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 실질소득 3년새 3.5% 늘때...세금·연금 부담 21% 늘었다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 네거리에서 시민들이 출근길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뉴스1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 네거리에서 시민들이 출근길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뉴스1

공직에서 은퇴한 지 10년째인 정모(71)씨는 한 달 180만원 남짓인 연금이 소득의 전부다. 외환위기 때 빚보증을 잘못 섰던 탓에 별다른 자산도 없다. 그동안 자녀 건강보험에 피부양자로 올라있어 보험료 부담이 없었지만, 올해부턴 아니다. 피부양자 자격 기준이 연 소득 2000만원 아래로 바뀌면서다.

정씨는 “1년 동안은 80% 할인을 받아 1만원 정도인데 내년부턴 월 4만원씩 건강보험료를 내야 한다. 생활비에, 병원비에 이미 나가는 돈이 많고 물가도 올라서 이 정도도 부담이 된다”며 “병원 갈 일이 많은데 앞으로 보험료가 얼마나 더 오를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한 가구가 부담하는 세금과 공적연금ㆍ보험료가 최근 3년 사이 21% 늘어 월평균 60만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기간 소득 증가율 13%를 한참 앞선다. 29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올라있는 가계동향조사 세부 항목을 분석한 결과다. 

올해 3분기(7~9월) 가계는 각종 세금과 공적연금, 사회보험료로 한 달 평균 59만7962원을 지출했다. 1년 전보다 2.4% 증가하며 역대 최고액을 기록했다. 가계동향조사가 개편된 2019년 같은 분기(3분기) 49만2788원과 비교하면 21.3% 증가한 액수다.  

가계가 의무적으로 내야 하는 각종 세금과 연금ㆍ보험료는 올해 들어 월 60만원에 가까운 수준으로 늘었다. 이 중 세금 증가 폭이 두드러졌다. 올 3분기 월평균 28만7079원으로 2019년 대비 22.2% 증가했다. 소득세ㆍ재산세ㆍ자동차세처럼 일정 주기로 납부해야 하는 경상조세(직접세)와 양도소득세ㆍ상속증여세ㆍ취등록세 같이 불규칙적으로 나가는 비경상조세를 합한 액수다.


법률에 따라 의무적으로 납부해야 해서 준조세라고도 불리는 연금 기여금, 사회보험료 지출도 만만찮게 늘었다. 국민연금 납부액, 건강보험료 등을 말하는데 올 3분기 기준 월 31만883원을 기록했다. 최근 3년 사이 20.6% 늘었다.

이는 저출생 고령화와 맞물려 정부 지출이 빠른 속도로 늘면서 가계의 조세 부담도 따라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국민연금ㆍ건강보험 등 재정 ‘구멍’을 막기 위해 거둬들이는 돈도 빠르게 늘고 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하지만 가계 소득은 그만큼 늘지 않았다. 3분기 가계 소득(명목 기준)은 월평균 486만8667원으로 2019년 같은 기간 430만1979원과 견줘 13.2% 증가했다. 이마저도 물가가 오른 효과가 컸다. 물가 상승분을 뺀 3분기 가계 실질 소득은 447만6524원으로 3년 전보다 3.5% ‘찔끔’ 증가하는 데 그쳤다. 가계 주머니는 가벼워지는데, 의무적으로 내야 하는 세금ㆍ연금ㆍ보험료만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중이다. 

소득 수준별로도 부담에서 차이가 났다. 소득이 높을수록 세금ㆍ연금ㆍ보험 지출액이 당연히 많지만, 증가율로 따졌을 땐 소득 하위 20%인 1분위에서 가장 높게 나타났다. 2019년 3분기 7만1418원에서 올 3분기 10만192원으로 40.3% 늘었다. 이 기간 1분위 소득 증가율 21.2%를 한참 웃돈다. 이와 관련해 통계청 관계자는 “저소득층인 1분위는 가구주가 근로자인지, 비근로자인지에 따라 소득과 세금 등 지출 차이가 크게 난다. 이전에는 무직이다가 사회적 거리 두기 완화 이후 취업한 가구주 비중이 늘면서 세금 등 지출이 큰 폭으로 증가한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물론 다른 소득 계층에서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세금ㆍ연금ㆍ보험 지출 증가율이 소득 상승률을 앞서는 경향이 뚜렷했다. 최근 들어선 중산층의 부담이 두드러지게 늘고 있다. 소득 수준별로 5개 구간을 나눴을 때 한가운데 있는 3분위(소득 상위 40~60%) 가구는 올 3분기 세금과 공적연금ㆍ보험료로 월 45만4010원을 지출했다. 지난해 3분기 39만2428원에서 15.7% 급증했다. 같은 기간 소득 증가율(3분위 기준 2.6%)을 크게 앞선다. 이 기간 소득 1분위(하위 20%)·5분위(상위 20%)의 세금 등 지출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과 대비된다. 

지난 8월 서울 국민건강보험공단 종로지사에 설치된 건강보험 정부지원법 개정 관련 배너. 연합뉴스

지난 8월 서울 국민건강보험공단 종로지사에 설치된 건강보험 정부지원법 개정 관련 배너. 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회복 과정에서 각종 조세 감면 혜택은 저소득층에 집중되고, 고소득층 세 부담은 상대적으로 줄고 있는 반면 중산층 중심으로 체감 세 부담 크게 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세금과 연금 납입액, 사회보험료는 한 번 오르기 시작하면 다시 내리지 않는 경향이 강하다. 개인 입장에서는 높은 물가와 금리에 가계 살림은 어려워지고 있는데 의무적으로 국가에 낼 돈만 빠르게 늘고 있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인플레이션(고물가)으로 같은 소득이라도 구매력이 떨어지면서 가계 손해가 커지는 상황”이라면서 “이런 가운데 각종 세금이나 공적보험료는 명목 소득(물가 반영)에 비례해 오르다 보니 가계 어려움이 더 가중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양 교수는 이어 “국가재정과 건보ㆍ연금재정이 더 부실화되기 전 미리 개혁을 해야 했는데 선거 등을 이유로 미루기만 하다가 막판에야 이런 상황을 불러왔다”며 “고금리ㆍ고물가 위기와 맞물려 가계 부실을 오히려 부추기는 요인”이라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