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열린 공개변론에서도 헌법소원 청구인 측은 "표현의 자유가 위축될 수 있다"며 폐지를 주장했고, 이해관계인인 법무부 측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국가보안법이 여전히 필요한 현실"이라고 강조했다.

유남석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국가보안법 2조 1항과, 7조 1항ㆍ5항 등에 관한 헌법소원·위헌법률심판제청사건 공개변론에 입장해 대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나치고 광범위한 처벌" vs "남북 대치 상황"
법무부 측은 최근 현직 장교가 북한 공작원 지령을 받아 군 전산망을 해킹하려다 붙잡힌 사건을 언급했다. 남북 대치 상황을 감안할 때 현실적으로 국가보안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최근 북한이 핵 무력 법제화를 선언한 점도 들었다.
이적표현물을 소지하는 행위는 마약을 지닌 것에 비유했다. 마약을 실제 사용은 하지 않고 갖고만 있어도 예방을 위해 처벌하듯, 이적표현물 역시 소지만으로도 처벌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적표현물이 만들어진 이유와 목적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전쟁과 같은 특수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급속하게 전파할 수 있는 이적표현물을 사전적으로 차단해야 한다는 취지다. 최근에는 e메일이나 클라우드에 이적 표현물을 보관한 사람이 ID와 비밀번호를 다수 공유하는 등 소지와 전파 사이 경계가 모호해졌다는 점도 들었다.
반면 청구인 측은 국가를 전복시킬 위험한 행동은 국가보안법이 아니어도 형법상 간첩죄로도 충분히 처벌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형법보다 처벌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질 수 있는 국가보안법을 그대로 둘 이유가 없다는 취지다. "한반도의 특수한 상황만으로 별도의 규정을 둔다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라고도 했다.
이들은 또 "남북 간 경제력과 군사력 차이가 엄청나다는 것은 객관적인 사실"이라며 "더는 체제 경쟁이라고 표현하기도 어려운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광범위한 처벌이 가능한 국가보안법을 남겨둬 국민 기본권이 침해되면 민주주의 정신 역시 훼손되고, 오히려 이것이 국가안보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라고도 했다.

유남석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국가보안법 2조 1항과, 7조 1항ㆍ5항 등에 관한 헌법소원·위헌법률심판제청사건 공개변론에 입장해 대기하고 있다. 뉴스1
"억울한 피해자 양산" vs "그때 그 시절 아냐"
청구인 측은 국가보안법의 역사도 짚었다.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치안유지법에서 시작된 법"이라며 "군사 정권 시절 악용돼 수많은 억울한 피해자를 낳았다"는 것이다. 수사기관이 예술 작품이나 발언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억울한 수사와 재판을 받는 일이 생긴 일을 예로 들었다.
이들은 "국가보안법이 목적으로 삼는 '민심 교란과 국론분열 사전방지'는 민주 사회에서 추구할 수 없는 입법 목적"이라고 강조했다. 민주 사회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보장하기 때문에, 특정 표현에 급박한 위험이 없다면 이를 형벌로 규제하기보다는 사상의 자유시장에서 토론과 숙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양심과 사상의 자유 역시 침해된다는 입장이다. 어떤 행동이 이적 행위를 찬양·선전·동조한 것인지, 어떤 마음을 갖고 이적표현물을 취득한 것인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결국 당사자의 평소 행적과 마음마저 수사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사람 마음의 의사까지 처벌하는 것은 양심을 형성할 자유와 실현할 자유를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법무부 측은 "과거 국가보안법이 남용된 기억으로 인해 우려가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면서도 "현시점에서는 법의 오남용이 통제될 수 있다"고 반박한다. 법원의 재판 과정에서 증거 채택이 엄격하게 이뤄지고, 공범이나 사건 관계자들을 증인으로 불러 이야기를 듣는 등 과거처럼 무고한 피해자가 생겨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근 10년간 국가보안법 제7조 위반으로 기소된 사건은 매년 10건 이내라는 점도 강조했다.
법무부는 이번 헌법소원을 청구한 이들도 형사 재판에서는 많은 공소사실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고 있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이적표현물을 소지하고 탈북민들에게 재입북을 종용한 혐의를 받은 A씨, 집회에서 '우리민족끼리 정신'에 대해 발언을 하거나 인터넷에 북한 동향 자료를 게시한 혐의를 받은 B씨, 블로그에 '김일성 주석이 남기신 업적'을 게재한 C씨 등이다. 법원은 이들의 표현 중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내용이 담겼다고 보기 어려운 부분이나 체제 전복 목적을 갖고 행동했다고 보기 어려운 부분 등은 무죄로 인정했다고 한다.
하지만 청구인 측은 "정말 오남용이 없느냐"고 되묻는다. "수사와 재판 대상이 돼 집요한 조사를 받는 과정 자체로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가 침해된다"는 것이다. 또 '누구나 수사대상이 될 수 있는 상황'이 자기 검열과 위축 효과를 불러온다고 강조했다.
"국제사회도 요구" vs "법적 구속력 없어"
청구인들은 유엔(UN) 자유권규약, 사회권규약 등 국제인권조약이 헌법재판규범으로 인정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보편적인 기준을 제시하는 기준인 만큼 헌재가 이 규범에 맞게 심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또 "국제 사회 역시 한반도의 남북대치 상황을 충분히 고려한 뒤에 국가보안법 폐지를 권고했다"고 덧붙였다. 가장 최근에는 유엔 진실정의 특별보고관이 국가보안법 제7조 폐지를 촉구했다.
하지만 법무부 측은 "유엔 자유권 규약이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 법규가 아닌 만큼 법적 구속력이 없다"고 반박했다. 과거 헌재 결정례를 들어, 국제 사회의 한 '견해'로 참고할 사안이라고 덧붙였다. 이른바 '반나치법'으로 불리는 독일 형법 86조도 언급했다. 위헌적인 정당이나 대체조직을 선전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표현물을 처벌하는 해외 사례도 있다는 취지다.

국가보안법 제7조 위헌 여부를 심리하는 헌법재판소 공개변론을 앞두고 폐지와 존치를 주장하는 단체가 각각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