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의 아내이자 평생의 문학 동지로, 이 전 장관 1주기를 맞아 주일 한국문화원에서 열린 ‘이어령과 축소지향의 일본인’ 특별전시회 개막식 참석을 위해 일본을 찾은 강 관장을 만났다.

지난 24일 일본 도쿄 주일 한국문화원에서 열린 이어령 1주기 특별전 '이어령과 축소지향의 일본인'에 참석한 부인 강인숙 영인문학관장이 인삿말을 하고 있다. 사진 주일 한국문화원
그런데도 거동이 불편한 강 관장이 기꺼이 집 밖을 나선 건 순전히 전시회 때문이었다.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에 대한 기억이 하루에 천 리씩 간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일 년이면 얼마나 먼 거리를 갔을까요. 그런데도 이 먼 곳에서 기억해주시니 감사하지요.”
이 전 장관은 1981년부터 1년간 도쿄대 객원연구원으로 지내며 분재와 도시락, 쥘부채 등 문화적 측면에서 일본을 분석한 『축소지향의 일본인』(1982년)을 냈다. 이 책은 당시 일본 NHK가 정규 뉴스 시간에 15분을 들여 보도할 정도로 큰 화제를 모았다. 이후 이 전 장관의 책들은 일본어로도 속속 번역돼 일본에서도 많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지난 24일 일본 도쿄 주일 한국문화원에서 열린 이어령 1주기 특별전 '이어령과 축소지향의 일본인'에 전시된 고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의 서적. 사진 주일 한국문화원
살을 맞대고 살아온 강 관장이 바라본 ‘이어령의 정신’은 무엇일까. 그는 “‘주저앉지 말고, 도전하라’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강 관장은 “이어령 선생은 새것에 대한 관심 때문에 늘 새 글 쓰는 일에 매달렸다”면서 “나와는 달리 도전하는 더듬이가 있던 사람”이라고 평했다. 문학동지로서 보내는 극찬이다.
‘남편 이어령’ 얘기가 나오자 강 관장 목소리가 빨라졌다. “이어령은 입시생처럼 평생을 산 사람”이라고 했다. “마지막까지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 2~3시까지 글을 썼는데, 아이들조차 ‘아우, 난 저렇게는 안 살아, 일생을 어떻게 저렇게 살아?’라고 할 정도였다”고 전했다.
최근 이어령 전집 출간이 마무리돼 “이제 내 글을 쓰겠다”면서도 강 관장은 컴퓨터 7대에 나뉘어 담겨있는 ‘이어령 글’ 걱정을 했다. “방대한 글과 자료를 분석하는 데 오래 걸리겠지만, 앞으로 사람들이 잊지 않고 이어령 연구를 계속해주면 좋겠다”는 바람도 전했다.

지난 24일 일본 도쿄 주일 한국문화원에서 열린 이어령 1주기 특별전 '이어령과 축소지향의 일본인'에 참석한 부인 강인숙 영인문학관장이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 흉상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 주일 한국문화원
신진 문학인 등용을 위해 1972년 창간한『문학사상』이 작가들의 얼굴 표지를 싣게 된 이야기부터 88서울올림픽의 ‘굴렁쇠 소년’을 연출했던 일, 1990년 초대 문화부 장관으로 한국예술종합학교 설립과 국립국어연구원을 발족시켰던 이야기까지 볼 수 있다. 특별전은 다음 달 25일까지 한 달간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