 양상도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외국은 ‘짧고 굵게’ 정점을 찍고 내려왔다면 한국은 ‘느리고 길게’ 유행이 이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23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미국, 영국, 프랑스, 남아공의 오미크론 사례를 분석한 결과 정점에 도달하기까지 소요된 평균 기간은 27일이었다. 김 교수는 “한국의 경우 이 나라들보다 방역이 잘 돼 있고 접종률도 높아 감염률이 낮다. 즉 정점에 도달하기까지 시간이 더 걸릴 것”이라며 “인적 피해는 훨씬 덜하겠지만 사회ㆍ경제적 피해가 클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조금이라도 빨리 코로나19 엔데믹으로 향하기 위해서는 백신 접종률을 높이는 방법밖에 없다고 입을 모았다. 김정기 교수는 “결국 미접종자들을 접종시켜 면역을 형성해야 하는데 미접종자 대부분은 mRNA 백신은 두려워서 맞기 싫어하는 상황”이라며 “새롭게 도입되는 노바백스 등을 활용해 접종률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엄중식 교수도 “피해를 줄이고 사람들의 면역을 늘리는 유일한 방법이 백신”이라고 말했다. 다만 “지금 백신으로는 한계가 있어 새로운 변이에 대항하는 백신이 나와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안정적이면서 부작용이 없는 항바이러스제가 개발되면 상황이 더 나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