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간 뒷바라지, 뇌졸중 아내가 떠났다…내가 울지 못한 이유 [김형석의 100년 산책]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내 아내가 병중에 있을 때였다. 대학 동창인 정 교수의 얘기다. 요사이 우리 동네 교수 부인들은 김 교수 칭찬이 대단해서 남편들의 위신이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제 저녁 식사 때는 정 교수 부인도 “당신은 내가 중병에 걸린다면 20년 넘게 뒷바라지할 수 있어?”라고 해 “5년은 할 수 있어”라고 농담했다가 구박을 받았다면서 웃었다.

회갑 즈음에 내 아내가 심한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주치의도 수술은 했으나 희망이 없다면서 외국에 나가 있던 아들·딸들에게 시급히 귀국하기를 권고했다. 나도 각오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기적같이 목숨은 구할 수 있었으나 언어기능을 상실했다. 세브란스 교수들도 강의 시간에 학생들에게 특별한 환자 중의 한 사람으로 소개할 정도였다. 미국에 사는 사위 의사의 도움으로 미국병원에서도 치료를 받았고, 2년 후부터는 세브란스병원과 집을 오가면서 20년에 걸친 세월을 지냈다. 그러다가 의사들의 권고와 가족의 양해를 얻어 병원 치료를 단념키로 했다. 내가 중환자실에 들어가 아내의 손을 잡고 마지막 기도를 드렸다. 그런데 의식이 없는 줄 알았던 아내가 기도를 끝냈을 때 또렷이 “아멘” 했다. 놀랍게도 20여년 만에 들려준 마지막 말이다. 그래서 아내를 다시 집으로 퇴원시키고 3년 동안 가정치료를 계속하다가 우리 곁을 떠났다.

그러니까 교수촌 동네에서는 내가 ‘모범적인 남편’이라는 부담스러운 명예를 얻게 된 것이다. 최근에는 몇 제자 교수들이 내가 큰일이나 한 듯이 존경스러운 마음을 갖는 것 같아 다음과 같은 인생담을 해주곤 한다.

뇌졸중 투병 아내 23년 뒷바라지
‘모범적인 남편’ 부담스러운 영예

남녀는 연정→애정→인간애 겪어
상대 위해주는 희생 단계로 승화


아내 떠나보내면서 눈물 안 흘려
정성을 다했기에 감사한 마음도
  
사랑은 인간다움의 정상적인 과정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남녀가 사춘기를 맞이하면서부터 느끼고 갖는 사랑은 주로 ‘연정’이다. 우리는 흔히 ‘연애’라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그 과정을 늦게 밟거나 경험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어려서 동승이 되거나 수녀·신부가 되는 사람도 그렇다. 어떤 종교인들은 연애는 세속적인 성스럽지 못한 사랑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다움의 정상적인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나와 비슷한 시대의 젊은이들은 중매결혼을 했기 때문에 연애 과정을 거치지 않고 결혼한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뒤늦게 연애 감정에 빠져 이혼을 하거나 혼외 바람을 피우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내 친구 H 교수는 마흔까지 연구 생활만 하다가 친구들이 떠밀어 미혼으로 있던 여제자와 결혼을 했다. 그 교수는 자기는 연애 기간이 없어 헛되이 청춘을 보냈다고 후회한다. 제자와는 엄격한 사제 관계뿐이었기 때문이다. 그 얘기를 들은 다른 친구가 부인 몰래 연애를 해보라고 했다. 연애는 본래 몰래 즐기는 비밀이라고 놀리기도 했다. 그 H 교수는 비슷한 친구를 만나면 연애해 보았느냐고 묻곤 했다. 큰 손해를 본 것 같은 모양이었다. 60~70대 올드 미스도 사랑의 상대를 만나면 연애의 감정을 갖는다. 이성에 대한 제1단계이기 때문이다. 그 단계를 지나 결혼을 거쳐 가정을 이루고 아들·딸까지 낳게 되면 연애 감정은 약화하면서 사라진다. 그 후부터의 감정이 애정이다. 연애를 포함하면서 승화한 사랑이다. 연애의 완성이 사랑이라고 보아 좋을 것 같다. 연애의 독점 욕망이 상대방을 위해주는 함께함과 희생의 단계까지 올라가게 된다. 폐쇄적 연정이 열린 사랑으로 넓어진다.

그러다가 자녀를 낳게 되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가정’이 된다. 가정은 부부 중심의 한계를 넘어 사회적 삶의 단위가 된다. 그래서 자녀를 키워 본 부부의 입장에서 보면 부부만의 가정은 사회적으로 완성된 가정 같이 느껴지지 않는다. 사랑의 사회적 의무를 다하지 못해 보이기 때문이다. 완전한 사랑을 체험하기 이전의 사랑인 것이다. 부부가 부모가 된다는 것은 사회적 생존의 기본 조건이다. 가족을 위해서라면 양보와 희생은 당연한 의무가 된다. 늙으면 부부간의 사랑보다 자녀들의 장래를 더 위해주는 사회적 공감대를 갖는다. 부모는 자신들보다도 자녀의 명예와 사회적 존경심을 더 소중히 받아들인다.

내 경우는 그런 과정을 밟는 동안에 아내가 불치의 환자가 되었다. 연애와 사랑의 과정을 다 겪은 뒤였다. 그때의 부부간 관계는 어떻게 되는가. 주어진 명칭은 없는 것 같다. 나는 그것을 ‘인간애’의 과정이라고 느끼면서 체험했다. 인간이기에 인간다운 사랑을 갖게 된다는 뜻이다. 옆집의 불행한 이웃도 돕는 것이 인간의 정이다. 평생 동반한 사람을 위해 10년, 20년의 사랑의 짐을 나누어 갖는 것은 당연한 도리다. 그 짐을 진다는 것은 주어지는 사랑의 행복일 수 있다.

91세에 남편 보낸 아내의 기도

여성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내 중학생 때 친구가 91세에 세상을 떠났다. 문상을 끝내고 부인을 만났다. “힘드셨지요?”라고 했더니 “아니에요.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것 같아요. 늙은 장로님을 남겨두고 먼저 가면 안 되겠기에 장로님을 보낼 때까지 나를 건강케 해달라고 기도드렸어요. 저는 교수님 사모님이 교수님을 혼자 남겨 두고 먼저 가면서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생각했어요. 그런 생각을 하면 감사한 위로를 받습니다” 고 했다. 그런 심정이 인간애였을 것이다. 여성이었기에 모성애를 저버릴 수 없었을 게다.

나도 아내를 그렇게 보냈다. 임종이 가까웠을 때 둘째 아들이 밖에 있었다. 전화를 걸어 빨리 오라고 알렸다. 여섯 자녀가 다 모여 조용히 보내 주었다. 딸들이 눈물을 닦고 있었다. 나는 울지 않았다. 슬프기는 했으나 내가 정성 들여 보냈기 때문에 감사한 마음도 깔려 있었던 것 같다. 제3자가 보면 그것이 인간애의 성스러운 모습이었을지 모른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인간의 사랑스러운 자화상이었을 것 같다.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