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치의 중요한 변곡점이었던 1989년에 베이징의 중국사회과학원 대학원에 입학한 후, 그는 30여 년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가족과 함께 중국에서 보냈다. 그의 깊은 연륜과 경험은 많은 이들이 그의 의견에 귀 기울이게 하였다.
20여 년 전, 필자는 베이징에서 시시를 처음 만났다. 커피를 마시기로 약속했는데, 그의 비서가 “미국 대사와의 면담이 연장되어 조금 늦을 것 같다”며 양해를 구했다. 그는 당시 베이징에서 주재하던 서양 외교관들이 중국의 정세에 대해 궁금해하면서 자주 찾는 인사였다. 현재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그에게 ‘포스트 코로나’ 시대 중국과 변동하는 미·중 관계에 관해 물었다.

이탈리아 외교관 출신 중국 전문가 프란체스코 시시(Francesco Sisci). 사진 필자제공
세계가 중국의 경제 상황을 보며 우려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중국의 경제 수치에 주목하는 데, 이것 못지않게 베이징에서 직접 살면서 피부로 느낀 것은 많은 중국인들이 마치 아직도 코로나 19 충격에서 헤어나지 않는 듯한 심리 공황 상태를 보인다는 점이다. 미래에 대해 불안한 것이다. ‘리오프닝’ 후에 베이징은 다시 사람들로 가득 차고 있지만, 내가 알던 생기가 가득 찼던 도시가 아니라 무기력한 침체된 분위기다. 3년간 코로나 봉쇄를 겪은 중국 사회의 내상(內傷)이 생각보다 더 클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은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이제 중국은 ‘포스트 코로나’의 새로운 현실을 마주하게 됐다. 우선 경제가 정상을 되찾아야 하는데, 정부가 기업 활동을 장려하겠다고 말해도 사람들은 여전히 안심하지 않는다. 시진핑 치하 속 ‘반부패 운동’의 일부로 민영 기업들은 탄압을 받았고 근년에 더욱 심했다. 코로나는 끝났지만, 중국 사업가들은 투자하기를 주저한다. 코로나 봉쇄를 겪고 나니 앞으로 또 뭔 일이 생기면 유사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을까 불안한 것이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삶의 불안감이 늘어가니 사람들이 소비를 안 하고 지갑 문을 닫은 채 오히려 만일에 대비하기 위해 저축을 더 한다. 코로나가 끝났음에도 정부의 기대와는 달리 사람들이 적극적이지 않다.
중국 시민들 ‘코로나 봉쇄’ 트라우마 아직 극복 못해, 정부에 대한 신뢰 회복이 관건
중국 경제 ‘위기설’이 퍼지면서 해외에서는 시진핑 권력 이상설도 나오고 있다.
시진핑에게 반기를 들고 일어설 수 있는 반대세력은 부재하다. 하지만 ‘대체 요즘 중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가?’라는 퍼즐은 계속 커지고 있다.
우리가 시진핑을 잘못 판단한 것인가?
시진핑을 잘못 판단하기는 중국인들도 마찬가지다. 2007년 여름철 중국 최고지도부 베이다이허 비공개회의에서 시진핑은 예상을 깨고 리커창에 앞선 서열 6위로 낙점받으면서 차기 최고지도자를 예약했다. 당시 공산당 원로들은 시진핑이 원로들의 노선을 ‘따르는(obedient)’ 성품을 갖춘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권력을 쥔 시진핑은 매우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사실 시진핑을 제대로 파악하기는 힘들다. 심지어 중국 최고지도자를 뽑는 공산당 원로들도 시진핑을 잘못 봤지 않는가?
시진핑은 누구인가?
1979년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미국 텍사스의 로데오 경기장에 등장한 덩샤오핑(鄧小平)을 기억하는가? 덩샤오핑이 모자를 흔들자 관중의 환호가 쏟아졌다. 그의 카우보이 모자는 정치적 상징이었다, 중국 인민들에게 ‘이제 우리도 미국처럼 될 것이다’라는 메시지였다. 그러나 시진핑은 그 상징을 부정하였다. 그는 ‘우리는 미국보다 더 우월하다’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였다.
중국인들에게 자긍심을 고취하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 뭐가 잘못된 것일까?
시진핑의 가장 큰 잘못은 코로나 19에 성공적으로 대응한 후,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를 통해 ‘사회주의가 민주주의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하였다. 2022년 5월 미국에서 코로나 사망자 수가 백만명을 돌파하자 중국 관방언론은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하였다. 그리고 미·중 백신 경쟁이 시작되었다. 서방 백신의 효과와 안전성을 의심하며, 중국의 백신을 선전하려 했다. 이 결과, 중국은 서방 백신을 자국민에게 접종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중국 경제가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면서도 막상 중국 정부는 경기부양 정책을 망설이고 있다. 중국 정부는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야 하는가?
‘리오프닝’을 했으니 이제 새롭게 시작을 하는 것이라고 국민들과 사업가들에게 확신시켜야 한다. 중국의 주요 문제는 경제적인 것보다 정치적인 것이다. 중국은 정치적 개혁을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혁을 통해 개인 재산 보호, 기업 활동 보장, 중국 위안화 환율 시장화 등을 추진해야 한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결국 중국에서는 정치 시스템의 문제다.
경제 문제 해결하기 위해선 정치개혁 필요
사실 중국의 정치 개혁은 오랜 논쟁 대상이다.
중국 공산당 내부에서도 정치개혁을 원하는 목소리가 있다. 그러나 개방하면 중국이 미국보다 체제상으로 불리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결국 미국에 대한 불신이 큰 문제다.
중국이 현재의 경제 문제를 해결하려면 결국 정치개혁을 해야 하는데, 그러면 공산당 권력이 약해질 수 있어서 그렇게 할 수 없다는 오래된 딜레마로 다시 환원된다. 다른 이유도 있을까?
공산당의 일부에서는 미국 역시 중요한 문제들을 겪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미국 사회의 심한 좌우 진영 분열, 국제사회에서의 미국 리더십의 약화, 그리고 트럼프의 재당선 가능성을 지적한다. 그들은 어떻게 트럼프와 같은 인물이 민주주의 진영을 이끌 수 있느냐고 의문을 제기한다. 이러한 의문은 중국 내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불신을 강화한다. 사회주의도 문제지만 민주주의도 바람직한 제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중국 정부의 다음 행보는?
중국인들은 매우 실용적이다. 중국 정부는 미국 대선 직전에 큰 결정을 내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들은 나름대로 경제 회복 노력을 일정하게 계속하면서 사실상 미국 대선의 결과를 지켜볼 것이다. 만약 트럼프가 다시 당선된다면, 미국은 내전 상태로 들어가고 미국 동맹 체제는 와해할 것이라고 보는 의견이 있다. 중국의 상황도 좋지는 않지만, 그들은 미국이 먼저 문제를 겪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미국이 어려움을 겪길 기다리면서 중국 경제가 먼저 더 큰 문제를 겪을 가능성도 있지 않은가?
현재의 중국 상황은 매우 어려워서 무언가 변화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중국 사회에 널리 퍼져 있다. 국민들의 정부에 대한 신뢰와 경제 정책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며, 해외 투자자들의 신뢰도 되찾아야 한다. 중국 정부는 적극적이고 과감하게 움직여야 한다. 미국 선거의 결과만을 기다리다가는 기회를 놓칠 수도 있다.
이성현 조지HW부시 미·중관계기금회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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