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만 하루 100만 배럴 감산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당초 사우디를 제외한 다른 산유국들은 추가 감산에 동의하지 않으면서, 합의가 어려울 수 있다는 전망도 있었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목표 원유 생산량을 채우지 못하고 있는 아프리카 산유국의 반발이 컸다. 하지만 사우디가 하루 100만 배럴을 줄이기로 하면서, 극적인 합의에 도달했다. 사우디가 시장 점유율을 잃으면서 국제유가 방어를 위해 사실상 혼자 총대를 멘 셈이다. 압둘아지즈 빈 살만 사우디 에너지부 장관은 사우디의 감산을 “(유가 상승을 위한) 사우디의 ‘막대사탕’”이라고 했다.
7월부터 사우디 석유 생산량은 하루 약 900만배럴수준으로 떨어진다. 이는 코로나19팬데믹이 한참이었던 2021년 6월 이후 최저 수준이다. 러시아와 다른 산유국들은 추가 감산 없이 기존 감산량을 유지한다. 다만 감산 기한은 올해 말에서 내년 말로 늘려 잡았다.

4일(현지시간) OPEC+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도착한 압둘아지즈 빈 살만 사우디 에너지부 장관. 연합뉴스
이렇게 생산량 조절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그만큼 국제유가 전망이 좋지 않아서다. 미국이 지난해부터 전략비축유를 대규모 방출하고 있는 데다, 기대했던 중국의 리오프닝 효과도 쉽사리 나타나지 않고 있다. 실제 지난달 중국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48.8을 기록해 시장 예상치(49.7)를 밑돌았다. 고금리 정책이 지속하면서, 하반기 경기침체가 더 심해질 거란 전망도 국제유가 하락을 불렀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지난달에만 11.32% 하락하면서 지난해 9월 이후 월간 기준 최대 하락률을 기록했다.
감산이 국제유가 상승 이끌지는 미지수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실제 앞서 있었던 두 차례의 감산 조치 후에 국제유가는 단기적으로는 올랐지만, 이후 다시 배럴 당 70달러 선으로 떨어졌다. 이날 감산 조치 후에도 국제유가가 장중 한때 전 거래일 대비 3~4%가량 급등했지만, 상승분을 다시 반납하며 1%대 상승에 그쳤다. 김광래 삼성선물 수석연구원은 “사우디가 단독으로 자발적 추가 감산을 결정했지만, 7월에 한정되고 다른 국가 동조가 없었던 만큼 (OPEC+의) 감산 의지가 상당히 약해졌다”고 했다.
다만 국제유가가 지금보다 더 떨어지기는 힘들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에너지 싱크탱크 ‘에너지 애스펙츠’의 공동설립자 암리타센은 “이번 결정은 유가의 바닥을 설정하고 지키겠다는 분명한 신호”라고 했다.
러시아 협조 여부가 변수
국제유가 추가 하락이 제한되면 한국을 포함한 주요국의 하반기 물가 관리도 복잡해질 가능성이 크다. 유가와 식료품 가격을 제외한 근원물가가 쉽사리 내려가지 않은 상황에서, 그동안 물가 하락을 이끌었던 국제유가 하락 효과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만약 하반기 물가가 다시 재상승한다면, 미국을 중심으로 기준금리 추가 인상의 압박이 다시 나타날 수도 있다.
앞으로 유가의 향방을 결정할 변수는 러시아가 국제유가 방어 전선에 얼마나 협조할지 여부다. 우크라이나와 전쟁으로 경제제재를 받는 러시아는 자금 마련을 위해 시세보다 싼 가격에 원유를 몰래 팔고 있다는 의혹이 계속 제기됐었다. WSJ은 “러시아가 엄청난 양의 값싼 원유를 시장에 계속 공급하면서 에너지 가격을 끌어올리려는 사우디의 노력을 약화하고 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