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골학대' 양부모 집 보낸 판사...죽지 않아 선처? 제정신인가 [공혜정이 고발한다]

김해 아동학대 사건 1심 선고 뒤 아동보호단체 등이 판결을 한 창원지법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배경은 이 사건 피해 아동이 쓴 글. 그래픽=김현서 기자

김해 아동학대 사건 1심 선고 뒤 아동보호단체 등이 판결을 한 창원지법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배경은 이 사건 피해 아동이 쓴 글. 그래픽=김현서 기자

“죽을 것 같다”며 제 발로 경찰 지구대를 찾아간 열한 살 소년 A를 기억하십니까. 경찰 수사에서 양부모의 학대 사실이 드러나 양부모가 아동복지법 위반(학대·유기·방임) 혐의로 불구속 기소가 됐습니다. 언론이 '냉골 학대'라 이름 붙인 김해 아동학대 사건입니다.

지난 2020년 12월 말에 양부모로부터 분리돼 보호기관에 있던 A군을 만났습니다. 또래(초등학교 4학년생)보다 많이 작았고, 빼빼 말라 있었습니다. 때가 덕지덕지 묻은 점퍼, 밑창이 다 닳아서 곧 바닥에 구멍이 생길 듯 한 운동화, 뒤통수에 세로로 길게 난 흉터를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경찰은 양모가 숟가락을 세워 때려서 난 흉터로 추정했습니다. 

2020년 말 A군이 양부모로부터 분리됐을 때의 모습. 뒤통수에 상처 자국이 있고, 운동화 창은 맨질맨질하게 닳은 상태였다. [사진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2020년 말 A군이 양부모로부터 분리됐을 때의 모습. 뒤통수에 상처 자국이 있고, 운동화 창은 맨질맨질하게 닳은 상태였다. [사진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외양만 충격적인 게 아니었습니다. A군의 증언은 믿기 어려울 만큼 처참했습니다. “엄마가 저보고 나가서 죽으랬어요, 왜 아직 안 죽었냐며 욕을 하고요.” 그 아이는 TV와 컴퓨터가 없는 원룸에 홀로 방치된 상태에서 하루 한 번 양부가 가져오는 밥(과거 개밥처럼 그릇에 밥·반찬을 한데 넣은 것)을 먹고 겨우 연명했습니다. 휴대폰은 물론 없었고, 보일러 꺼진 냉골에서 이불 하나를 깔고 덮고 자면서요. 그 원룸에는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려고 설치한 CCTV가 있었는데, 양모는 뭔가 마음에 안 들면 원룸에 들이닥쳐 책 모서리나 숟가락으로 머리를 때리거나 아이의 머리에 커다란 냄비를 뒤집어씌우고 숟가락을 두들겼다고 합니다.

반복된 학대 신고 불구 관대한 처분 반복

학대는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습니다. 2017년 초등학교 1학년 때 A군 몸 곳곳에 멍이 있고 갈비뼈 주위가 부어있는 걸 학교 선생님이 발견하고는 아동보호기관에 신고를 했습니다. 경찰은 양모의 폭행을 확인하고 재판에 넘겼고요. 그런데 관할 법원인 창원지법은 아이를 분리하는 대신 양모에게 보호관찰 1년에 상담 위탁 6개월이라는 관대한 처분을 내렸습니다. 양모의 학대는 그치지 않았습니다. 2년 뒤인 2019년 또 다른 교사가 학대 신고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경찰이 "아이가 양모가 때리지 않았다고 진술했다"며 불기소 처분을 하고는 사건을 끝냈습니다. 

A군이 창원지법 판사에게 보낸 글. 엄마가 자신을 때린 사실을 감추라고 강요했다는 말이 적혀 있다. [사진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A군이 창원지법 판사에게 보낸 글. 엄마가 자신을 때린 사실을 감추라고 강요했다는 말이 적혀 있다. [사진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이후 A군은 원룸에 홀로 살게 됐습니다. 양부모가 집 근처에 원룸을 하나 얻어 고작 열한 살 아이를 혼자 지내게 한 겁니다. A군에게는 양부모의 친딸인 누나가 하나 있습니다. 책 몇 권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방에서 아이는 양부모는 물론 누나 얼굴도 못 보며 1년 가까이 학대와 두려움, 그리고 추위를 견뎌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한파가 몰아친 12월 말에 "살고 싶다"며 동네 지구대를 찾아 제 발로 갔습니다.


처음에 아이를 만났을 땐 학교 선생님을 비롯해 주변 사람들 모두 학대를 알면서도 방관한 게 아닌가 의심했습니다. 사정을 알아보니 그건 아니더군요. 학교 교사들과 아동보호기관 직원은 1차 신고 때의 솜방망이 처벌, 그리고 2차 신고 때의 불기소 처분 때문에 섣불리 신고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신고를 해봤자 경찰과 법원이 제대로 처벌하지 않고 또 풀어줘 아이 본인과 주변 사람 모두 곤란하게 될까 염려했던 탓이지요. 또 양모가 신고를 당한 후엔 처벌이 두려워서인지 몸에 멍이 들 정도로는 때리지 않고 그냥 원룸에 방치하는 형태로 학대했기에 피해가 명확히 눈에 들어오지 않은 것도 신고를 주저한 이유였습니다.

징역 2년 6월 구형에 집행유예 판결 

아무튼 양부모는 재판을 받게 됐습니다. 그들은 재판 내내 아이가 주의가 산만하고 말을 듣지 않아 키우기가 너무 힘들었다며 자신들이 피해자라는 식으로 변명했습니다. 심하게 때린 적은 없고, 부부가 이혼해 남편과 A군이 원룸에 나가 살게 된 거지 아이만 방치한 게 아니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원룸엔 양부 물건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눈에 뻔히 보이는 거짓말이었습니다.

창원지법 재판부는 지난 17일 “양부모가 A군을 제외한 나머지 가족관계를 유지하려는 명목으로 A군을 사실상 배제, 고립시켜 희생하게 하는 방법을 선택함으로써 부모로서의 기본적인 의무를 저버렸다, 피고인들의 이러한 행위는 A군에게 평생 큰 상처로 남을 것으로 예상한다”면서도 양부모 모두에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습니다.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앞서 검찰은 징역 2년 6월을 구형했고, 제 주변 법조인들은 대부분 실형 선고를 예상했습니다. 그런데 양부모 모두 집으로 돌려보내는 판결이라니요. 

판사는 “양부모가 잘못을 일부라도 인정하고 있고, 부양이 필요한 미성년 자녀가 한 명 더 있으며 A군의 정서적 치유를 위해서는 보호기관 및 전문가와의 협의 하에 꾸준한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고 집행유예 사유를 설명했습니다. A군 누나를 돌봐야 하고, A군을 위해서도 양부모를 수감하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는 말이었습니다. 심지어 양부모에게 A군의 정서적 치유를 위한 노력을 주문하다니, 판사가 사건의 심각성을 이해하지 못하지 않고서야 나올 수 없는 판결 아닌가요.     

“양부모의 학대행위가 피해 아동의 자존감을 크게 낮출 뿐 아니라 감정, 행동, 동기부여, 기억 등을 담당하는 뇌의 변연계에 큰 손상을 주고 손상된 뇌는 회복이 쉽지 않고 평생 피해를 준다”며 엄벌을 요구하는 의견서를 재판부에 낸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는 판결에 항의했습니다. 제가 대표로 있는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도 “아동학대 행위자인 입양 부모의 자격 박탈 논의는커녕 심각한 학대 후유증이 있는 아동을 학대 행위자에게 다시 보호를 맡긴다는 건 아동복지법 위반일뿐더러 학대받은 아동을 학대 행위자로부터 분리하고 보호하는 아동학대 예방 사업의 근간을 뒤집는 판결”이라는 성명을 냈습니다. 창원지법은 ‘꾸준한 노력' 운운한 판결이 피해 아동의 가정 복귀를 전제로 한 건 아니라는 보도자료를 뿌렸습니다.

죽지 않았으니 별일 아니다? 

A군 양부모는 이미 한 차례 법원의 관대한 처분을 받고도 치유나 관계 회복을 위한 노력 대신 오히려 원룸에 방치하는 극단적 학대를 가했습니다. 그런데도 집행유예를 선고한 건 법원이 ‘살아남은 아이’에 대한 학대는 가볍게 취급한다는 걸 보여줍니다. 정서적 학대와 방임의 끔찍한 후유증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다는 것도요. 죽지 않으면 별일 아니라는 건가요?

정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아동학대로 숨진 아이는 17명, 방임으로 사망한 아이는 16명입니다. 방임 역시 신체적 학대 못지않게 죽음에 이르게 하는 극단적 학대라는 걸 법원이 인식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통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서 학대는 아동의 정신 건강, 행동발달, 자아 존중감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평생을 후유증에 시달리게 하는 인격말살의 범죄입니다. 

석 달 전 다시 만난 A군은 키가 한 뼘도 넘게 컸고 피부도 뽀얘졌습니다. "우리 집"이라 부르는 보호시설이 제공한 멀끔한 운동화를 신고 있으니 학대받은 아이 같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머리만은 기를 쓰고 깎지 않으려 한다는 겁니다. 알고 보니 뒤통수 흉터가 드러나는 게 싫어서였습니다. 이제 제법 규칙도 잘 지키고 웃음도 늘었지만 간간이 돌발적으로 거친 행동을 한다고 합니다. 아이에게 직접 물었더니 “숨 막히고 답답해서 죽을 것 같아 그랬다”라고 합니다. 상습적 학대는 이렇게 아이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깁니다. A군은 “엄마 아빠가 와서 사과했으면 좋겠다”면서도 “절대로 엄마 아빠한테 돌려보내지 말아 달라”고 합니다. A군 양부모는 선고 후 “사과할 의향이 있느냐”는 제 질문에 끝내 답하지 않았습니다. 

김해 아동학대 사건 재수사 요구 시위를 하는 필자 공혜정씨(가운데 여성). [사진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김해 아동학대 사건 재수사 요구 시위를 하는 필자 공혜정씨(가운데 여성). [사진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A군은 현재 심리 치료와 행동 치료를 함께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옹이처럼 박힌 영혼의 상처는 어쩌면 평생 그를 힘들게 할지 모릅니다. 1심 판결 뒤 검찰은 항소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경찰은 불기소 처분을 내렸던 2019년 학대와 관련해 재수사를 벌이고 있습니다. 아이가 숨지는 등 신체적 학대뿐 아니라 방임과 정서적 학대 역시 심각한 범죄입니다. 법원과 경찰은 이런 상식으로 이 사건을 다뤄주길 간곡히 부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