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소프라노 레즈네바 “본능에 귀 기울이면 고음악이 들립니다”

3, 4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베니스 바로크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러시아 소프라노 율리아 레즈네바. 사진 한화클래식

3, 4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베니스 바로크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러시아 소프라노 율리아 레즈네바. 사진 한화클래식

 
“한국은 고향과 지리적으로 가까워 애착이 갑니다. 올 때마다 아름다운 자연에 놀라죠. 만나는 사람들마다 진실된 모습에 사랑할 수밖에 없는 나라입니다. 얼마 전 통영에서 연주할 때 왠지 모르게 마음이 벅차올랐어요. 통영의 바람, 바닷가 모래나 돌 냄새는 어린 시절 고향의 추억을 떠올리게 했죠.”

 
2일 서울 중구에서 기자들과 만난 러시아 소프라노 율리아 레즈네바(33)의 말이다. 3일과 4일 오후 5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한화클래식 열 번째 무대에서 베니스 바로크 오케스트라와 협연한다.

사할린에서 태어나 모스크바에서 공부한 레즈네바는 2007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엘레나 오브라초바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주목받았다. 바흐 B단조 미사와 비발디 오페라 ‘빌라의 오토네’ 등의 음반에 참가했던 레즈네바는 2011년 로시니의 오페라 아리아만으로 첫 솔로앨범(나이브)을 발매해 반향을 일으켰다, 이후 메이저 음반사 데카와 계약해 ‘알렐루야’, ‘헨델’, ‘그라운’ 등 독집 앨범을 발매하면서 2010년대 이후 고음악/원전연주를 대표하는 소프라노로 자리매김했다.

레즈네바의 장기는 현란한 콜로라투라다. 특유의 연마된 테크닉으로 구사하는 트릴, 스타카토는 그녀의 지적인 성격과 어우러지며 생동감 넘치는 음악의 묘미를 전달한다.

이번 양일간 연주회에서 레즈네바는 헨델과 비발디를 중심으로 포르포라, 그라운 등의 바로크 오페라 아리아들을 소화한다. 프로그램에 대해 레즈네바는 “개인적으로 애착이 많고 좋아하는 곡들이다. 각각의 아리아들이 저마다 특별한 의미를 띠고 있어서 애정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러시아 소프라노 레즈네바는 고음악/원전연주를 대표하는 소프라노로 꼽힌다. 사진 한화클래식

러시아 소프라노 레즈네바는 고음악/원전연주를 대표하는 소프라노로 꼽힌다. 사진 한화클래식

 
함께 무대에 서는 베니스 바로크 오케스트라는 일 자르디노 아르모니코, 에우로파 갈란테 등과 더불어 이탈리아 바로크를 대표하는 앙상블이다. 10년 전 처음 협연했다는 레즈네바는 “다른 소프라노의 대타로 도르트문트에 도착 후 바로 리허설과 공연을 마쳤다. 친절과 배려에 함께 공연하고 싶었다. 이후 베니스에서 다시 만나 두 달 전, 가장 최근에는 2주 전에 공연했다. 마치 평생 호흡을 같이 맞춰왔던 것처럼 많은 것이 통하는 단체”라고 했다.

레즈네바는 나이브 레이블에서 마르크 민코프스키와 데카 레이블에서 조반니 안토니니와 다수의 음반들을 녹음해 고음악 애호가들로부터 사랑받았다. 음반 녹음에 대해 “모든 것을 쏟아 부어야 하기 때문에 민감하고 어려운 작업이지만 끝나고 나면 성과가 두드러져 뿌듯하다”며 데카에서의 데뷔음반 ‘알렐루야’를 개인적으로 가장 특별한 한장으로 꼽았다. “조반니 안토니니와 함께 포르포라의 아리아를 세계 초연해서 의미 깊었죠. 앨범 작업을 할 때 어떻게 해석할지 원전연주를 어디까지 적용할지 늘 고민합니다. 다음 앨범에서도 이런 노력들이 빛을 발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시대악기 연주와 현대악기 연주에 참여할 때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일까. 레즈네바는 음정에 있다고 말했다. “현대악기 연주에서는 진동수가 A=440Hz를 유지하지만 시대악기 연주에서는 A=415Hz까지 떨어진다”는 설명이다. 원전연주에서는 따뜻하고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악기들의 유연하면서도 섬세하고 여린 소리를 잘 들으면서 노래해야 한다고 말한 레즈네바는 “시대악기와 연주할 때는 적절한 에너지로 절제해야 하는 반면 현대악기와 협연할 땐 공격적인 에너지로 파워풀하게 뭔가를 덧붙여야 한다”고 차이를 말했다.

바로크/원전연주는 한 번 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는 매력을 가졌다. 그럼에도 클래식 청중들 중 열광하는 사람들은 아직 소수인 장르다. 레즈네바는 바로크 음악과 재즈를 비교하며 그 매력을 이야기했다.

“바로크 음악과 재즈는 기본적으로 견고한 구조와 베이스 위에 연주자의 자유로운 연주와 감정을 담아낸다는 점에서 비슷해요. 작곡가가 꾸밈음이나 즉흥연주 등 변화를 주는 걸 일임했기 때문에 연주자가 자유로운 점도 그렇죠. 같은 곡을 여러 번 불렀어도 무대에 설 때마다 새로워요. 같은 곡을 공연해도 독일 악단과 프랑스 악단, 이탈리아 악단이 조금씩 다르죠.”

 
레즈네바는 좋아하는 작곡가가 너무 많아서 힘들지만 바흐와 포르포라가 마음 속에 자리하고 있다고 했다. “선생님이 바흐 건반악기곡 CD를 추천해주셨는데 거기 들어있던 성악곡의 아름다움에 빠져서 고음악/바로크를 시작하게 됐어요. 포르포라 곡을 노래할 때 선율이 레이스처럼 펼쳐진 아름다운 멜로디에 매료됐죠. 악보대로만 표현하면 단순해서, 세심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합니다.”

목소리를 유지하고 보호하는 방법은 모든 성악가에게 궁금한 점이기도 하다. 레즈네바는 습도에 민감하고 음식도 신경을 쓴다고 했다. 레즈네바는 “내 모든 생활이 목의 건강에 집중돼 있다. 비행기를 탔을 때, 추운 날씨의 히터 때문에 목이 건조해지거나 매운 음식을 먹고 싶지만 목 때문에 자제해야 한다”고 고충을 말했다.

일고여덟 살 때까지 사할린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레즈네바는 그때 그곳을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행복한 유년시절의 장소"라고 했다. 한인들이 많아 일찌감치 한국 문화를 접한 곳이기도 했다.

“시장에 가면 90%가 한인들이었고 한국음식을 요리해 먹었어요. 생선으로 국을 끓일 때 대가리를 넣어 끓였던 게 인상적이었죠. 추운 날에도 물에 들어가고 밖에 나가 놀려고 해서 부모님이 말렸던 그런 왈가닥이었습니다.”

전쟁 상황인 조국 러시아 이야기를 할 때 레즈네바의 눈시울이 촉촉해졌다. 유럽에서 공연을 계속하느라 집에 간 지도 오래 됐지만, 부모님과 가족들이 러시아에서 건강하게 살고 있어서 다행이라며 빨리 상황이 나아지기를 바란다고 했다.

“언어도 시대도 다르기 때문에 바로크/고음악을 한 번에 이해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들어보시면 본능적으로 가슴을 울리는 음악이죠. 언젠가 많은 이들의 마음을 건드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제 느낌, 제 생각과 모든 것들을 음악으로 나눌 때마다 순간순간이 귀중하게 느껴져요. 한국의 관객들과 만나는 일이 계속됐으면 합니다.”

류태형 객원기자・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ryu.taehyu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