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주택대출까지 중단…영국 경제, 일주일 만에 흔들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 EPA=연합뉴스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 EPA=연합뉴스

영국 경제가 대규모 감세 조치 발표 이후 불과 일주일 사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파운드 가치는 급락하고, 국채금리는 치솟았다. 국가 신용등급 마저 강등 위기다. 국채금리가 급등하자 시중은행들이 신규 주택담보대출을 중단하기 시작하며 실물 경제에도 영향을 주는 모습이다.

30일(이하 모두 현지시간) 국제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영국의 국가신용등급 전망을 기존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했다. 신용등급은 기존 AA로 유지했지만, 전망 평가가 내려간 만큼 이후 국가 신용등급 하향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커졌다. 신용 등급이 내려간다는 건 다른 나라에서 영국에 돈을 빌려줄 때 ‘추가 위험’을 각오해야 한다는 의미다. 영국 입장에서는 더 높은 이자를 줘야 돈을 빌릴 수 있어 재정 부담이 커진다.

금융강국 영국이 신용등급 강등 위기 상황까지 가는 데는 채 일주일이 걸리지 않았다. 발단은 23일 리즈 트러스 새 총리가 이끄는 영국 정부가 발표한 450억 파운드(약 69조원) 대규모 감세조치였다.

S&P는 “영국 신용등급 '부정적 전망' 결정은 영국 정부의 재정적자 계획과 추가 감세에 기인한 것”이라고 밝혔다. 당초 S&P는 2023년부터는 영국의 GDP대비 정부부채 비율이 감소할 것이라고 봤다. 하지만 이번 감세안이 나오자 영국정부의 일반 순부채가 계속 상승 궤적을 그릴 것이라고 전망을 반대 방향으로 수정했다. 구체적으로 S&P는 2025년까지 영국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이 2.6%p 확대될 것이라고 추산했다. 또, S&P는 "영국 경제가 대규모 재정적자를 동반한 이번 경기부양책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수분기에 걸쳐 침체될 것이라는 전망에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감세 발표 후 '공포의 일주일'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신용등급 전망 하향 조정에는 앞서 감세 조치 발표 이후 요동친 영국 금융시장에 대한 우려 영향도 컸다. 26일 파운드 당 달러 가치가 사상 최저인 1.03달러 수준까지 급락했다. 영국 5년 만기 국채 금리는 4.6%를 돌파하며 이탈리아와 그리스 국채보다도 싸졌다. 시장에서 감세 정책이 인플레이션을 부추기고, 재정적자를 키울 것이라는 부정적인 평가를 내린 결과다. 그러자 27일 국제통화기금(IMF)은 이례적으로 영국 정부를 향해 감세 및 보조금 지급 계획을 철회를 촉구하고 나섰다.


결국 영란은행(BOE)은 28일 금융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10월 14일까지 장기 국채를 하루 최대 50억 파운드씩 총 650억 파운드(약 101조 원) 사들이겠다는 긴급 대책을 발표했다. 정부가 채권을 매입해 가격 급락(금리 급등)을 막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반짝 효과에 그쳤다. 30일 파운드 당 달러 가치는 1.116달러로 소폭 회복했다. 그러나 영국 5년 만기 국채 금리는 여전히 4.4%대에서 거래되고 있다. BOE의 조치가 물가를 잡으려 금리를 올리고 있는 정책 기조와 반대된다는 지적과 함께, 되레 물가를 끌어올린다는 비관론이 확산되면서다. 결국 BOE가 물가를 잡기 위해 큰 폭의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할 것이란 전망이 국채 금리를 밀어 올리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급등한 국채 금리가 영국 기업과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개인들의 차입비용을 높이고 있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실물 경제까지 타격...잇따라 주담대 중지  

실제로 금융시장의 위기는 실물경제로 전이되는 모습이다. 1일 FT는 지난달 23일 영국 정부의 감세안 발표한 이후 영국 전역의 시중은행들이 회수하거나 중단한 주택담보대출 상품이 1688개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26일 영국 최대 모기지 공급자인 로이드뱅킹그룹을 시작으로 버진머니, 스킵턴빌딩소사이어티 등이 대출 상품을 철회했다. 27일에는 HSBC 등이 신규 대출을 중단시켰다.

국채 금리 급등이 모기지 금리 상승을 부추긴 탓이다. 치솟는 금리를 시장에 당장 반영하는 것이 쉽지 않은 만큼 시중은행이 대출 중단 결정을 내린 것이다. 여기에 금리가 향후 급등해 주택 수요가 줄면 주택가격에 하방 압력으로 작용해 담보 가치를 떨어뜨리고, 빚을 제대로 갚지 못하는 사람을 양산할 수 있다는 위험 회피 심리도 더해졌다.

한편, 이런 위기가 영국만의 문제는 아니란 지적도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의 시장전문 칼럼니스트 제임스 매킨토시는 "영국 사태는 확장재정+인플레이션 조합 속 채권 자경단(Bond vigilantes·당국의 잘못된 정책으로 금리 상승 가능성이 발생할 때 국채 대량 매도에 나서는 투자자)의 희생양"이라며 "영국은 '탄광 속 카나리아'로, 중앙은행의 긴축(기준금리 인상)과 정부의 경기부양책을 동시에 펼치려는 다른 선진국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