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공언대로 그가 4·10 총선을 앞두고 만든 비례정당, 국민의미래 지지를 독려할 수 있을까? 정답은 ‘그렇다’다. 한 위원장이 지역구 불출마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공직선거법 88조는 지역구에 출마한 후보자가 다른 정당을 위해 선거 운동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인천 계양을에 출마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비례정당인 민주개혁진보연합을 지지해달라고 공개적으로 말할 수 없다. 반면 후보자가 아닌 한 위원장은 선거법 88조의 저촉을 받지 않는다.
한 위원장은 23일 국민의미래 창당대회에 참석해 “불출마 이유 중엔 선거운동으로 승리의 길에 함께 하겠다는 이유도 있었다”고 말했다. 총선 불출마 선언 때부터 비례정당 선거 운동까지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의미다. 4년 전 위성정당이 처음 등장한 21대 총선 때도 지역구 선거에 불출마한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가 비례정당 후보들과 공동 유세를 했던 선례가 있다. 당시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대표는 서울 종로에 출마해 비례정당인 미래한국당 유세에 나설 수 없었다.
그렇다면 한 위원장이 국민의미래 당 대표를 맡아 선거운동을 이끄는 건 가능할까? 복수 당적이 금지돼있어 불가능하다.
정당법 42조에 따르면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당적은 하나로, 동시에 2개 이상의 당원이 될 수 없다. 국민의미래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한 당헌·당규에 따르면 당 대표는 반드시 당원의 자격을 유지해야 한다. 국민의힘 당원인 한 위원장이 국민의미래 대표를 겸하게 되면 복수 당적 금지 조항에 저촉된다. 복수 당적 조항을 위반할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게 된다.
한 위원장은 대신 “국민의힘이 공천하는 것으로 봐달라”(16일 출근길), “사심 있는 생각으로 들어오면 내가 막겠다”(23일 창당대회) 같은 말로 비례대표 공천도 주도하겠다고 강조해왔다. 한 위원장은 4년 전 미래한국당의 공천 내홍과 같은 혼란을 막고자 전·현직 의원이 아니라 국민의힘 사무처 당직자 출신을 당 대표에 임명하는 등 실무형으로 인선을 마쳤다.
대신 국민의미래에서 직책을 맡는 건 규정에 저촉되지 않는다. 공천관리위원장이나 선거대책위원장 등 ‘000 위원장’ 직함이 대표적이다. 당헌·당규에서 당원 자격을 강제하지 않기 때문에 이론적으로 한 위원장도 국민의미래의 선대위원장이나 공관위원장을 맡을 수 있다. 양향자 개혁신당 의원이 무소속이던 2022년 6월 국민의힘에 입당하지 않고서도 국민의힘 반도체산업경쟁력강화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경우가 대표적이다. 선관위 관계자도 한 위원장의 국민의미래 선대위원장 활동에 대해 “금지하는 규정은 없다”고 해석했다.
하지만 “정치의 희화화”라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법조문이 없다고 미비점을 파고들어 활용하면 결국 정당 정치의 폐단만 키우게 될 것”이라며 “비례대표 공천도 나눠 먹기밖에 안 되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실패한 제도”라고 지적했다.