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특별법안은 원전 운영 시 필연적으로 나오는 고준위 방폐물(사용후핵연료)을 수만 년간 보관해줄 영구처분장 설치를 지원하는 게 핵심이다. 현재는 고준위 방폐물을 따로 보관할 곳이 없어 원전 부지 내 시설에서 임시 보관하고 있다. 하지만 2030년 한빛 원전을 시작으로 전국 원전에 쌓인 고준위 방폐물의 포화가 시작될 전망이다. 그러면 원전 출력을 줄이거나 운영을 아예 중단할 수밖에 없다. 영구처분장이란 안전한 '화장실' 설치를 더 미루기 어려운 셈이다.
21일 정부·국회 등에 따르면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는 22·29일에 각각 법안심사소위를 열어 해당 법안을 심사할 예정이다. 여야는 지난해 11월 특별법 논의를 본격화한 이후 1년간 10개 안팎의 쟁점을 좁혀왔다. 하지만 고준위 방폐물을 임시 보관할 원전 부지 내 저장시설 용량을 둘러싼 '최대 고비'에 직면했다. 이번에도 소위 문턱을 넘지 못하면 총선이 열리는 내년으로 넘어가는 만큼 사실상 자동 폐기 수순을 밟게 된다.
더불어민주당에선 원전 내 저장시설 규모를 원자로 '설계수명' 기준 발생량으로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는 의견을 고수하고 있다. 최근 윤석열 정부가 추진 중인 신규 원전 도입에 대한 반발 차원에서 법안 자체에 '비토'를 놓는 기류가 강해졌다. 특히 김성환 의원은 특별법안 대표 발의자 중 한 명인데도 법안 통과를 미루고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설계수명 제한을 풀면 윤 정부가 원전 수명을 최대한 연장시킬 거라고 본다. 또한 신규 원전 운영 계획 등을 취소하지 않으면 법안에 동의하기 어렵다"면서 "법 제정이 중요한 게 아니라 국민 여론 수렴부터 다시 해야 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특히 국회 안팎에선 야당 태도를 두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수만년 이상 방폐물을 보관해줄 영구 처분장 설치라는 법 취지와 거리가 먼 원전 내 임시저장 용량, 추가 원전 운영을 쥐고 법안 전체를 흔들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프랑스·러시아 등 원전 운영 상위 10개국 가운데 부지 내 저장시설 용량 제한을 법률로 명시한 국가는 없다. 문주현 단국대 에너지공학과 교수는 "부지 내 저장 용량은 평소 원전 운영을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일 뿐인데, 영구 처분장과 연계하면서 문제가 꼬였다“고 말했다.
원전 인근 지역도 법안 통과를 촉구하고 나섰다. 원전 소재 지자체 행정협의회는 20일 공동호소문을 내고 "하루빨리 특별법이 제정돼 사용후핵연료에 대한 원전 소재 지역 주민들의 우려가 해소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경주·울진 시민들로 구성된 대책위도 21일 낸 성명서에서 "특별법은 정쟁의 수단이 아니다. 원전 지역 주민들 입에서 '야당 측 법 통과 의지가 부족한 게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음을 민주당은 알아야 한다"고 밝혔다.
국민 대부분은 안전한 방폐물 처리 시설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지난 6일 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이 발표한 국민인식조사(전국 만 18세 이상 1000명)에 따르면 응답자의 91.8%가 사용후핵연료 저장·처리시설 마련이 시급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