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 오벌 오피스.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 대통령이 특별한 손님을 불러들였다. 니키 헤일리 당시 주유엔 대사. 사임의 뜻을 밝힌 헤일리에게 트럼프 당시 대통령은 특유의 화법으로 "헤일리는 일을 환상적으로 했다"고 추켜세웠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등 주요 인사들을 트위터를 통해 공개 망신 주며 사임시키는 '트윗 경질'로 유명했다. 그런 그가 헤일리 대사의 경우는 특별한 작별의식을 치러준 배경에 이목이 집중됐다. 당시 46세였던 헤일리에겐 정치인으로서의 존재감을 각인시키는 계기였다.
헤일리가 트럼프의 맹목적 지지자였던 것은 아니다. 그는 사임 전 워싱턴포스트(WP) 기고문에 "트럼프 정부에서 일하는 것이 자랑스럽다"면서도 "대통령의 모든 의견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전제를 달았다. 인도계 이민자의 딸인 그는 특히 당시 뜨거운 화제였던 미투운동(#MeToo)을 적극 지지하고 젠더 및 이민 문제에 진보적 성향을 숨기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대중 및 대북 정책 등 외교 분야에선 트럼프만큼이나 강경한 입장이다. 주유엔대사 시절 "필요하면 북한에 군사 수단을 쓰는 것도 배제하지 않는다"라거나, "중국이 북한을 계속 두둔한다면 무역 제재도 불사하겠다"는 발언을 내놓은 바 있다.
5년 후인 지금, 헤일리는 정치인으로 홀로서기를 시도 중이다. 2018년 사임 당시, 대통령 선거를 준비하는 것이 아니냐는 세간의 시선에 대해 당시 그는 "나는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을 지지한다"며 부인했다. 지금은 다르다. 그는 이미 올 2월 공화당 경선 출마를 공식화했다. 현재 공화당 경선은 트럼프 대 론 드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의 대결 구도로 정리되지만, 헤일리는 무시할 수 없는 상대다. 영국 권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호에서 헤일리에 대해 "현재 공화당 후보들 중에서 가는 곳마다 인기를 끌고 주목을 받는 인물은 헤일리"라며 "그는 아메리칸 드림이 거의 사라진 이 시대, 기회의 땅으로서의 미국을 증명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정치인"이라고 분석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이 기사에 트럼프라는 거인 옆에 씩씩한 표정으로 서 있는 헤일리의 삽화를 곁들였다.
헤일리가 이목을 끄는 주요 이유 중 하나는 그의 주군이었던 트럼프와의 차별화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그는 2021년 1월 6일 트럼프 지지자들이 의회를 공격한 사건을 두고, "(트럼프가 주장했던 것처럼) 아름다운 날은 결코 아니었다"라며 "내가 집권한다면 그들을 (현재 야당인 민주당이 추진하듯이) 처벌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민자 정책에 있어서도 장벽을 세우는 등 강경책을 주장했던 트럼프와 다른 입장임을 분명히 했다.
헤일리가 트럼프를 꺾고 드샌티스라는 산을 무너뜨릴 가능성은 그럼에도 현실 정치에선 크지 않다. 그렇다고 그를 군소 후보로만 폄하해선 곤란하다. 그가 트럼프의 러닝메이트로 나설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워싱턴 사정에 밝은 외교 소식통은 최근 익명을 전제로 기자에게 "대통령 후보 트럼프, 부통령 후보 니키 헤일리라면 트럼프의 두 번째 백악관 입성은 불가능해 보이지 않는다"고 전망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의 부통령 카멀라 해리스 역시 2020년 경선 과정에선 호적수였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번 공화당 경선은 사실상 '트럼프 대 트럼프 아닌 자'로 귀결할 것"이라며 "드샌티스가 선전하고는 있다지만 그는 트럼프와의 차별화 포인트가 적다"며 헤일리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