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 넘은 하얀 짬뽕…'30년'은 명함도 못 내민다, 인천 노포 넷

개항장이 있는 인천 중구에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음식점이 많다. 하여 사람들은 추억을 맛보러 인천을 찾는다. 사진은 차이나타운에 있는 짜장면박물관 내부. 인천은 짜장면이 탄생한 도시다.

개항장이 있는 인천 중구에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음식점이 많다. 하여 사람들은 추억을 맛보러 인천을 찾는다. 사진은 차이나타운에 있는 짜장면박물관 내부. 인천은 짜장면이 탄생한 도시다.

인천에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음식점이 많다. 특히 개항장이 있는 중구 곳곳에 빛바랜 간판을 단 노포가 포진하고 있다. 1883년 개항 이후 인천항 주변이 일찌감치 번성했고 1985년까지 인천시청 청사(현 중구청)가 있었던 영향도 컸을 테다. 추석 연휴, 나들이 삼아 인천을 간다면 찾아 가볼 만한 오래된 식당 4곳을 소개한다. 

담백한 하얀 짬뽕 - 신성루

신성루에서 맛본 짜춘권과 하얀삼선짬뽕. 짜춘권은 표고버섯, 죽순, 돼지고기, 새우 등을 볶은 뒤 계란을 입힌 중국식 계란말이다. 중국집이 많은 인천에서도 파는 집이 드물다.

신성루에서 맛본 짜춘권과 하얀삼선짬뽕. 짜춘권은 표고버섯, 죽순, 돼지고기, 새우 등을 볶은 뒤 계란을 입힌 중국식 계란말이다. 중국집이 많은 인천에서도 파는 집이 드물다.

인천의 중국집 하면 차이나타운부터 떠올린다. 그러나 인천 시민은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차이나타운에서 살짝 빗겨난 식당을 찾아간다. 신생동에 자리한 ‘신성루’가 그런 곳이다. 중국 산둥 출신인 장덕방 씨가 창업해 3대째 이어져 온 신성루는 영업 허가는 1959년에 받았지만, 영업은 1947년부터 시작했다. 한국전쟁 이전이다.

신성루의 인기 메뉴는 짬뽕이다. 메뉴판을 보니 짬뽕이 세 종류다. 일반 짬뽕, 삼선고추짬뽕 그리고 삼선하얀짬뽕. 단골은 주로 하얀 짬뽕을 먹는다. 면·밥 말고 요리 메뉴가 무척 많다. 새우난자완스와 멘보샤도 맛있다고 알려졌는데 조금 색다른 메뉴를 선택했다. 짜춘권, 그러니까 중국식 계란말이를 주문했다. 하얀 짬뽕은 국물 맛이 담백하고 시원했고, 짜춘권은 새우와 죽순을 씹는 맛이 좋았다. 2대 사장인 장덕영(64)씨는 “1970년대 이후 고춧가루를 널리 쓰기 전에는 한국에서도 하얀 짬뽕을 많이 먹었다”며 “짜춘권은 조리 과정이 번거로워 인천에서도 만드는 식당이 많지 않다”고 말했다.

 

주당들의 아지트 - 신포주점

신포국제시장 골목 한편에 웅크리고 있는 신포주점. 오랜 세월이 느껴진다.

신포국제시장 골목 한편에 웅크리고 있는 신포주점. 오랜 세월이 느껴진다.

신포주점의 대표 메뉴인 바지락전과 가오리찜.

신포주점의 대표 메뉴인 바지락전과 가오리찜.

신포국제시장 한편에 자리한 ‘신포주점’은 주당들의 아지트다. 인천관광공사가 펴낸 소책자 ‘인천, 오랜가게’에 따르면 1대 사장 김영숙씨가 남편이 운영하던 술 대리점에서 손님에게 안주를 내주던 게 시작이라고 한다. 1968년 개업했고 지금은 세 번째 사장 이종민(69)씨가 운영 중이다.


신포주점 내부는 30~40년 전에서 시간이 멈춘 것 같다. 벽에는 빼곡하게 낙서가 채워져 있고, 오누이의 ‘님의 기도’ 같은 7080 노래가 흘러나왔다. 손님이 몇 명 없는데도 훈훈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메뉴는 단출했다. 가오리찜·바지락전·돼지찌개 같은 사계절 메뉴와 민어탕·장어조림 같은 제철 음식이 있었다. 바지락전과 가오리찜을 맥주와 함께 주문했다. 가오리찜은 적당히 삭아서 식감이 좋고 감칠맛이 적당했다. 바지락전은 쫄깃쫄깃하고 고소했다. 해산물은 연안부두 어시장에서 직접 사 온단다. 이 사장은 “요즘 20~30대 손님이 부쩍 늘었다”며 “옆 테이블의 아버지뻘 손님과 술잔을 나누는 모습을 보면 흐뭇하다”고 말했다.

부둣가 노동자의 음식 - 평양옥 

평양옥의 대표 메뉴인 해장국. 소갈비와 얼갈이를 푹 고와낸다. 여느 해장국과 달리 국물이 맵지 않다.

평양옥의 대표 메뉴인 해장국. 소갈비와 얼갈이를 푹 고와낸다. 여느 해장국과 달리 국물이 맵지 않다.

프로 축구팀 인천 유나이티드 FC의 홈구장인 중구 신흥동의 인천축구경기장 옆에는 80년 가까이 한 자리를 지킨 식당이 있다. 1945년 개업한 해장국집 ‘평양옥’이다. 만주에서 공장을 운영하던 김석하·조선옥씨 부부가 인천에 정착해 식당을 열었다. 지금처럼 번듯한 건물은 아니었다. 식탁 두 개가 전부였다. 쉽게 구할 수 있는 식재료로 음식을 만들었다. 주변 미군 부대에서 구한 소뼈와 시장에서 버리다시피 한 배추 껍질로 국밥을 끓여낸 게 지금의 해장국이다.

요즘처럼 맵고 자극적인 ‘숙취 해소용’ 해장국이 아니라 새벽 부두로 나가는 인부의 든든한 에너지원이 평양옥 해장국의 정체성이다. 3대 사장인 김명천(58)씨는 할머니의 레시피를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배추를 얼갈이로 바꾼 것 외에는 크게 달라진 게 없다. 맑은 국물이 간간하면서도 감칠맛이 깊다. 고기는 부들부들하고 우거지는 입에서 녹을 정도로 푹 삶았다. 김 사장은 “지금도 이른 아침 일터로 나가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 새벽 5시에 문을 연다”고 말했다.



월미도 일몰 보며 먹는 돈가스 - 예전

월미도 해변에 자리한 경양식집 '예전' 2층 창가 자리는 석양을 감상하기 좋다.

월미도 해변에 자리한 경양식집 '예전' 2층 창가 자리는 석양을 감상하기 좋다.

돈까스, 소고기 부챗살 스테이크, 생선까스 등을 함께 맛볼 수 있는 예전 정식. 샐러드와 빵, 수프도 내준다.

돈까스, 소고기 부챗살 스테이크, 생선까스 등을 함께 맛볼 수 있는 예전 정식. 샐러드와 빵, 수프도 내준다.

포털 사이트에서 월미도를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로 횟집과 조개구이가 제일 먼저 뜬다. 실제로 생선회와 조개구이를 전문으로 파는 식당이 해변에 줄지어 있다. 그 틈에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2층짜리 독채 하나가 자리해 있다. 약 40년 전 개업한 경양식집 ‘예전’이다. 목재로 인테리어를 하고 축음기 같은 골동품이 전시된 내부에서 친근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하여 음식뿐 아니라 추억을 맛보러 예전을 찾는 손님이 많다. 인천에 사는 이상혁·김재경씨 부부는 “거의 20년 만에 왔는데 맛도, 분위기도 그대로여서 놀라웠다”고 말했다.

피자·파스타도 팔지만, 예전의 대표 메뉴는 돈가스다. 돈가스·생선까스·부챗살 스테이크 등을 함께 맛볼 수 있는 ‘예전 정식’을 주문해봤다. 바삭바삭한 돈가스는 추억의 맛 그대로였다. 직접 만든다는 데미 글라스 소스 맛이 돈가스 맛을 훌륭하게 보조해줬다. 적당히 구운 스테이크는 부드럽게 씹혔다. 노포 경양식집의 오랜 노하우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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