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스 아태 부문대표 된 그의 조언…"안전지대에 머물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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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인 기자 사진 폴인 기자
Editor's Note
글로벌 헬스케어 기업 필립스는 지난해 이례적 승진 인사를 단행했습니다. 아시아태평양(APAC) 헬스시스템즈 부문 대표에 김동희 필립스코리아 대표를 임명한 겁니다.  

이 회사 아태지역 대표는 본사 출신이 맡는 게 관행이었습니다. ‘경영 수업’ 차원에서요. 하지만 김 대표는 본사 출신이 아니고 외부 영입 케이스였습니다. 2018년 필립스코리아 최초의 여성 대표가 된 데 이어, 두 번째 기록을 세운 겁니다.  

여성 리더로서 새로운 길을 개척 중인 김 대표. 그를 만나 어떻게 자기 일과 삶을 만들어 나가고 있는지 물어봤습니다. 김 대표는 후배들에게 “안전지대(Comfort Zone)에 머물지 말라”고 조언했습니다.  
 
※ 이 기사는 ‘성장의 경험을 나누는 콘텐트 구독 서비스’ 폴인(fol:in)의 “글로벌 여성 리더의 일과 삶” 5화 중 일부입니다.  

 

“만만하게 보이지 말자”는 강박, ‘장점 찾는 리더십’ 만나 깨졌다

 
Q. ‘50대 여성 리더는 개인의 삶 없이 일에만 몰두한다’는 식의 편견을 듣습니다.  
여성 리더의 강점은 여성성에 충실할 때 가장 잘 발휘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여기서 관건은 여성성을 어떻게 정의하느냐겠죠. 여성 리더가 더 잘하는 건 뭘까를 생각해보면 답이 나온다고 봐요.


여성 리더들이 남성 리더보다 공감 능력이 풍부하다는 연구 자료도 있죠. 타인의 감정을 잘 이해하는 감성 지능이 더 높은 편이라는 통계가 나왔어요. 정치적인 맥락에 휘둘리지 않고 훨씬 더 솔직한 편인 것 같기도 해요. 주장을 잘 어필하되 현실적인 합의안을 특정 입장에 얽매이지 않고 잘 찾아내는 것 같아요. 이런 부분들을 잘 계발하면 여성 리더로서의 강점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도 처음부터 이런 생각을 가진 건 아니에요. 20대에 처음 커리어를 시작했을 땐 대부분 남성 동료밖에 없었어요. 그러다 보니 머릿속에 ‘내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어리다고 만만하게 보이면 안 된다’ 같은 강박관념이 많았어요. 여자로서 내가 뒤처지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는 데 몰두하면서 나를 입증하려 했어요.

Q. 생각이 바뀐 계기가 있나요?
좋은 상사를 만나면서부터였어요. 운 좋게도 ‘나도 저런 장점을 갖고 싶다’ 생각하게 되는 분들을 많이 만났는데요. 단점보다는 각자가 가진 장점을 잘 갈고 닦아 발휘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게 곧 좋은 리더십이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여성 리더는 개인적 삶도 포기하고 일에만 매달린다는 선입견이 있는데, 저는 개인적 삶을 포기한 적 없어요.

일과 삶의 비율도 중요하겠지만, 단순히 비율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깊이 있게 추구할 수 있는가가 중요한 것 같아요. 개인 삶에 대한 만족이 있어야 ‘나’라는 존재가 잘 유지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Q. 헬스케어 분야 커리어는 어떻게 쌓았나요.  
MBA 졸업 후에 컨설팅 회사가 아닌 일반 기업에 가고 싶었어요. 컨설팅 업무의 본질은 자문이잖아요. 내가 아닌 클라이언트를 주인공으로 만들고 방향성을 제시하죠. 그러다 보니 내가 직접 책임지고 주도적으로 리딩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한 니즈가 점점 커지더라고요. 계속 무대 뒤에 있기보다는 무대 위에 오르고 싶었던 거죠.

제가 갔던 학교에 헬스케어 분야 집중 양성반이 있었어요. 저는 헬스케어 전공은 아니었는데, 어쩌다 그 반에 소속됐어요. 사회가 빠르게 고령화되고 있고 만성질환도 많아지면서 헬스케어의 중요성이 대두하고 있었고, 헬스케어가 미래에 중요한 역할을 하겠다는 확신이 생기는 분위기였어요. 저도 자연스레 헬스케어 분야에서 일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지망하게 됐죠. 졸업 후 보스턴사이언티픽이라는 의료기기 회사에 글로벌 마케팅 매니저로 입사했어요. 이후 에드워즈라이프사이언시스에서아태본사 사업부와 일본 시장을 맡았죠.

Q. 이후 필립스코리아 대표로 자리를 옮긴 뒤, 지난해에는 아시아 사업부 대표도 맡았습니다. 드문 일이라고 들었어요.  
다국적 회사가 아시아태평양 시장을 맡을 리더를 찾는 방법은 보통 두 가지예요. 하나는 본사에서 자국 출신의 인재를 잘 키워서 경영 수업 차원에서 이 지역에 보내는 케이스예요. 대부분 이 경우죠.

또 하나는 아시아 지사에서 재능 있는 리더를 뽑는 거예요. 아시아 시장의 경우 성장 가능성이 큰 곳인데, 지역적 전문성 없이는 성장을 주도하기 어렵거든요. 드문 경우이긴 한데, 제가 여기에 해당하겠네요. 한, 미, 일에서 고루 경험을 쌓았으니까요.

Q. 직장인으로서 김 대표의 강점은 뭔가요?
일희일비하지 않는 것 부분인 것 같아요. 산전수전을 정말 많이 겪었거든요. 힘든 일은 많지만 오래 좌절하진 않습니다. 회복 탄력성이 좋달까요. 얼른 털고 다음 단계로 빠르게 넘어가려는 편이에요. ‘맷집이 좋다’고도 할 수 있죠(웃음).

우선순위를 직관적으로 잘 정한다는 장점도 있는 것 같아요. 최선을 다해도 안 되는 일은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않으려 해요. 지나간 일을 복기하는 게 중요하긴 하지만, 거기에 많은 에너지는 쓰지 않죠. ‘그때 그래야 했는데’ 식의 후회를 잘 하지 않는 편이에요. 그런데 이 강점이 결코 타고난 건 아니에요. 경험이 쌓이면서 자연스레 길러진 거죠. 시간이 선사해준 장점들이에요.

 

2020년 중소벤처기업부 공모전 심사 중인 김동희 대표의 모습. ⓒ필립스코리아

2020년 중소벤처기업부 공모전 심사 중인 김동희 대표의 모습. ⓒ필립스코리아

 

한국에만 남아 있던 ‘직급’ 없앴다, 필립스코리아가 겪은 변화는

 
Q. 대표이사 제안을 수락할 때 마음가짐은 어땠나요?
크게 두 가지 부분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첫째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디지털 기반의 시스템 혁신)을 본격적으로 해 나가야겠다는 거였어요. 필립스의 연간보고서를 보면 디지털 헬스케어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매우 강조하는데, 코로나라는 동력을 얻어서 더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것 같아요. 전사적으로 추구하는 이 가치가 한국에 얼마나 접목되어 있는지 살피고 적용하고 싶어요. 저희 고객사는 대부분 대형 병원인데, 단순히 서비스와 제품을 납품하는 정도가 아니라 함께 미래 전략을 세우는 파트너가 되고 싶어요. 디지털 헬스케어를 기반으로 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일종의 컨설팅 측면의 가치를 주고 싶죠.

둘째는 수평적인 사내문화를 꼭 만들고 싶어요. 필립스가 한국에 진출한 지 46년이 되었는데, 필립스의 수평적인 문화를 한국에도 잘 구축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추진한 게 ‘님' 호칭 제도예요. 전 세계 필립스 중 한국에만 유일하게 직급 제도가 있었거든요. 직급을 없애고 이름에 ‘님’을 붙여 호칭하기로 했어요. 거리감도 줄이고 서로를 존중하는 느낌을 줄 수 있도록 한 거죠. 벤치마크를 하고, 노사 협의도 하고, 여러 준비 과정을 거쳐 추진했는데, 생각보다 빠르게 적응하고 흡수가 됐어요. 작지만 중요한 시도였다고 생각해요.

Q. 회사의 양성평등 정책이나 여성 리더십에 대한 분위기가 타사와 다른 부분이 있나요.  
강박에 가까울 정도로 다양성, 포용(inclusion)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필립스가 유럽(네덜란드)에서 출발한 회사라서 좀 더 그런 성향이 강한 것 같기도 하고요. 2025년까지 임원급 중 여성 리더를 30% 이상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두고 매달 모니터링을 하고요. 채용 과정에서 시니어 포지션을 뽑을 때 여성 지원자를 꼭 모집해야 한다는 룰도 있어요. 필립스코리아도 임원 중 36%가 여성이에요.

Q. 리더를 꿈꾸는 여성 직장인이 갖춰야 할 소양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컴포트 존’에만 있으면 원하는 커리어를 만들기 어려워요.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일단 해보기를 추천해요. 시도한 뒤에 고민해도 늦지 않아요.

뭐든 시도해보고 시행착오를 거치며 다양성을 쌓아가는 게 중요해요. 특히 다국적 회사의 경우, 국내 경험뿐 아니라 아태 본사 혹은 국제 경험을 갖춰야 해요. 이왕이면 최대한 많이 도전해보세요.

Q. 여성 후배들의 고민도 많이 듣는 편인가요.  
20대 후반, 30대 초반 후배들은 글로벌 커리어를 만들려면 꼭 해외 MBA를 가야 하는지도 자주 물어요. 하지만 특정 학교에서 특정 학위를 갖는다고 해서 커리어가 보장되는 시대는 이미 끝난 것 같아요.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뭘 할 수 있는지,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해야 해요. 그렇게 정리하면서 학위가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면 학교에 가면 되고요.

30대 후반에서 40대 후반 사이의 후배들은 은퇴 후에 잘 살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많이 묻는데요. 그 질문은 저도 답하기 어려워요. 같이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하죠. (웃음)

″특정 학교를 졸업했다고, 특정 학위를 가졌다고 커리어가 보장되는 시대는 끝났죠.″ ⓒ필립스코리아

″특정 학교를 졸업했다고, 특정 학위를 가졌다고 커리어가 보장되는 시대는 끝났죠.″ ⓒ필립스코리아

  

“야구로 따지면 8, 9회쯤 온 것 같아요”

 
Q. 한국·일본·싱가포르·미국을 거쳐 커리어를 쌓다 보면, 각 문화에 적응하기가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전문성을 쌓고 그것으로 어필하려고 최선을 다했어요. 특히 일본에선 더 신경 썼죠. 일본인들은 누군가가 그 분야의 전문가다 싶으면 존중하는 경향이 있어요. ‘장인 정신’의 나라잖아요.

제가 맡은 분야와 관련해서는 어떤 질문이 나와도 깊이 있는 대화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준비했어요. 팀을 매니징할 때도, 외부와 협업할 때도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했어요. 의사인 고객이나 동료들이 “궁금한 건 동희에게 물어보면 알 수 있다”고 할 정도였죠. 외부에서도 “이 사람과는 아카데믹한 대화까지도 잘된다”고 했고요. 컨설턴트로 일하면서 짧은 시간 안에 깊이 있게 정보를 체화하는 과정을 트레이닝한 덕분인 것 같아요.

Q. 각국의 업무 문화·방식에서 느낀 차이점이 있다면 무엇이었나요?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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