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예능 붐이 말하는 것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중 최고 히트작은 지난 10월 종영한 티빙의 ‘환승연애2’다. 역대 티빙 콘텐트 중 주간 시청 UV(일평균 순 시청자 수) 1위, 16주 연속 유료가입자 기여도 1위 기록을 세웠다. 마지막 회는 티빙 이용자의 90% 이상이 봤고, 단체관람 신청도 1만 명을 넘겼다. 성해은 등 주요 출연자들의 인스타그램 팔로어 수는 현재 70만에서 100만에 달한다. 누가 커플이 될지 맞춰보고 응원하는 재미, 청년이 연애하지 않는 ‘비연애 시대’의 대리체험, 외모 등 매력자본을 갖춘 인플루언서에 대한 선망 등이 인기 요인이다. 상대적으로 낮은 제작비에 SNS 화제성을 담보해 고효율 장르로도 꼽힌다.
올해만 20여개, 과도한 설정 눈총
청년의 66% “비연애 상태” 응답
실제 연애는 부담스럽다고 여겨
남의 연애서 대리만족 경향 높아
방송사의 철저한 사전 검증 미비
출연자 둘러싼 논란·비판 잇따라
청년의 66% “비연애 상태” 응답
실제 연애는 부담스럽다고 여겨
남의 연애서 대리만족 경향 높아
방송사의 철저한 사전 검증 미비
출연자 둘러싼 논란·비판 잇따라

‘환승연애2’(티빙)
선정성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큰데, 방송 내내 여자는 비키니 차림, 남자는 상의 탈의로 나오는 ‘핫샷’(넷플릭스)이나 상대의 벗은 몸을 보고 파트너를 결정하는 ‘네이키드 어트랙션’(영국 채널4) 같은 해외 프로그램에 비하면 약과라는 지적도 많다. 실제 한국 연애 예능은 “섹스 어필보다 심리 변화를 자세히 포착”(문화평론가 정덕현)하는 게 특징이고, 시청자도 이에 주목한다. 스킨십이나 노출이 흥행 보증 수표는 아니라는 얘기다.
# 연애 예능의 역사, 사랑의 조건

TV 데이팅 프로그램의 원조인 MBC ‘사랑의 스튜디오’

SBS ‘짝’.
2021년 넷플릭스 ‘솔로지옥’은 ‘한국판 핫샷’을 표방하며 프로그램의 수위를 한껏 끌어올렸다. 헬스 트레이너·댄서·모델 등 ‘핫 바디’들이 맹활약했다. ‘영 앤 리치’의 표본인 프리지아가 선망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연애 예능의 사회실험?

‘나는 솔로’(ENA플레이)
한마디로 현실에서 접하는 다양한 인간군을 한자리에 모은 설정인데, 비교적 균질한 집단끼리 안정적인 커플 매칭을 이끌기보다 편차가 나는 이질적인 출연자 사이에 호감도의 빈부 격차와 치열한 경쟁을 극대화하는 데 방점을 찍은 것이다. 이는 재미 요소가 될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처음부터 실패가 예정된 게임이라는 문제가 있다.
또 이 과정에서 종종 악역이나 밉상·비호감을 담당하는 ‘빌런(악당)’이 등장하고, 과몰입한 시청자들이 악플 세례등 과잉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나는 솔로’에 대해서는 “날 것의 재미가 있다”는 평과 함께 “데이팅 프로그램이 아니라 인간극장을 찍고 있다” “출연자 조합을 통해 사회실험을 한다”는 시청자 반응이 나오는데, 자칫 프로그램의 윤리 문제로 이어질 수도 있다.
#비연애 시대, 남의 연애 들여다보기
연애 리얼리티의 인기는, 청년들이 연애하지 않는 비연애 시대의 흥미로운 초상이기도 하다. 인구보건복지협회가 지난 9월 발표한 ‘2022년 제1차 저출산 인식조사’(만 19~34세 비혼 청년 대상)에 따르면, 응답자의 66%가 비연애 상태였다. 이 중 70%는 ‘자발적 비연애’ 상태로, 자발적 비연애 비중은 남성(61%)보다 여성(83%)이 높았다. 비연애 청년의 48%는 현재 상태에 만족했고, 절반 이상(53%)은 앞으로 딱히 누구를 만날 생각이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아예 연애 경험이 없는 모태솔로도 총 응답자의 3분의 1(29%)에 달했다.
전문가들은 연애가 더는 안전하지 않다는 불안감, 전통적 성 역할에 대한 거부감, 깊어진 젠더 갈등 등을 비연애의 이유로 꼽는다. 단순화하자면 여성은 데이트 폭력이나 불법 촬영이 두려워서, 남성은 옛날처럼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했다가는 스토커가 되기 십상이니 연애가 녹록지 않다는 얘기다. 이처럼 연애를 안 하거나 못하는 현실에서 남들의 연애를 구경하는 안전한 방식으로, 연애와 사랑에 대한 갈망과 욕구를 대리 충족하는 것이 연애 리얼리티 붐의 이유다.
#인플루언서와 연애 예능

‘돌싱글즈’(MBN)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출연자들에 대한 가십과 소문이 재생산된다. 쉽게 오른 인플루언서의 자리인 만큼 대중의 먹잇감으로 전락하는 것도 일순간이다. 과몰입한 시청자들은 쉽게 악플 테러를 하고 유튜브에는 심리분석이라는 이름으로 인신공격성 비난을 해대는 콘텐트가 쏟아진다.
방송사의 사전 검증 미비로 출연자 리스크를 키운 경우도 적잖다. ‘돌싱글즈3’ 여성 출연자는 불륜설과 거짓말 논란에 휩싸였고, ‘나는 솔로’ 10기의 한 출연자는 짝퉁을 착용하고 재력을 부풀렸다며 샅샅이 털어대는 계정까지 등장했다. 제작진이 철저한 사전 검증으로 문제 소지를 없애고, 출연자 보호 장치를 적극적으로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플루언서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 인플루언서를 소비하는 사람들의 문화가 연애 예능이라는 포장지를 두르고 소비되고 있다. 시즌이 거듭될수록 성공 사례가 쌓인다. 각종 논란에도 불구하고 출연을 원하는 이들은 끊임없이 등장할 것이다.” 『아무튼, 예능』의 저자 복길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