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정부가 인공지능(AI)을 공공 부문에 도입해 공무원 수를 감축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AI를 보건·행정 업무에 적극적으로 활용해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이후 팬데믹 등을 겪으면서 비대해진 공무원 조직을 효율화하겠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이를 통해 세금을 아끼고 국가 생산성을 높이겠다고 설명하지만, 일각에선 무리한 'AI 드라이브' 대신 기존 IT(정보통신) 시스템에 투자하는 게 낫다는 주장도 나온다.
21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와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올리버 다우든 영국 부총리는 전날 런던 공무원을 상대로 한 AI 교육 현장에서 "연간 500만 파운드(약 80억원)를 들여 'AI 히트 스쿼드'라는 태스크포스(TF·임시조직)를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영국 리시 수낵 정부는 AI를 활용해 공공 부문 생산성 향상을 꾀하기 위해 정부 산하 전문 조직 '인큐베이터 AI'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AI를 정부 기능에 통합함으로써 공공 서비스를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고 제2 산업혁명을 주도하겠다는 복안이다. AI TF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
AI로 공무원 수 6만6000명 줄여라
AI의 전면 도입은 영국 정부의 공무원 수 감축, 공공부문의 생산성 제고를 목표로 한다. 앞서 영국 정부는 지난 10월 공무원 채용 동결을 발표한 바 있다. 당시 제레미 헌트 재무장관은 "큰 국가보다 생산성 높은 국가가 필요하다"며 공무원 수를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인 2020년 규모에 맞춰 감축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헌트 장관은 공공 서비스 분야 공무원 수를 약 6만6000명가량 줄이기를 원한다고 했다.
세금 절약하는 묘책?
내년 총선을 앞두고 내각과 집권 보수당은 '감세'에 방점을 찍고 있다. 이를 두고 케임브리지 퀸스칼리지 총장이자 알리안츠 수석 경제고문인 모하메드 엘 에리언은 FT에 "국민 소득 대비 영국 세입 비율이 약 70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상승했다"면서 "생활비 위기로 고군분투하고 있는 유권자들이 주머니에서 돈을 덜 빠져나가게 하는 정당에 표를 던질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정부와 집권 보수당이 이 같은 정책을 내놓고 있다"고 풀이했다.
"아동수당 오류 겪은 네덜란드 재판될라" 우려
영국의 보건 부문 싱크탱크인 건강재단(The Health Foundation) 연구원 아니타 찰스워스는 FT에 "현재 NHS 전산망에서는 다중 로그인(한 브라우저에서 여러 개 계정에 로그인하고 전환할 수 있는 것) 기능이 없고, 시스템을 활용하기 위해 전원을 켜고 세팅하는 데만 족히 30분은 걸린다"며 "일부 병원에서는 여전히 종이 기록으로 업무를 처리하는 상황에서 AI 활용을 논하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영국 전역 의료 기관을 대표하는 NHS 공급자 협회(NHS Providers) 줄리안 하트레이 협회장도 "기본적인 IT 시스템을 개선하는 등 보다 현실성 있는 투자가 절실하다"고 토로했다.
AI를 공공 부문 현장에 도입했다가 부작용이 생길 가능성도 지적된다. 네덜란드의 경우 2019년 AI를 아동양육 수당 부정 수급자를 발견하기 위해 도입했는데, 이 과정에서 저소득, 다자녀, 이민자 등 사회적 취약계층 부모들을 아동양육수당 부정 수급자로 잘못 분류하는 일이 잦았다. 뒤늦게 오류를 정정했을 땐 이미 많은 가정이 재정 파탄 등으로 위기에 내몰린 뒤였다. 결국 지난 2021년 마르크 뤼테 내각이 총사퇴하는 원인이 됐다.
FT는 영국도 AI를 의료·복지, 난민·이민 문제 처리 절차 등에 활용하면 자칫 유사한 문제를 겪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영국 정부 데이터 분석 등을 총괄하는 라우라 길버트 수석은 "데이터 취급에 매우 신중할 것"이라며 "AI 기술을 다루는 데 있어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는 건 변함 없다"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