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페미인가요" "네, 그런데…" 극찬 쏟아진 여배우의 '명답' [뉴스원샷]

'하우스 오브 카드'의 여성 주인공 클레어 역을 연기한 로빈 라이트. [사진 넷플릭스]

'하우스 오브 카드'의 여성 주인공 클레어 역을 연기한 로빈 라이트. [사진 넷플릭스]

 
올해로 창간 100주년을 맞는 하버드대 경제경영 전문지엔 왠지 ‘투자의 현인’ 워렌 버핏이나 화성 식민지를 꿈꾸는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 같은 인물만 나올 것 같죠.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HBR)는 그런 고정관념을 최신 2월호에서 깼습니다. 여성 배우이자 감독인 로빈 라이트 인터뷰를 주요 기사로 다뤘거든요.  

‘하우스 오브 카드(The House of Cards)’의 팬이라면 이 배우를 모를 수 없죠. 처음엔 퍼스트레이디로, 그 뒤엔 본인이 대통령이 되는 클레어 언더우드 역을 완벽히 소화해낸 바로 그 배우입니다. 라이트를 좋아하신다면 ‘하우스 오브 카드’로만 회자되는 건 성에 차지 않으실 거고요. ‘투 마더스’에선 절친의 아들과 사랑에 빠지는 로즈 역을, 불의의 사고로 모든 것을 잃은 여성의 재출발을 다룬 ‘랜드’에선 주연은 물론 감독 역할까지 훌륭히 해냈습니다. 사회적 기업가로서도 순항 중입니다. 우리말로 ‘여성을 위하여’라는 뜻의 뿌르 레 팜(Pour Les Femmes)이라는 여성 패션 및 여성 지원 기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내전으로 삶이 피폐해진 아프리카 콩코 여성 등의 자활을 돕고 있습니다.  

영화 '원더우먼'에서 열연 중인 로빈 라이트. [공식 스틸컷]

영화 '원더우먼'에서 열연 중인 로빈 라이트. [공식 스틸컷]

 
이쯤되면 ‘남혐’과 ‘여혐’이 지배하는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는 이렇게 자문하게 되죠. 여성 대통령 역할이나 여성이 주도적인 역할을 주로 맡고, 현실에선 여성을 위한 기관을 운영한다니, 페미니스트 아냐? 마침 라이트의 필모그래피엔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부터 ‘원더우먼’ 등도 포함돼있네요. .  

허핑턴포스트가 2017년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당신은 페미니스트인가요?”라고 묻는 기자에게 라이트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네. 하지만 ‘페미니스트’라는 단어의 뜻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어요. 페미니즘이란 단순히 평등을 위한 겁니다.” ‘하우스 오브 카즈’의 남성 주연배우 케빈 스페이시는 출연료를 회당 50만 달러(약 6억원) 받았지만 라이트는 비슷한 비중에도 불구, 절반도 안 되는 24만 달러를 받은 것으로 보도됐습니다. 허핑턴포스트는 라이트의 답을 두고 “단순하지만 진실을 담은 명답”이라고 극찬했습니다.    

영화 '투 마더스' 공식 스틸컷.

영화 '투 마더스' 공식 스틸컷.

 
라이트를 ‘하우스 오브 카드’에서 처음 보신 분도 많을 겁니다. 그 자신이 자발적 ‘경단녀(경력 단절 여성)’였기 때문입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바로 배우로 성공했지만 결혼과 출산, 육아에 전념하기 위해 30대까지는 연기를 그만뒀습니다. 그러다 40대에 ‘하우스 오브 카즈’로 재기한 겁니다. HBR이 “여성 배우에게 있어서 20~30대는 전성기인데 왜 그런 결정을 했냐”는 요지로 질문하자 라이트는 “그저 아이들이 내겐 최우선이었기 때문”이라고 답했습니다.  


라이트에게도 컴백은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우스 오브 카드’의 감독인 데이비드 핀처는 컴백을 망설이는 그에게 “날 믿어봐 로빈, 우린 진짜 혁신적인 콘텐트를 만들 거니까”라고 했다고 하죠. 핀처의 예언과, 그를 믿은 라이트의 감은 적중했습니다. ‘하우스 오브 카즈’는 지금은 너무도 평범한 것이 되어 버린 스트리밍 서비스의 시조새 격이 됐죠.

그런 라이트가 꿈꾸는 건 남혐도, 여성제일주의도 아닙니다. 그저 기울어지지 않은 운동장일뿐이죠. 그는 HBR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서로에게 선(kind)해지는 거죠. 감독으로서 일할 때 특히 느껴요. 서로가 서로에게 친절하고, 서로의 선의에 집중할 때 세트장에선 특별한 기운이 감돌죠. 그런 분위기에서 서로 협력하면 좋은 작품이 나옵니다.” 비단 세트장에서만은 아닐 겁니다. 대한민국의 2022년도 선한 기운으로 가득했으면 합니다. 임인년은 이제 막 시작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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