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스프린터 박다윤 "공부도 육상도 안 놓칠래요"

서울대 육상선수 박다윤. 김경록 기자

서울대 육상선수 박다윤. 김경록 기자

"너무 좋았어요. 크게 기대를 안 했거든요. 중간고사 기간이라 운동을 많이 못 해서…"

서울대 육상선수 박다윤(19)을 만나 들은 우승 소감은 뜻밖이었다. 수많은 학생선수들을 만났지만 "공부하느라 연습을 못했다"는 선수는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박다윤은 지난달 열린 제51회 종별육상선수권 여자대학부 200m에서 25초33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따냈다. 서울대 선수로 이 대회에서 우승한 건 박다윤이 처음이었다.

박다윤은 서울대 체육교육과 1학년이다. 서울대엔 여러 운동부가 있지만, 대부분 동아리에 가깝다. 체육교육과 학생들이 많긴 하지만, 대다수가 취미로 운동을 한다. 전국대회에 출전해도 다른 팀과 경쟁하기 어렵다. 축구부나 야구부는 2부리그에 배정되고, 어쩌다 강팀을 이기면 뉴스가 된다.

박다윤은 "솔직히 대학에 온 뒤 해보고 싶은 것들을 하느라 운동시간이 부족했다. 메달만이라도 따고 싶었던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면서 "시험 준비 때문에 주종목인 400m도 포기했는데 좋은 결과가 나와 다행이었다"고 말했다.

육상부도 마찬가지다. 고등학교까지 육상대회에 출전한 엘리트 출신은 두 명 뿐이다. 연습시간도 당연히 적다. 박다윤은 "일주일에 두 번 저녁 때 학교 트랙에서 다같이 연습한다. 코치님이 없기 때문에 주장이나 조교님이 도와준다"고 했다. 기숙사 헬스장과 운동장에서 추가로 개인 훈련을 하는 게 전부다. 박다윤은 "솔직히 신입생이니까 대학 생활을 즐기고 있다. 고등학교 때보단 연습량이 줄었다. 이번 대회를 계기로 좀 더 시간을 늘려갈 생각"이라고 했다.


박다윤은 인천 당산초등학교 4학년 때 육상 선수가 됐다. 학교 달리기 대회에서 빠르게 달리는 걸 본 체육교사의 추천으로 시작했다. 박다윤은 "육상 선수가 되려는 생각은 없었다. 아버지(박찬균씨)가 기자이신데, 나도 글 쓰는 걸 좋아해서 막연하게 작가 같은 꿈을 가졌다"고 떠올렸다. 

어머니 오은선(50)씨는 "육상이 비인기종목이다 보니 진로가 확실하진 않았다. 집에서 스포츠를 한 사람도 없어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도 잘 몰랐다. 그래서 육상을 시작할 때부터 공부도 같이 하기로 약속을 했다"고 말했다.

중학교에서도 선수 생활을 이어간 박다윤은 고교 시절 꽃을 피웠다. 주종목은 400m. 지난해 10월 구미에서 열린 전국체전 여자 고등부에선 400m(56초11) 금메달을 따냈다. '여고생 볼트'로 각광받은 양예빈(18·전남체고)은 물론 실업팀 언니들까지 제친 시즌 최고 기록이었다.

프로스포츠만큼은 아니지만 육상계도 대학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실업팀에 가는 선수가 많다. 남자 단거리 기대주 비웨사 다니엘 가사마는 고향팀 안산시청에 입단했다. 전국체전 남고부 100m 금메달리스트 문해진도 안양시청으로 향했다. 박다윤 역시 여러 실업팀의 러브콜을 받았다.

하지만 박다윤은 이런 제안을 거절했다. 인천체고에 수석 입학할 때부터 서울대 진학을 꿈꿨기 때문이다. 박다윤은 "중학교 때는 학원을 다녔다. 고등학교에 갈 때 부모님과 교장 선생님께서 서울대를 준비하자고 조언하셨다"고 말했다. 그는 "실업팀에 가는 것도 좋지만, 운동선수는 언제 부상으로 그만둘 지도 모른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체육교사가 되고 싶었다"고 했다.

박다윤은 수시모집 일반전형을 준비했다. 그는 "1학년 때부터 생활기록부를 위해 여러 가지를 했다. 수상 실적이 필요하니까 대회를 준비하기도 하고, 스포츠 창업 공모전도 참가했다"고 했다. 또 "처음엔 공부하는 방법을 몰라 힘들었다. 코로나 때문에 2학년 때는 화상 강의를 많이 들었다. 남들 다 하는 이야기지만, 노트 필기를 열심히 했다"고 웃었다.

고3 때부턴 본격적으로 학업과 운동을 병행했다. 하루 평균 다섯 시간 동안 운동을 하고, 학교 수업을 들은 뒤 따로 두세 시간 공부를 했다. 새벽 다섯 시 반에 일어나 12시가 넘어서 잠드는 일상이 반복됐다. 박다윤은 "너무 힘들어서 울기도 하고, 엄마에게 투정을 부리기도 했다"고 웃었다. 오씨는 "운동이 끝나고도 친구들처럼 못 쉬니까 답답했던 것 같다. 그래도 끝까지 잘 해줬다"고 말했다.

박다윤은 대학 입학 후에도 선수로서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보다 여건은 나쁘지만, 첫 출전한 대회에서 우승까지 차지했다. 서울대 선수가 우승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공부하는 학생선수'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박다윤은 "전화나 SNS로 문의를 받았다. 어떻게 입시를 준비해야 하는지 궁금해한다.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자신감이 생기자 목표도 뚜렷해졌다. 박다윤은 "일단은 지난해 56초대 기록에 재진입한 뒤 55초 후반대까지 노리고 있다"고 했다. 이어 "3,4학년이 되면 공부를 더 많이 해야 한다. 내년까지는 운동에도 시간을 쏟고 싶다. 메달 획득은 어렵지만, 미뤄진 항저우 아시안게임 출전을 위해 도전할 것"이라고 했다.

박다윤은 이미 어린 선수들의 좋은 롤모델이 됐다. 초등부 선수들이 "박다윤 언니처럼 공부도, 육상도 잘 하고 싶다"고 말할 정도다. 박다윤은 "내가 아직 조언할 위치는 아니지만, 공부를 함께 하면 선택지가 넓어지지 않을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