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쿠르 1위, 지금도 기쁘지 않다" 18세 임윤찬 남다른 소감

 
제16회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 기념 기자간담회가 열린 29일 한국예술종합학교 이강숙홀. 콩쿠르 역대 최연소 우승자인 피아니스트 임윤찬(18)이 피아노 앞에 앉았다. 스크랴빈 전주곡 Op.37-1과 스크랴빈 소나타 2번 1악장을 연주했다. 장중한 내면의 힘이 느껴졌다. 그러면서 외면을 섬세하게 아로새긴 연주였다. 

1962년 시작돼 4년마다 열리던 반 클라이번 콩쿠르는 지난해 대회가 코로나로 1년 미뤄져 올 6월, 5년 만에 개최됐다. 전 세계 388명의 피아니스트가 참가, 1차 30명, 2차 18명, 3차 12명의 경연으로 6명이 뽑혔고 협주곡 두 곡을 연주하는 결선으로 우승자를 가렸다. 베토벤 협주곡 3번과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3번을 연주한 임윤찬은 10만 달러(1억 2900만원)의 상금과 음반 녹음, 매니지먼트 관리와 월드 투어의 기회를 얻었다.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30일 제16회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기념 기자간담회에서 피아노 연주를 하고 있다. 뉴스1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30일 제16회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기념 기자간담회에서 피아노 연주를 하고 있다. 뉴스1

 
“우승이 기쁘지 않은 건 지금도 달라진 게 없다. 콩쿠르 1위했다고 실력이 늘지는 않았다”는 임윤찬의 첫 소감은 역시 남달랐다. 함께 배석한 손민수 한예종 교수가 “큰 관심을 보여주셔서 클래식 음악가로서 긍지를 느낀다”며 “음악의 순수함이 통했다는 점, 많은 사람들과 음악으로 소통하는 계기가 되어 기쁘다”고 정리했다.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한국예술종합대학에서 열린 제16회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뉴스1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한국예술종합대학에서 열린 제16회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뉴스1

 
30명 중 18명이 진출한 2라운드에서 임윤찬은 첫 곡 바흐 ‘음악의 헌정’ 중 리체르카레 연주를 마치고 스크랴빈 소나타 2번을 연주하기 전 90초의 침묵을 이어갔다. 연주를 지켜보던 사람들이 긴장하며 침을 삼켰다. 거기엔 의미가 있었다. “2라운드 때 바흐에서 영혼을 바치는 느낌으로 연주했다. 그런 고귀한 음악을 연주하고 스크랴빈으로 바로 넘어가기가 힘들었다.”

3차 준결선에서 임윤찬은 65분에 달하는 리스트 초절기교 연습곡 전곡을 연주했다. 수많은 눈이 향하는 경연에서 집중력 있게 고난도의 기교를 펼쳐야 하는 곡을 고른 이유는 무엇일까. “리스트 초절기교 연습곡은 사람들 머릿속에 기교적으로 어렵고 이름 자체가 위협적으로 다가온다. 손교수님은 초절기교라는 게 테크닉 뿐 아니라 어려운 기교를 넘어서 다시 음악적인 음악으로 돌아오는 그 순간이라고 강조하셨다. 그걸 생각하면서 연습했다.”


 
이번 콩쿠르 결선에서 연주한 베토벤 협주곡 3번은 2019년 윤이상 콩쿠르에서 우승할 때도 연주했었다. 어릴 적부터 큰 무대에서 어떤 곡을 하면 제일 잘 할 수 있을까 고민했을 때 떠오른 곡은 베토벤 3번이었다고 했다. “윤이상 콩쿠르나 이번이나 마음가짐은 늘 같았다. 내가 달라져서 음악이 달라진 건 아닌 것 같다. 들으시는 분들이 그렇게 느끼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피아니스트 임윤찬(왼쪽)과 손민수 한국예술종합대학 교수가 30일 제16회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기념 기자간담회에 함께 참석했다. 임윤찬은 2017년부터 손 교수를 사사하고 있다. 뉴스1

피아니스트 임윤찬(왼쪽)과 손민수 한국예술종합대학 교수가 30일 제16회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기념 기자간담회에 함께 참석했다. 임윤찬은 2017년부터 손 교수를 사사하고 있다. 뉴스1

 
임윤찬은 반 클라이번 콩쿠르 기간 동안 연락을 위한 카톡을 제외한 유튜브나 구글 앱을 다 지우고 본인의 연주를 일체 안 들었다고 했다. 지금까지도 다시 보거나 하지 않아서 전세계로 생중계된 동영상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고 답했다.  

2015년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한 조성진을 보고 피아노를 시작한 ‘조성진 키드’가 존재하듯이 ‘임윤찬 키드’가 생겨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임윤찬은 “어린 학생들이 저를 롤 모델로 하면 안 된다. 저보다 훌륭한 전설적인 피아니스트들을 롤 모델로 삼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가 즐겨 듣는 코르토, 프리드만, 소프로니츠키, 라흐마니노프, 호로비츠 같은 피아니스트 얘기다. 결선에서 연주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카덴차도 일반적인 버전이 아닌 작곡가 자신과 호로비츠가 즐겨 쓴 오리지널 버전으로 연주했다.

“옛 연주가들은 인터넷도 없었고 악보와 자신 사이에서 음악을 찾았기에 독창적이었다. 요새는 유튜브 등 기술의 발전으로 다른 사람의 연주를 쉽게 들을 수 있다. 무의식적으로 좋았던 연주를 따라하게 된다. 잘못된 거다. 옛날 예술가들의 음악 만들기를 본받아야 한다.”

언젠가 피아니스트 조성진에게 가장 어려운 작품이 뭔지 물었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이라 했다. 작품이 어려우면 어려운 만큼 그것을 수행했을 때 기교적인 만족감이나 음악적인 감동 같은 보상이 있어야 하는데, 이 둘 모두 얻기 힘들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임윤찬이 결선에서 포트워스 심포니와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3번 연주를 마치자 지휘대에 섰던 심사위원장 마린 올솝이 눈물을 훔쳤다. “마린 올솝 선생님은 어릴 적부터 존경했다. 초등학교 때 언젠가는 함께 연주해보고 싶었다. 그 마음이 통해서였는지 음악이 더 좋게 나올 수 있었다. 연주 끝나고도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조연도 많이 해주셨다.” 

13세 때인 2017년 한국예술영재교육원에서 손 교수를 처음 만난 임윤찬은 “살아가면서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것의 영향을 받았다. 피아노 레슨 하면서도 피아노 뿐 아니라 다양한 장르를 알려주셨고 예술가들이 어떤 마음으로 살았는지 가르쳐주셨다. 인생의 모든 것에 영향을 주셨다”고 했다. 손 교수는 임윤찬을 “늘 음악에 몰두하고 새로운 걸 찾아 나서 믿음을 준 제자”라며 “아까 스크랴빈 전주곡과 소나타 연습하는 걸 봤다. 왼손만 연습하더라. 그러기 쉽지 않다. 본인이 음악에 확 젖어들고 싶을 텐데 왼손만 차분히 연습할 수 있는 절제. 저런 마음이면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제자의 성과를 “음악의 힘은 진정한 자유라는 걸 임윤찬이 보여준다. 연습실 안에서 자기 단련과 절제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라 압축했다. 리스트 ‘단테 소나타’ 연주를 위해 단테의 『신곡』을 출판사별로 구해 거의 외다시피 한 끈기와 열정은 그의 연주를 찾아서 듣게 만든다.

임윤찬 앞에는 연주 일정이 빼곡하다. 먼저 7월에는 미국 각지에서 연주 투어를 갖는다. 진지하고 뜨거운 그의 연주는 8월 국내에서 만날 수 있다. 10일 롯데콘서트홀 ‘바흐 플러스’에서 바흐 피아노 협주곡, 20일 롯데콘서트홀 ‘클래식 레볼루션’에서 김선욱 지휘의 KBS교향악단과 멘델스존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연주한다. 27일에는 평창 ‘계촌 클래식 축제’에서 국립심포니와 협연한다. 10월에는 롯데콘서트홀에서 정명훈 지휘 원코리아 오케스트라와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를 연주한다. 11월에는 싱가폴 대만 등을 도는 아시아 투어를 갖고 12월 10일에는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리사이틀을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