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기준, 중국은 한국의 최대 화장품 수출국으로 5년 사이 수출액이 52.4%나 늘었다. 한국을 방문한 중국인들의 면세품엔 우리나라 화장품이 가득했다. 면세점엔 한국 화장품을 대리 구매해 주는 중국인 보따리상(따이궁·代工)이 항상 즐비해 있었다. 중국 백화점에서도 불티나게 팔리는 게 외제, 특히 한국 화장품이었다. 한국 제품의 모조품을 만드는 것은 기본, 로고까지 비슷하게 만들어 판매해 내는 중국이었다. 한국의 아모레퍼시픽이나 LG생활건강은 중국인의 K-뷰티 사랑에, 한때 중국 시장에 화력을 집중했다.

롯데면세점 명동 본점 안에 장사진 친 중국인 따이공(보따리상).2019.0215. 뉴스1
중국 시장조사기업 아이미디어(iiMedia Research)에 따르면 2020년 중국 화장품 시장에서 중국 브랜드 시장 점유율은 46.3%에 달한다. 2020년 중국 기초화장품 시장점유율 순위 TOP 20안에 바이췌링(百雀羚), 즈란탕(自然堂), 보라이야(珀萊雅) 등 8개 중국 브랜드가 랭크됐다.
색조화장품 시장에선 중국 로컬 브랜드가 강세를 보였다. 2021년 기준 중국 브랜드 화시쯔(花西子), 퍼펙트 다이어리가 각각 2위, 5위를 차지했다. 카즈란(卡姿蘭), 치우천(稚優泉), 즈시(滋色·ZEESEA), COLORKEY 등도 TOP 20에 속했다. 이들 성장세를 견인한 건 중국 화장품 소비 주축인 MZ 세대들이다. 애국 소비를 앞세워 로컬 기업 제품 소비에 앞장서고 있기 때문이다.
그중 두각을 나타내는 기업은 상메이그룹(上美集團·CHICMAX·02145.hk)이다. 2021년 연간 소매 매출이 15억 위안을 넘기며 2개 이상의 스킨케어 브랜드를 보유한 유일한 중국 화장품 기업이다.

사진 상메이그룹
상메이그룹의 이번 상장은 무려 5년 만에 이뤄진 결과다. 2018년 상장 계획을 발표했지만 실패를 맛봤다. 이후 2021년 2월 CITIC와 상장 안내 계약서를 발표하며 A주 상장 절차를 준비했다. 본격적으로 홍콩증권거래소에 투자설명서를 제출한 건 지난해 3월. 재수 끝에 본격적으로 시장에 입성한 상메이그룹이다.
화장품에 대해서는 엄격한 중국인데, 상메이그룹은 어떻게 이런 성과를 낼 수 있었을까.
스킨케어부터 ‘탈모’까지 가리지 않고 제품 출시
中 대표 ‘화장품 왕국’ 꿈꾸는 상메이그룹
2003년 출범한 한수는 안티에이징 스킨케어 제품을 주력 상품으로 내세우며 25~40세 여성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2020년 기준 한수의 매출액(소매판매액 기준)은 29억 위안(5430억 8300만 원)이다.

2010년 한류 스타 최지우를 광고 모델로 앞세운 한수. 상메이그룹
또 다른 브랜드 아스나미(asnami)와 바이오지(BIO-G)는 스킨케어 솔루션 브랜드, 지팡(極方)은 헤어 및 모발 케어 브랜드다.
이처럼 상메이그룹은 회사 브랜드를 통해 스킨케어, 색조 화장품, 클렌징 제품, 베이비 케어 제품 등 여러 제품을 선보였다. 약 20여년간 아동, 여성, 성인 남성 등 다양한 대상을 타깃으로 제품 라인을 확대해왔다. 동시에 헬스 앤 뷰티 스토어, 백화점, 온라인 스토어, SNS마켓 등 판매 채널 역시 다방면으로 확보하며 제품 홍보에 힘써왔다.
저퀄리티 이미지 탈피…‘홈쇼핑’으로 3·4선 도시 ‘올킬’

상메이그룹의 안티에이징 스킨케어 브랜드 한수(韓束·KANS). 상메이그룹
한수는 중저가 상품으로 소도시 중심의 ‘직접 판매’에서부터 시작했다. 틈새시장을 잘 공략한 덕분에 한수는 2002~2005년 억대 매출을 이어올 수 있었다. 몸집을 키운 한수는 대도시를 공략하기 위해 백화점, 오프라인 헬스 앤 뷰티 스토어 등 유통 채널 확보에 나섰다.
그러나 소규모 브랜드였던 한수의 인지도는 1·2선 도시에서 여전히 낮았다.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고민하던 한수는 2008년부터 TV 홈쇼핑으로 손을 뻗었다. 생각보다 긍정적인 반응에 한수는 오프라인 가게보다 홈쇼핑을 주요 판매 채널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관련 통계에 따르면 한수는 2010년 TV 홈쇼핑 업계에서 화장품 매출 1위를 달성했다. 홈쇼핑을 통해 인지도를 높이는 데 성공한 한수는 타오바오 등 온라인 쇼핑 플랫폼으로 무사히 진출할 수 있었다.

化?品財經在線/360百科
‘마케팅의 귀재’, 위챗 등 SNS 마케팅도 활발
이처럼 위챗을 활용한 소셜커머스를 통해 중국 전역으로 시장 확대를 할 수 있었으나 ‘상당한 수준의 국내 뷰티 브랜드’로 눈도장을 찍을 수 있었던 데에는 소도시에서의 홈쇼핑 마케팅이 주효했다.
이후 이예쯔와 훙써샤오샹 등 브랜드를 선보이며 제품 라인도 확대해나갔다. 이어 각 브랜드 타깃에 맞는 홍보 활동도 적극적으로 펼치며 ‘믿을만한 국내 토종 뷰티 브랜드’의 입지를 다지기 시작했다.

網易/Jing Daily
코로나19 팬데믹 상황 속에서도 빛을 발했다. 2019년 이후 오프라인 매장 매출이 급감하자 온라인 시장으로 눈을 돌린 상메이그룹은 더우인(抖音), 콰이서우(快手) 등 숏폼 동영상 플랫폼에서 라이브 커머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특히 다른 뷰티 대기업보다 가장 먼저 라이브 커머스를 시작해, 한때 뷰티 업계 중 라이브 커머스 최고 매출액을 기록하며 업계 이목을 끌기도 했다.
이번에도 상메이의 마케팅이 제대로 먹혔다. 2021년 1~11월 더우인 내 한수의 총 상품 판매액은 약 8억 2000만 위안(1536억 5160만 원)이다. 더우인 판매액 기준 TOP10에 속하는 수준이다. 여느 기업보다 발 빠르게 리자치(薇婭), 웨이야(李佳琦) 등 업계 최고 인플루언서와 손잡고 라이브 커머스를 시행한 결과였다.
거침없는 광고비 투자 이면에 숨겨진 ‘불안’, 왜?

사진 상메이그룹
중국 토종 경쟁사들의 잇따른 증시 상장도 상메이그룹의 불안감을 높이는 요소 중 하나다. 상메이그룹과 함께 2020년을 뜨겁게 달군 중국 토종 뷰티 브랜드 프로야(PROYA·珀萊雅, 2006년 설립), 마루비(MARUBI·汍美股份, 2019년 설립), 라팡(Lafang·拉芳傢化, 2004년 설립) 등은 이미 중국 본토 증시에 안착했다. 상메이그룹이 2018년 증시 입성에서 미끄러진 후 2022년 재도전한 것과는 대조되는 행보다.
‘하이엔드 브랜드’로의 전환도 쉽지 않아 보인다. ‘한수’로 대표되는 상메이그룹은 지난 수년간 소비자들 사이에서 ‘위챗커머스 브랜드’로 자리매김해왔다. 이는 샤오훙수(小紅書)나 더우인에서 흥행한 퍼펙트 다이어리(完美日記)나 화시쯔(花西子)의 브랜드 가치보다 훨씬 더 낮은 수준이다.
최근 중국 소비자 사이에선 효능을 앞세운 고급 화장품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소비자의 가격 민감도가 낮아졌다는 뜻이다. 이는 그동안 가성비로 승부수를 띄웠던 상메이그룹 산하 브랜드의 마케팅이 먹히지 않을 것이란 의미이기도 하다.
‘가성비’보다는 ‘가심비’가 통하게 된 중국 시장에서 상메이그룹이 과연 활로를 마련할 수 있을까. 그 귀추가 주목된다.
김은수 차이나랩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