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면 피해자로 추방 운동에 헌신 정지열 씨 폐암 투병 끝에 별세

28일 별세한 정지열 씨. 지난 2010년 11월 충남 홍성 광천에서 열린 전국 석면 피해자 대회에서 발언하는 모습이다. [환경보건시민센터]

28일 별세한 정지열 씨. 지난 2010년 11월 충남 홍성 광천에서 열린 전국 석면 피해자 대회에서 발언하는 모습이다. [환경보건시민센터]

충남 홍성군 석면 광산지역에서 태어나 석면폐증과 폐암으로 힘겨운 삶을 살면서도 석면 추방 운동에 헌신했던 정지열 씨가 28일 오전 12시 15분 79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한국 석면 추방 네트워크 공동대표와 석면 피해자와 가족협회 대표를 지낸 정 씨는 지난 1943년 석면 광산에서 200여 m 떨어진 충남 홍성군 은하면 화복리 야동 마을에서 태어나서 자랐고, 초등학교 졸업 후 1년 정도 석면광산에서 석면이 든 암석을 옮기는 일을 하기도 했다.

정 씨는 지난 2008년 석면폐 2급 진단을 받았고, 2009년에는 위암 진단을, 2019년 7월에는 폐암 진단을 받았다.
정 씨는 폐암 발병 후 지난 3년 동안 항암·면역치료 등을 받았으나, 최근 병세가 심해져 가족을 못 알아보는 상황이 됐으며, 지난 21일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겨졌다가 별세했다. 빈소는 수원 아주대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30일 오전 7시다.

국내에서는 지난해 말 현재 '석면피해구제법'에 따라 5726명의 피해자가 등록돼 있으며, 이 가운데 1908명이 사망했다. 이날 별세한 정 씨는 1909번째 석면 피해 사망자로 기록됐다.

1909번째 석면 피해 사망자

2010년 11월 전국 석면 피해자 모임에 참석한 활동가들과 광천 석면광산을 방문했다. 앞줄 왼쪽이 정지열 씨다. [환경보건시민센터]

2010년 11월 전국 석면 피해자 모임에 참석한 활동가들과 광천 석면광산을 방문했다. 앞줄 왼쪽이 정지열 씨다. [환경보건시민센터]

정 씨는 국내에서 석면 문제가 본격화된 지난 2009년부터 한국 석면 추방 네트워크와 전국 석면 피해자 가족협회 공동대표를 맡았고,  석면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단체인 환경보건시민센터에서 운영위원도 맡았다.
그는 2009년 4월 홍콩에서 열린 아시아 석면 추방네트워크(ABAN) 출범 회의에 참석해 피해 사례를 발표한 것을 비롯해 일본·태국·인도네시아·베트남 등 해외 석면 관련 회의에 참석해 피해 사례를 직접 발표했다.


이러한 활동으로 정 씨는 지난 2012년 충남지사 표창장을 받았고, 2019년에는 아시아 석면추방네트워크 10주년 서울 대회에서 레이철 환경상을 받기도 했다.

환경보건시민센터 최예용 소장은 "고인은 석면피해구제법 제정에 앞장섰고, 석면 피해자가 많은 충남 지역에서 피해자 구제와 지원 활동에 헌신하셨다"며 "2009년 이후 10여 년 동안 아시아 곳곳을 방문해 아시아와 지구촌의 석면 사용 금지를 촉구해 많은 국제 운동가들을 감동하게 했다"고 말했다.

이날 일본 석면 피해자와 가족 협회에서도 추모 메시지를 보내왔다.
일본 중피종·석면질환·환자와 가족모임의 코스게 치에코 회장 등은 추모 메시지에서 "선생님께서는 한일 피해자 교류, 협력의 큰 기둥이셨다"며 "길고 힘든 투병을 끝낸 선생님이 지금은 하늘나라로 편안히 가셨고, 이제부터는 그곳에서 우리를 지켜주시고 격려해 주시리라 믿는다"고 밝혔다.

석면 광산·피해자 충남 지역에 집중

2010년 일본 오사카 지역의 석면 피해자와 석면추방운동가들과 함께 광천 석면 광산을 찾았을 때의 모습. [환경보건시민센터]

2010년 일본 오사카 지역의 석면 피해자와 석면추방운동가들과 함께 광천 석면 광산을 찾았을 때의 모습. [환경보건시민센터]

한편, 국내의 석면 문제는 일제가 태평양전쟁 당시 전쟁 물자인 석면이 캐나다 등으로부터 수입을 못 하게 되자 이를 직접 조달하기 위해 한반도에서 석면 광산을 개발하면서부터 시작됐다.

 
국내 석면 광산 가운데 대부분은 충남 홍성과 보령에 집중돼 있다. 석면 피해자 5726명 가운데 36.2%인 2070명이 충남 거주자다.
정 씨의 친척 중에도 35명이 석면 피해자로 인정을 받았는데, 정 씨를 포함해 이들 중 폐암으로 사망한 사람만 7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