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병석 SK가스 사장이 경기도 판교 에코허브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전기차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친환경 에너지 시대가 성큼 다가온 듯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영국에너지연구소(EI)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전력의 35.4%는 석탄을 태워 만들었다. 태양광·풍력·수소·연료전지 등 신재생 에너지를 다 합쳐도 14.5%다. 이유는 간단하다. 신재생 에너지가 어디서든 합리적인 가격에 안정적으로 수급 가능하지 못해서다.
지난 17일 중앙일보와 인터뷰한 윤병석(57) SK가스 대표는 “그래도 꿈은 꿔야 한다”고 말했다. 힘들더라도 인류가 내뿜는 온실가스를 다시 흡수해 배출량이 ‘0’이 되는 ‘탄소중립(Net Zero)’을 지향해야 한다는 얘기다.

김영옥 기자
그는 1991년 유공(현 SK이노베이션)에 입사해 33년째 에너지 기업에 근무 중이다. 윤 대표는 “지금 안 된다고 불평만 하면 5년 뒤 달라지는 게 없다”며 “단계별로 가능한 것을 시도하면 반드시 변화가 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기도 판교의 SK가스 본사에서 윤 대표를 만나 청정 에너지 시대로 가는 로드맵을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친환경 에너지 전환이 여전히 더디다.
급하다고 빨리 되는 게 아니다. 석탄·석유와 달리 신재생 에너지는 경제성·편리성 면에선 장점이 부족하다. 너무 서두르면 거부감이 든다. 가능한 기술, 적절한 속도로 가야 한다.
SK가스는 국내 액화석유가스(LPG) 1위 기업이다. 자동차·보일러·버너 등 일상에서 접하는 ‘프로판가스’ ‘부탄가스’가 바로 LPG다. LPG는 석탄·석유보다 오염물질을 덜 배출해 환경 친화적이지만, 액화천연가스(LNG)와 마찬가지로 원유 정제 과정에서 나오는 ‘화석연료’다. SK가스가 궁극적으로 수소 기업으로 가려는 이유다.

김영옥 기자
수소 에너지가 왜 부상하는 건가.
수소는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다. 수소 1㎏이 산소와 결합하면 휘발유의 3배에 가까운 3만5000㎉의 에너지를 낸다. 이산화탄소가 전혀 나오지 않고 파이프라인이나 탱크로 수송할 때 손실되는 에너지도 매우 적다.
기술 장벽은 무엇인가.
문제는 수소가 물(H2O)처럼 화합물 형태로 존재한다는 거다. 이걸 뜯어서 저장해 액체로 만들어 싣고 와야 하는데, 그 과정마다 비용이 든다. 기술도 부족하다. 물을 전기분해해 수소를 분리하는 수전해 기술, 고압으로 압축해도 버텨내는 저장·충전 설비 기술, 극저온도에서 액화한 뒤 열을 차단하는 기술 등이 대표적이다.
윤 대표가 구상하는 ‘수소 에너지로의 길’은 이런 식이다. 우선 저탄소 에너지인 LNG로 사업을 확대한 뒤 암모니아→수소 순으로 포트폴리오를 전환한다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SK가스는 약 3조원을 들여 울산에 세계 최초의 LNG·LPG 겸용 복합발전소인 ‘울산 GPS(가스파워솔루션)’와 민간 최대 규모의 LNG 수출·입 터미널(KET)을 지어 내년 하반기 가동 예정이다.

SK가스, 에이치라인해운, 울산항만공사가 협력하는 LNG 벙커링 사업이 진행될 울산 북항의 코리아에너지터미널(KET) 6번 부두 전경. 사진 SK가스
LNG·암모니아가 수소와 어떤 관계인가.
한국은 미국, 일본에 이어 세계 3위 전력 소비국이다. 청정 에너지로 가기까지 ‘저탄소 LNG’가 간극을 메워야 한다. 암모니아(NH3)는 수소를 저장·수송할 수 있는 최고의 ‘수소 캐리어’다. 수소를 품었지만 탄소가 없기 때문이다. 이미 비료 등의 목적으로 2억 만t이 생산되고 있고 수송 인프라도 갖춰져 있다. 게다가 암모니아를 석탄·LNG 등 기존 연료와 섞어 태우면(혼소) 탄소 배출이 줄어 청정 에너지의 마중물이 될 수 있고, 분해 과정에서 수소 기술도 발전할 수 있다.
윤 대표는 수소경제가 현실화하려면 ‘수요 부족→생산 감소→단가 인상→사용처 감소’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SK가스가 석유화학과 발전소 등 수소 사용처가 밀집한 울산을 수소경제의 메카로 보고 여기에 과감히 투자하는 이유다.

윤병석 SK가스 사장. 김종호 기자
수소시대가 되면 에너지 자립도 가능할까.
‘미래의 유전’도 한국이 아닌 호주나 미국이다. 진짜 ‘그린(녹색) 수소’는 전기분해할 때도 재생 에너지를 써야 하는데, 미국이나 호주가 태양광·풍력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 지역에 지분 투자해 수소 생산비용을 낮춰야 한다.
그러면 수소경제 시대에도 에너지 주도권을 쥐기 어려운 것인가.
수소를 액화·운송·사용하는 모든 게 새로운 기술이다. 한국은 여기서 돈을 벌 수 있다. 그래서 암모니아 시대를 먼저 치고 나가고, 관련 기술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 한국은 선박 제조, 발전소 운영 능력도 세계적 수준이다.
이 과정에서 정부 역할은.
에너지 전환은 인프라 투자가 필요하고, 금방 성공하기도 어렵다. 기업들이 비용을 감수하고 테스트하고 국내외 기업과 실증사업을 하려면 어느 정도는 신산업 육성 차원에서 정부 보조가 필요하다.
윤 대표는 “우리의 강점은 에너지 발명이 아니라 에너지 물류”라며 “새로운 에너지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가 저렴하게 수입해 국내에 운송하고, 다시 수출하는 에너지의 흐름을 담당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SK가스는 울산에 수소 생산과 공급이 가능한 에너지 단지를 구축할 예정이고, LNG 터미널에도 암모니아·수소 사업용 부지를 남겨뒀다. 롯데와 합작한 롯데SK에너루트는 롯데케미칼 울산공장에 수소연료전지 발전소를 설치해 향후 20년 동안 운영하게 된다.
윤 대표는 “탄소세 등 세계적으로 환경 규제가 심해지는 가운데 가장 경제적이고, 친환경적인 에너지 해법을 적용하지 못하면 한국의 산업 경쟁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탄소중립이 될 때까지 사명감을 가지고 마중물 역할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