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산시청 앞마당의 오색팔중. 사진 울산시
오색팔중 진위 논란

울산시청 마당에 있는 오색팔중, 울산동백으로도 불린다. 사진 울산시
진위 논란은 지난해 상반기부터 본격적으로 불거졌다. 지역 식물학자 등의 언론 기고, 문화해설사의 제보, 시민들의 입소문 등을 통해서다. 사단법인 한국습지환경보전연합 정우규 박사는 언론 기고문에서 "(울산시가) 동백나무에 대해 제대로 고증하지 않고 홍보에만 신경 쓰다 보니 엉터리 정보가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주일대사관의 문화교육 담당 영사와 전 주일 교육관 등의 협조를 받아 조사했지만, 울산시청 앞마당에 심은 동백나무와 일본의 오색팔중산춘은 나무 형태, 잎 모양, 꽃피는 시기 등이 모두 달라 같은 나무로 볼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한 문화해설사 역시 비슷한 시기 울산지역 언론사에 제보하면서 "교토 역사자료관에 '울산동백설화 근거나 사료(史料)가 있는지'를 물었는데 교토 측이 서면답변서에 "근거가 되는 사료나 자료집 등은 공식 발간한 적 없어 확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당시 공개한 교토 역사자료관 답변서엔 "오래된 기록물에선 동백의 유래에 대한 자료가 없고, 20세기 이후 간행물에선 언급된 것이 있었다"라고도 쓰여있다.
히데요시가 사찰에 바친 '울산동백'
![반환 당시 신문 지면. [중앙포토]](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402/27/4733fe9e-8cf9-43e8-86e4-c86cbd11d2db.jpg)
반환 당시 신문 지면. [중앙포토]
동백나무의 역사적 상징성은 다시 한국으로 이어졌다. 1989년 최종두 당시 한국예총 울산지부장이 지장원에서 동백나무를 발견했다. 지역단체 및 불교계 등이 반환 운동을 벌였고, 처음엔 거부하던 일본 측도 결국 반환에 동의했다. 1992년 5월 한 그루가 한국으로 들어왔고, 그 나무가 울산시청 앞마당에 심어졌다. 울산시 관계자는 "당시 10살 된 3세대 묘목 3그루가 돌아왔는데, 울산시청, 독립기념관, 경남 사천 조명군총에 한 그루씩 심었다”고 설명했다. 현재는 울산시청에 심은 것만 살아남았고 나머지는 고사했다. 울산시 농업기술센터 등의 노력으로 4세대 50여 그루가 별도로 자란다. 울산시청 앞마당 3세대 옆의 작은 나무 10그루가 바로 4세대다.
이런 역사적 상징성 탓에 동백나무는 울산에선 귀한 대접을 받는다. 울산의 다인(茶人)단체는 매년 동백꽃이 피는 시기에 헌다제를 연다. 2021년엔 울산동백보존회가 만들어졌다. 울산시가 지원하는 울산동백가요제도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