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셔터스톡
우리만 해도 불고기와 꽃등심, 일본은 와규, 미국은 스테이크 등이 유명하다. 반면 중국은 국내외적으로 널리 알려진 것이 기껏 소고기 국수인 란주 라면(蘭州 拉面)과 대만 우육면(牛肉麵) 정도다. 그나마 유명세를 탄 것도 최근 몇 십 년에 지나지 않는다.
미식의 나라라는 곳에서 맛있다고 소문난 소고기 음식이 겨우(?) 우육면이라는 것도 이상하지만 그 유래와 중국의 소고기 역사도 뜻밖이다. 생각지 못했던 중국의 모습이 담겨 있다.
먼저 우육면 내력이다. 우육면은 보통 란주 라면에서 비롯된 것으로 본다. 이 국수, 200년 전쯤의 청나라 때 처음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실제 퍼진 것은 20세기 초반이다. 한 회족 청년이 깐수성 란주에서 소고기 국물에 국수를 말아 팔면서부터다. 현지에서는 맛있다고 소문났지만 처음에는 교통이 불편해서, 이후는 공산화로 거주이동의 자유가 제한돼 개혁개방 이전까지는 전국적으로 퍼지지 못했다.
어쨌든 우육면이 호평을 받은 비결로는 보통 소고기 육수와 고명으로 얹은 소고기 편육을 꼽지만 초창기에는 오히려 면발로 더 유명했다. 중국어로 라(拉)로 발음되는 늘인다는 뜻의 라면, 즉 수타면이 맛의 핵심이었다. 이전의 다른 국수와 달리 밀가루에 소금과 소다를 섞어 반죽해 길게 늘어나는 수타면이 청나라 때 처음 나왔고 면발의 점성이 높아져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하고 탄력이 있어 맛이 남달랐기 때문이다.
덧붙이면 당시 이런 국수가 얼마나 특색 있었는지 이후 일본에 전해져 라멘(ラーメン), 우리 라면의 어원이 됐다는 주장도 있다. 각설하고 이후 수타면이 일반화되면서 지금은 우육면의 특색을 면발이 아닌 소고기 육수에서 찾지만 초창기 소고기 국물은 고육지책(?)의 산물이었다.
회교 전통의 회족을 상대로 국수를 팔았던 만큼 중국에서 대중적인 돼지고기 육수 대신 소고기로 육수를 냈던 것이다. 대만의 우육면도 뿌리가 같다. 국공내전이 끝난 후 대만에 피난 온 사천성 출신 노병들이 생계를 잇기 위해 고향의 명물국수, 우육면을 만들어 팔았는데 이 국수 역시 감숙성과의 경계에 살았던 회족으로부터 유래했다.
이렇듯 그나마 알려진 우육면조차도 회족의 음식이니 소고기 요리 중 전통 한족의 음식은 정말 찾아보기 쉽지 않다. 중국에는 왜 유명한 소고기 요리가 없을까? 가장 큰 이유는 다수의 중국인, 다시 말해 한족이 소고기를 즐겨먹지 않기 때문이다. 통계를 봐도 중국 도시의 육류소비 비율은 돼지고기가 56%, 닭과 오리고기가 24%인 반면 소고기는 6%다.
맛있는 소고기가 왜 이렇게 환영을 받지 못할까 싶은데 일단 배경으로 역사적 요인을 꼽기도 한다. 소는 옛날부터 농사와 노동에 절대 필요한 가축이고 전시 전략물자였다. 때문에 동서양을 막론하고 도축에 대한 통제가 심했는데 중국도 예외가 아니다.
고대부터 청나라까지 소를 함부로 잡으면 극형에 처했다. 진과 한 시대는 사형, 당과 송은 곤장 20대와 강제노동 3년, 명과 청은 곤장 100대를 때렸으니 소 잡아먹다 자칫 죽을 만큼 맞았다.
그러면 법이 엄하다고 안 먹었을까? 물론 아니다. 예컨대 당나라 시인 두보는 소고기를 과식해 사망했다. 호남성 호수의 섬에 있는 악묘(嶽廟)를 구경갔다 폭우가 쏟아져 섬에 고립됐다. 며칠을 굶다 소식을 들은 현감이 보내준 술과 소고기를 먹고는 체했는지 세상을 떴다. 『당서(唐書)』의 기록이다.
송나라 형법인 『형통(刑統)』의 판례에는 별 희한한 기록이 다 있다. 소 혀를 자르거나 꼬리를 잘라 먹고 잡혔다는 내용이다. 소를 죽이지는 않았으니 극형은 면했는데 혀와 꼬리가 잘린 소는 결국 죽었고 그러면 마음 놓고 먹었다고 한다. 그악스럽게 먹은 것 같지만 예외적 사례일 뿐 역사적으로 소 식용은 제한적이었다.
현실적으로도 소고기는 별 인기가 없었다. 일단 화북지방은 소 사육 환경이 아니다. 황토지역이라 초지도 부족하지만 그나마 소가 아닌 양이 먹는 풀이 자란다. 게다가 밀농사 지역이니 사료 만들기도 쉽지 않다. 사육 숫자가 절대적으로 적으니 웬만하면 소고기를 먹지 않았다. 반대로 화동과 화남은 물소를 키우는데 고기가 맛이 없으니 이래저래 소고기를 먹을 지리적, 물리적 환경이 아니었다. 소고기 요리가 기껏 우육면에 그친 한 이유일 것이다.
반면 우리는 사료로 먹일 볏짚도 풍부한데다 밭두렁에는 소 먹일 꼴이 천지였다. 이렇게 소 사육에 좋은 환경이었으니 조선시대에는 소 금살령을 만들었어도 임금부터 농부까지 열심히 소고기를 먹었다. 우리나라에서 소고기가 유독 발달한 배경이다.
일각에서는 중국의 소득수준이 더 높아지고 소고기 맛에 눈을 뜨면 지구촌 소고기 값이 폭등할 것 같다고 우려하는데 중국의 소고기 역사와 문화를 보면 그런 일이 쉽게 일어날 것 같지는 않다.
윤덕노 음식문화저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