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공행진하던 CP 금리 상승세 일단 멈춤…채권시장 해빙 모드?

기업어음(CP) 금리 상승세가 지난 1일부터 5.54%에서 멈췄다. pixabay

기업어음(CP) 금리 상승세가 지난 1일부터 5.54%에서 멈췄다. pixabay

얼어붙었던 자금 시장에 해빙의 기미가 보이고 있다. 지난달까지 연일 연중 최고치를 경신했던 기업어음(CP) 금리 상승세가 지난 1일부터 일단 멈췄다. CP는 통상 3개월 만기로 자금을 빌리는 단기 채권이다. 지난 10월 초 레고랜드 사태 이후 CP 금리가 가파르게 오르며 기업은 단기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자금 시장의 '돈맥경화'가 풀릴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지난 1일부터 CP 금리 나흘째 5.54%에서 멈춤 

6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이날 CP 금리(91일물)는 연 5.54%로 지난 1일부터 나흘째 같은 금리를 유지 중이다. CP 금리는 지난해 8월25일(0.97%)부터 서서히 올랐지만, 상승세가 가팔라진 것은 강원도가 레고랜드 관련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의 채무불이행을 선언한 뒤부터다. 지난 10월1일부터 이날까지 CP 금리는 2.23%포인트 뛰었다.

CP 금리 상승에 제동이 걸리자 시장에서는 당장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이화진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6% 후반대에서 거래되던 PF ABCP와 증권사 CP(A1 등급) 금리가 이달 초부터 5~6% 초반대로 하락하는 모습”이라며 “공사채·은행채 중심으로 시작된 온기가 채권시장 전체로 퍼져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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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 반전은 한전채…카드채도 민평 금리 아래서 거래 

채권시장의 분위기 반전을 이끈 건 역설적이게도 한국전력 채권(한전채)이다. 한전채는 최근 두 달간 초우량 신용등급(AAA)에도 이보다 등급이 낮은 회사채보다 높은 금리를 제시하면서 채권시장 교란의 주범으로 꼽혔다. 하지만 한전이 은행 등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등 채권 발행 물량을 조절하고, 정부가 유동성 공급 대책을 내놓으며 시장의 흐름이 달라진 것이다. 


그 결과 지난달 28일 한전은 민간 채권평가사들이 매긴 평균 금리(민평금리)보다 0.05%포인트 낮은 금리에 채권을 발행하면서 시장에 온기를 불어넣었다. 이후 지난 1일 한국도로공사가 민평 금리보다 0.084%포인트 낮게 채권 발행에 성공했다. 지난 4일에는 삼성카드·KB카드 등 AA+급 카드사 채권(여전채)도 민평 금리보다 낮은 금리에 거래됐다.

조용구 신영증권 연구원은 “신용등급이 우량한 채권 위주로 민평 금리 아래에서 발행·유통되는 일이 많아졌고 일부 여전사 채권 단기물도 민평 금리 아래에서 거래되는 모습을 보인다는 점에서 채권시장 회복 시그널을 찾을 수 있다”고 전했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경기·금융 불안정 우려에 기준금리 인상 속도 조절” 

전문가들은 채권시장에 온기가 퍼진 데는 ‘나쁜 것이 좋은 것이다(Bad is Good)’는 논리가 작용했다고 풀이한다. 내년부터 예상되는 경기 침체나 금융 불안정 등으로 인해 주요국 중앙은행이 긴축 감속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면서 채권금리를 낮췄다는 의미다. 

정대호 KB증권 연구원은 “한국은행 내부와 정부 당국, 시장에도 금융 불안정을 이유로 한 기준금리 속도조절론이 나온다”며 “기준금리가 정점에 이를수록 단기채·우량채의 매력이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조용구 연구원도 “경기 둔화를 고려하면 시장금리 안정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여기에 정부가 지난 10월부터 기업 자금난 해소를 위해 채권시장 유동성 공급 대책을 잇달아 내놓고, 한전 등 공기업의 채권 발행을 자제토록 한 것도 채권금리 하락에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다.

“부동산 PF 부실, 건설사 자금난 잠복…낙관은 일러”

다만 몇 가지 신호만으로 채권시장 안정을 낙관하기엔 이르다는 지적도 있다. 부동산 시장 침체에 따른 PF 관련 채권 부도나 건설업계 자금난 심화 가능성이 온기가 돌기 시작한 채권시장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어서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10월 설문에 응한 40개 건설사의 사업장 233곳 중 13.3%(31곳)가 공사가 늦어지거나 중단된 것으로 나타났다.

정대호 연구원은 “지난달 14일 이후 만기도래한 PF ABCP 중 차환 발행에 실패한 비율은 11.5%로 추정한다”며 “부동산 금융을 둘러싼 금융권과 건설사의 사업 위험은 이전보다 매우 클 것”이라고 관측했다.

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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