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예사 한 명이라도 봤더라면, 고인돌 파내는 일은 없었을수도

경남 김해시 구산동 지석묘의 공사 전 모습. 가운데 큰 상석을 중심으로 주변에 자잘한 돌(박석)이 넓게 분포해있다. 상석의 크기와 박석이 깔린 넓이 등을 모두 포함해 규모가 크고 시기가 오래돼 역사적 가치가 큰 것으로 보고 문화재청에 사적 지정을 추진 중이었으나 공사로 훼손되면서 무산됐다. 사진 문화재청

경남 김해시 구산동 지석묘의 공사 전 모습. 가운데 큰 상석을 중심으로 주변에 자잘한 돌(박석)이 넓게 분포해있다. 상석의 크기와 박석이 깔린 넓이 등을 모두 포함해 규모가 크고 시기가 오래돼 역사적 가치가 큰 것으로 보고 문화재청에 사적 지정을 추진 중이었으나 공사로 훼손되면서 무산됐다. 사진 문화재청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국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고인돌로 추정되는 경남 김해시 구산동 지석묘가 정비공사 중에 원형이 훼손됐다. 큰 상석과 주변에 깔려 있던 박석(바닥돌)들이 원래 모습에서 흐트러졌다. 구산동 고인돌은 가야가 세워지기 전 청동기 말기부터 초기 철기시대의 무덤 형태를 보여주는 유적이다. 경남도 기념물이고, 김해시는 국가 사적 지정 신청을 한 상태였다. 지자체 공식 유튜브 채널이 '가야왕도 김해TV'이고, 지자체 홈페이지에서 '가야의 땅 김해' 등 고인돌 관련 유적의 역사성을 강조한 지금까지의 김해시의 행보를 고려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전개다.

 
본지 확인 결과, 문제가 된 고인돌 정비 업무에는 학예사가 단 한 명도 투입되지 않았다. 학예사들은 입을 모아 “의사결정 구조나 사업 추진 과정에 학예사가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라고 말한다.  

학예사 4명 있지만 쓰지 못했다

구산동 지석묘 관련 업무는 김해시 문화관광사업소 산하 가야사복원과가 담당한다. 그러나 책임자인 과장도 학예사가 아니고, 담당자도  지난해 7월 발령받아 문화재 업무를 처음 접했다. 2020년 12월 공사 계약 이후 1년 반동안 공사가 진행됐지만, 매 주 현장에 방문했음에도 아무도 문제의 소지를 걸러내지 못했다.

가야사복원과 총 21명 직원 중 학예사가 4명 있기는 하다. 그 중 3명은 최근 1~2년 새 김해시가 가야사 복원에 힘을 실으면서 새로 뽑은 고고학 전공자다. 그러나 그들은 구산동 사업에 전혀 영향력을 끼치지 못했다. 기자가 접촉한 경기도의 A 학예사는 이런 얘기를 들려줬다. "10년쯤 함께 일한 사이라면 모를까, 1~2년 차 신입이 다른 사람 업무에 대해 뭐라고 참견하기는 쉽지 않다." 일종의 칸막이 현상이다. 팀장 성향에 따라 담당자가 아니더라도 학예사의 의견을 구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지만 그야말로 '팀장 따라'이기 때문에 크로스 체크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한다.  

문화재위원-시청-공사업체까지 ‘노 브레이크’

학예사 공백은 거침 없는 땅파기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현장의 시공업체는 별다른 추가 설명이 없다면 도면대로 시공한다. 한 학예사는 “문화재 관련 업력이 길고 시공 경험이 많다면, 현장에서 지석묘 하단이 발굴이 안된 걸 보고 일단 멈추고 다시 한 번 확인했겠지만 모든 업체가 그런 판단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고 말했다. 경남 지역의 B 학예사는 "문화재 전문가와 시공 업체간의 대화는 수학자와 국문학자의 대화 비슷한 경우가 많다"고 했다. 한쪽에서는 돌멩이 하나라도 함부로 들어내는 행위는 말할 필요도 없는 금기지만, 다른 한쪽은 하지 말라는 얘기가 없다면 얼마든지 들어낼 수 있다는 입장이라는 것이다. 구산동 고인돌의 경우 경남도 문화재위원들은 “문화재 원형을 보전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하지만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문화재 전문가(문화재위원)와 시공사 사이에서 연결하고 통역하는 학예사가 없다 보니 문화재를 위한답시고 문화재를 훼손한 초유의 일이 발생한 것이다. 


“판김에 발굴조사” 끝?… “비슷한 일 또 생길 것”

이런 일의 반복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현장의 학예사들은 “무엇보다 업무 전문성을 무시한 인사 시스템이 문제”라고 짚었다. 일반직공무원의 경우 1~2년 주기로 순환근무하다 보니 전문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결국 학예사 부족, 문화재청과 지자체 사이의 불통 구조, 문화재에 대해 안일하게 접근하는 인식 문제 등이 총체적으로 어우러진 결과가 이번 고인돌 훼손이라는 의견이 많다. 이번 일은 어떤 식으로든 넘어간다 해도 비슷한 일이 앞으로 김해시 아닌 어느 곳에서라도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창원대 사학과 남재우 교수는 “문화유산 관련 사업은 학예사의 눈을 한 번이라도 거치는 것이 이상적이고, 팀에 학예사가 있으면 한번 의논을 해보는 게 기본”이라며 “이번 사태는 팀 내 학예사와도 협업이 안된 소통 문제, 인력 부족, 순환하는 직책자의 업무 연속성 부족 등이 한꺼번에 맞물려 나타난 사태”라고 짚었다. 

구산동 고인돌은 상석의 크기도 거대하지만(350t) 박석 분포 면적(1615㎡)이 넓어 '최대’라는 수식어가 붙은 가야의 유적이다. 김해는 491년간 가야의 수도였다. 2042년은 가야 건국 2000년이 되는 해다. 김해시는 고인돌 정비 성과가 나오기도 전에 가야역사문화센터 건립 예산을 따내기도 했다. 그러다 정작 문화센터가 기리고자 하는 유력한 유적인 고인돌을 훼손하게 됐다. 성급한 실적주의가 우리의 과거를 망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