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위즈와 한화 이글스의 맞대결이 열린 17일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 이날 게임은 더블헤더 1차전과 2차전으로 나뉘어 진행됐다. 체력적 부담이 많은 더블헤더였지만, 경기는 순탄하게 흘렀다. 오후 2시부터 시작한 1차전에선 KT가 선발투수 윌리엄 쿠에바스의 7이닝 7피안타 5탈삼진 무실점 호투와 앤서니 알포드의 4타수 2안타 1홈런 2타점 맹타를 앞세워 7-0 대승을 거뒀다.
9회말 종료까지 걸린 시간은 2시간40분. 일방적으로 전개된 경기라 평소보다 빨리 1차전이 끝났고, 오후 5시12분부터 2차전이 속개됐다. 그런데 경기 시작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불청객이 찾아왔다. 빗줄기였다. 한화의 5회 공격부터 빗방울이 굵어지더니 더는 게임을 치를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결국 KT 선발투수 웨스 벤자민이 한화 선두타자 문현빈을 상대하는 시점(2볼-2스트라이크)에서 중단이 선언됐다. 오후 6시33분이었다.
경기의 강행-취소 결정권을 쥔 심판진은 일단 비가 개기를 기다렸다. 약 30분 뒤 빗줄기는 약해졌고, 이때 정비 뒤 재개를 결정했다. 문제는 그라운드 상태였다. 이미 잔디와 흙이 흠뻑 젖어 최소 1~2시간은 정비가 필요했다. 그라운드 정비 인력과 한화 관계자들이 대거 나와 땅을 말려봤지만, 2시간이 지나도 완전히 복구가 되지 않았다. 특히 한화생명이글스파크의 흙은 메이저리그에서 사용되는 인필드믹스로 물을 머금는 특성이 있어 정비가 더 오래 걸렸다.
결국 경기는 3시간24분이 지난 오후 9시57분 재개됐다. 역대 프로야구 최장기간 대기 기록 경신. 종전 1위는 1987년 8월 15일 대전 삼성 라이온즈-빙그레 이글스전과 2022년 7월 23일 대전 KT-한화전의 1시간56분으로 공교롭게도 이날 게임까지 3경기가 모두 같은 장소였다.
3시간 넘는 대기에는 분명 속사정이 있었다. 올 시즌 KBO리그는 잦은 우천취소로 일정이 꼬였다. 월요일 경기와 더블헤더 등 여러 대안을 도입했지만, 9월에도 장마철 같은 날씨가 계속돼 페넌트레이스 일정이 늘어졌다. 이처럼 한 경기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KBO는 과거와 달리 최대한 대기시간을 보낸 뒤 어떻게든 경기를 강행하려고 하고 있다. 이날 KT-한화전의 경우 정비까지는 오랜 시간이 예측됐지만, 정식경기로 인정받는 5회 종료까지 아웃카운트가 3개 남았다는 점을 감안해 쉽게 우천취소가 선언되지 못했다. 그야말로 ‘비의 딜레마’인 셈이다.
앞으로 깨지기 힘든 3시간24분 중단은 그간 보기 힘든 풍경도 낳았다. 오후 2시부터 더블헤더를 시작한 KT와 한화 선수들은 중단 시간이 길어지자 간식으로 저녁을 해결했다. 일부는 아예 클럽하우스나 버스에서 잠을 청하기도 했다. 열성팬들은 3시간 넘게 자리를 떠나지 않다가 경기가 끝난 오후 11시26분에야 집으로 돌아갔다.
이번 촌극 아닌 촌극으로 규정 보완의 필요성도 제기됐다. KT 벤자민은 상대하던 타자는 아웃을 잡거나 출루를 허용할 때까지 투구를 완료해야 한다는 야구규칙을 따라 3시간24분 뒤 다시 마운드로 올라갔다. 이미 팔은 식은 상태라 아리랑볼 2개를 던져 볼넷을 내준 다음에야 교체될 수 있었다. KT 포수 장성우는 “투수가 타자와의 승부를 마무리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어서 벤자민이 오랜 시간 쉰 뒤 다시 등판해야 했다. 규정 보완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